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333.목숨바쳐 일제의 만행에 항거했던 대한의 민족지도자들

 

조선 말기, 제국주의 일본은 한반도를 점령하기 위하여 1894년 청일전쟁을 일으켜 종이호랑이였던 중국을 꺾고 한반도를 집어 삼킨다. 그것도 모자라 1904년에는 동북아시아를 집어 삼키려던 러시아제국과 충돌 러일전쟁을 일으킨다. 일본이 제아무리 동아시아의 신흥강국이었기로서니 막강했던 대 러시아제국과의 전쟁에서 이긴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게임이었다. 그러나 일본은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후 미국, 영국 등의 강대국들과 침략 상호 묵인체제를 구축하였으며, 이듬해인 1905년 일제는 급기야 조선의 외교권을 박탈하기 위하여 ‘을사조약’을 강제로 체결하였다.

이에 비분강개한 계정(桂庭)민영환은 다음과 같은 유서를 남기고 자결 순국하였다.

“오호! 나라의 치욕과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우리 인민은 장차 생존 경쟁 가운데서 진멸하리라. 대개 살기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죽고, 죽기를 기약하는 사람은 도리어 삶을 얻나니 제공(諸公)은 어찌 이것을 알지 못하는가. 단지 (민)영환은 한번 죽음으로 황은(皇恩)에 보답하고 우리 2천만 동포형제에게 사죄하려 하노라. 그러나 영환은 죽어도 죽지 않고 저승에서라도 제공을 기어이 도우리니 다행히 동포형제들은 천만 배 더욱 분려(奮勵)하여 지기(志氣)를 굳게 하고 학문에 힘쓰며 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여 우리의 자유 독립을 회복하면 죽어서라도 마땅히 저 세상에서 기뻐 웃으리라. 오호! 조금도 실망하지 말지어다. 대한제국 2천만 동포에게 죽음을 고하노라.”

산재(山齋)조병세 또한 고종에게 을사조약의 무효와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처형 등을 연소(聯疏)하다가 일본놈들의 방해로 실패하자 자결하였다.

경북 상주 출신의 언론인이자 애국계몽운동가였던 위암(韋庵)장지연은 《황성신문》에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 이란 제목의 사설로 민족 침략의 원흉인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를 맹비난하고, 을사오적은 우리나라를 왜놈에게 팔아 만백성을 노예로 만들려는 매국노임을 주장하였다. 선생은 아울러 고종황제가 을사조약을 승인하지 않았으므로 이 조약은 의당히 무효임을 만백성에게 알렸다. 이에 국민들은 크게 통분하였고, 전국 도처에서 항일 의병운동이 일어났다.

당시 이 강제조약에 찬성하고 서명한 다섯의 매국노는 학부대신 이완용ㆍ군부대신 이근택ㆍ내부대신 이지용ㆍ외부대신 박제순ㆍ농상부대신 권중현으로 우리 후손들은 이들을 일러 ‘을사오적’이라 부른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야할 중추대신의 몸으로 한낱 자기 개인의 부귀와 영달을 위하여 감히 일제에게 조국을 팔아먹은 민족의 반역자였던 것이다.

1910년 8월 28일 일제는 한일병합으로 조선을 멸하고 식민통치를 시작함으로써 519년을 이어온 조선은 그 국권을 완전히 상실하게 된다.

“조선인들은 역사적 자부심과 문화에 대한 긍지가 높아 통치가 어렵다. 그들을 대 일본제국의 식민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가장 큰 자긍심인 역사를 각색하여 피해의식을 심는 것이다. 조선인을 뿌리가 없는 민족으로 교육하여 그들의 민족을 부끄럽게 하라. 문화 역시 일본의 아류(亞流)임을 강조하여 교육해야 한다. 창씨개명을 통해 먼저 조상 단군을 부정하게 하라. 그것이 식민 국민을 식민 국민답게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그렇게 될 때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스스로 대 일본 제국의 시민으로 거듭나고 싶어 할 것이다.”

일제 강점기 시절, 총독부에서 조선을 보다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서 내린 지침이다.

“조선의 고서들을 찾아내어 모두 불살라 단군조선을 말살하라!”

일제는 총독부의 지시에 따라 1910년 11월부터 1년2개월 동안 단군조선 관련 고사서 51종 20여만 권을 불태웠다. 일본판 갱유분서(坑儒焚書)였다. 또한 일제가 조선침략과 지배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타율적이고 정체된 사대주의적인 역사로 규정하기 위한 활동의 일환으로 1925년에는 일명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를 설립하여 35권 2만4천여 쪽에 달하는 이른바 《조선사(朝鮮史)》를 날조·발행하였다.

그리고 단군을 설화로 표현한 《삼국사기》ㆍ《삼국유사》등의 역사서만 남겨두어 마치 단군조선의 역사를 전설속의 신화(神話)인 것처럼 만들었으며, 이때 처음으로 “단군신화(檀君神話)”라는 단어가 등장했다. 신화의 내용이자 일제의 주장대로 단군은 인간이 아닌 곰의 자손이라는 것이다.

일제의 역사 왜곡으로 단군조선의 반만년 역사는 사라지고, 한민족의 역사는 근멸(根滅)되어 조선의 역사가 왜놈들의 역사보다 짧아지게 되었고, 일제치하의 조선인들은 ‘조선사편수회’에 의해 철저히 만들어진 역사만을 교육받을 수 있었다.

