돈을 행복하게 벌고 행복하게 쓴 철강왕「카네기」-2

 

기업을 일으켰다

1862년 철도레일을 만드는 철을 생산하는 공장을 세우기로 하였다. 그가 전에 사두었던 타이터스빌 농장에서 석유가 쏟아져 나와 굉장히 많은 돈을 벌게 되었다. 카네기는 이 돈으로 레일공장을 만들었다. 그의 나이 30세였다.

1865년 남북전쟁이 북부의 승리고 끝나고 미국은 급속도로 발전할 전망이 엿보였다. 그는 곧 뉴욕으로 어머니와 함께 올라와서 <19세기클럽>에서 유명한 사람들과 사귀었다.

1872년 카네기는 영국에 갔다가 우연히 영국사람 베세미가 발명한 전로(철이나 구리를 녹이는 용광로)를 구경하게 되었다. 그 과정을 보니 불과 12분 사이에 쇳물이 강철로 변하고 있었다. 카네기는 이때부터 다른 것을 잊고 강철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자나깨나 강철만 생각하고, 입만 열면 강철만 말했다.

1875년 9월에 강철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는데, 주문이 홍수처럼 쏟아졌다. 배, 고층건물, 승강기 등 새로운 수요가 생겼기 때문이다. 너무 싸게 물건을 팔자 경쟁회사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싸게 팔 수가 있습니까?” 하고 비결을 물었다. “우리는 불경기 때 최신의 공장을 세웠고, 가장 손실이 없는 운영방법을 택했습니다. 그런데, 당신네들은 불경기일 때는 문을 닫았고, 또 낡은 기계와 낡은 방법으로 공장을 운영하고 있으니 당신네 제품이 비쌀 수밖에 없지요” 하고 대답했다.

 

어머니께 효도했다

46새 되던 1881년 봄, 카네기는 어머니를 모시고 여행을 떠났다. 어려서 약속했던 일, ‘부모님을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마차에 태우고 돌아다니겠다’던 것을 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난 후이므로 어머니만 모시고 실행하였다.

그는 어머니를 모시고 영국으로 갔다. 거기서 4두 마차에 어머니를 태워 7주 동안의 여행을 했다. 카네기는 마부와 어머니 사이에 앉고, 그 뒤에 9명의 초청손님이 앉았다. 여왕처럼 품위 있게 차려 입은 어머니는 마치 소녀처럼 들뜬 기분으로 풍경을 감상하며 기뻐했다. 그 날은 카네기가 고향에 도서관을 기증하여 착공식을 거행하는 날이었다. 고향에서는 카네기를 위하여 그 날을 휴일로 정하고 사원의 종을 울려주었다. 그 여행은 그에게 큰 감명을 주었고, 그 후 그는「마차에 의한 미국인의 영국여행」이라는 책을 펴내었다.

남북전쟁이 끝나고 유럽에서는 많은 사람이 이민 와서 카네기 공장에서 일하였는데, 1890년 초에 약 1만5천명의 젊은이가 일하고 있었다. 종업원들과 회사측이 정면 대립하여 싸웠으나 카네기는 그들의 직업을 빼앗지 말라고 말하면서 항상 종업원의 편에 섰다.

카네기는 회사에서 생기는 이윤을 항상 종업원을 위해서 나누어주었으나 분쟁은 끊이지 않았다. 그는 회사를 팔기로 결심했다. 당시 대재벌인 모건에게 회사를 팔았다. 모건은 회사를 인수하여 1901년에「US스틸」로 이름을 개명했다.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

카네기는 당시의 다른 재벌들과는 달리 자기가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는 일을 시작했다. 1890년에 엘리케니에 도서관과 음악당을 지어 주었고, 1895년에는 피츠버그에 박물관, 미술관, 학교 등을 지어 시민들에게 기증했다.

1901년 회사를 팔고 나서 자기가 경영하던 공장 노동자를 위하여 500만 달러를 내놓았다. 작업 중에 일어난 사고로 고통 받고 있는 사람, 늙어서 남의 도움이 필요로 한 사람들의 구제 기금으로 써 달라는 것이었다. 1902년 카네기는 워싱턴에 ‘카네기재단’을 설립했다. 이 재단은 인류의 복지향상을 위하여 여러 가지 일을 했다. 과학과 문학, 미술방면의 조사를 돕고 발명가들의 뒷받침을 해주었다.

‘카네기호’라는 배를 타고 다니며 세계항해용 지도를 만드는 일도 했다. 캘리포니아주에 천문대를 만들어 새로운 별 176개를 발견했다.

1904년, 카네기는 500만 달러를 내어 용감한 일, 착한 일을 한 사람을 표창하고 그 유가족을 보호하는데 쓰게 했다. 이 기금제도는 영국, 네덜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스위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덴마크 같은 나라로 발전하여 설치되었다.

1902년, 카네기는 1천만 달러를 내어 고향인 스코틀랜드 대학에 카네기 기금을 설치했다. 이 기금은 스코틀랜드의 가난한 아이들의 학비를 보조해주고, 학교 발전에 이바지하기 위한 것이다. 1905년에는 1천5백만 달러를 내어 세계적으로 이름난 교수들의 연구비와 연구기금에 쓰도록 했다.

전쟁을 막기 위하여 국제재판소를 짓는데 150만 달러를 기부하고, 1천만달러를 주어 국제 평화를 위하여 쓰게 했다. 그러나 1914년 세계 제1차대전이 일어나자 충격을 받았다.

1919년 8월 11일, 그는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가 죽은 후 남은 재산은 2천200만 달러였다.

 

카네기는 일생을 통하여 성실과 근면으로 재산을 쌓아 올렸고, 그 재산을 잘 관리하여 사회발전과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썼다. 마지막으로 그는 말하였다. “부자는 자기보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재산을 보관하는 것입니다. 돈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의 뛰어난 지식과 경험을 관리능력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써야 하며, 그들을 대신하여 그들 이상으로 훌륭하게 일을 처리해야 합니다.”

카네기는 돈을 정당하게 벌어서 그 돈으로 행복을 누린 사람이었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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