일본 놈들의 역사왜곡의 만행은 이 뿐만이 아니라 호랑이를 닮은 조선 한반도의 지형이 마치 중국대륙을 향해 앞발을 들고 서있는 토끼의 형상과 같다면서 그 이미지를 호랑이에서 토끼로 바꾸어 강인한 조선민족의 기세를 꺾어 놓는 극악무도한 만행을 자행하기도 했다. 이는 단순히 호랑이의 형세를 토끼로 비유한 것이 아니라 우리민족의 정체성과 강한 자부심을 억누르기 위한 일종의 약아빠진 계략이었던 것이다.

또 세종대왕 때부터 조선왕조 말기까지 무려 400년간이나 지속하면서 보존돼왔던 종묘제례악이 일제 강점기 때 일제에 의해 이름이 바뀌었고 악장가사는 거의 절반이나 변질되어 조선 왕조를 격하 또는 비하시키는 내용을 담게 되어 본래의 악무(樂舞)가 갖고 있던 사상성이나 의미가 크게 훼손되었다. 또한 종묘의 문화재적 우수성과 조선조 전통문화의 위상에 결정적 오점이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무형문화재로 지정되어 연주되고 있는 것이 모두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의 잔재인 것이다. 하루속히 확정(廓正)하여 문화재적 우수성과 위실된 우리 전통문화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하겠다.

일제가 조선침략과 식민지배의 학문적 기반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조작해낸 역사관인 “식민사관(植民史觀)”은 일제의 조선침략을 정당화 하고 조선인의 항일 독립의지를 약화시키기 위함이 주된 목적이었다. 이 식민사관으로 우리 민족이 열등의식과 무력감에 사로잡히는 심리적 근거가 되기도 하였으나 광복이후 주체적인 역사연구와 교육이 이루어지면서 대부분 극복되었다.

이러한 일제강점기 식민사관에 대항하는 우리 한민족의 역사관인 “민족사관(民族史觀)”은 우리 한민족의 우수성과 자율 주체적인 발전을 강조하고 민족사의 기원을 밝힌 국사학의 한 이념인데, 이는 지배체제에 대한 저항의 역사관으로서의 성격과 함께 국수주의 재야사학과 연결되는 경향이 있다. 단재(丹齋)신채호를 통해 정립되었으며 담원(薝園)정인보ㆍ산운(汕耘)장도빈ㆍ민세(民世)안재홍ㆍ호암(湖巖)문일평 등에 의해 계승되어 일제의 식민사관에 맞섰다.

하지만 신채호 선생은 결국 일본의 패망을 보지 못하고 1936년 향년 57세를 일기로 여순 감옥에서 순국하셨다. 선생은 생전에 늘 “내가 죽거든 시체가 왜놈들의 발길에 채이지 않도록 화장해서 재를 바다에 띄워 달라.”는 유언을 하셨다고 한다.

1945년9월8일 서울에 진주한 미군사령관 JR하지 중장 앞에서 일제의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항복문서에 서명을 했고, 9월12일 제10대 조선총독의 자리에서 물러나 일본으로 돌아갔다. 그가 조선총독부의 마지막 업무를 마치는 자리에서 조선인들에게 이런 망언을 남겼다고 한다.

“우리는 패했지만 조선은 승리한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데, 조선민이 제 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되찾으려면 족히 100년 이라는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은 조선인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植民史觀)을 심어 놓았다. 너희들은 결국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인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하고 찬란했지만 머지않아 결국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는 다시 돌아온다.”

이런 일본을 적국이라 생각하지 않고, 우리민족에게 비록 용서받을 수없는 크나 큰 죄를 저질렀지만, 원수를 사랑하라는 성인의 가르침에 분한 마음 잘 달래어 마음속 한 귀퉁이에 깊이 묻어두려 해도 금방 괘씸한 마음이 다시 들게 되는 것은 우리 민족에게 죽고 싶을 만치의 뼈저린 고통을 안겨준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을 인정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대 놓고 역사를 왜곡하고, 초중 교과서를 날조하는 만행은 야만의 종자들이 아닌가싶다.

수시로 독도는 일본 땅이라고 우리 국민들을 괴롭히며, 정치하는 자들은 태평양전쟁의 전범이 안치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해 주변 피해국들을 분노케 만들고 각종 망언들을 내뱉어 우리 국민들을 분노케 하는 저들은 과연 민족의 정체성과 인간 본연의 최소한의 양심은 있는지 혈통 자체가 심히 의심스럽다.

일본의 역사 왜곡은 범국제적인 당위성을 위하여 국제사회로부터의 지지기반을 단단히 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나 있다. 이에 우리 정부는 어떠한 대처를 하고 있는지 묻고 싶다. 중국이 동북아의 역사를 왜곡하여 훗날 국제사회로부터의 질타를 미리 준비하기 위하여 국책사업으로 오랜 시간 공을 들여 준비하는 이른바 ‘동북공정’이나 일본이 독도의 영유권을 주장하며 말도 안 되는 국제사회의 공정한 판결 운운하는데, 우리 국민들은 더 이상 이를 가만히 앉아서 지켜볼 수 없다. 대한민국 정부 당국의 다각적이고 현명한 대처를 촉구하며 그것은 곧 우리의 숭고한 역사가 왜곡되는 억울함을 당하지 않음이며, 국토 수호의 유일한 방법일 것이다.

사부 언필칭(師父 言必稱), 역사가 없는 민족은 민족의 뿌리가 없고, 역사를 잃어버린 민족은 민족의 정체성이 없다.


〈2018.07.12 한림(漢林)최기영〉ericchoi11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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