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바탕 신바람 굿판

 

마른 장작에 불이 붙어 타오르듯 많은 사람들에게 동시에 일어나는 흥바람, 그것은 말할 것도 없이 굿판에서 무당이, 그리고 주위 사람들이 신과 접촉하여 누리는 흥이요, 신명이다.
그 굿이 집에서 액을 막기 위해 하는 집안굿이건, 동네 사람들이 돈을 모아 음식을 하고 북, 장구, 꽹과리를 두들기며 집돌이를 하는 동네굿이건, 혹은 무당이 올리는 무당굿이건 간에 굿을 치르는 과정에서 그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음주가무를 통해 하나로 어우러지면서 신명상태에 빠져드는 판이 순식간에 이루어진다.

인간의 길흉화복을 신에게 기원할 목적으로 벌이는 제의(祭儀)라고 할 수 있는 굿은 무당이 자신의 신에게 올리는 무당굿인 무신제(巫神祭)와 민가의 개별적인 굿인 가신제(家神祭), 그리고 마을의 액을 막고 풍년, 또는 풍어를 비는 마을 공동굿인 동제(洞祭)로 구분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무당이 주재하는 굿에는 신에 씌워 신의 목소리를 내는 신격전환 즉, 엑스타시(Ecstasy)라는 것이 있다. 신격전환이 없는 세습무(世襲巫)에 비해 신이 내리는 강신무(降神巫)인 이 굿은 처음에는 천천히 회무를 추다가 차츰 빨라지고 격해지면서 아래위로 뛰는 도무(蹈舞)가 있은 후 신의 입장에서 인간에게 설화하는 과정에 뒤이어 한차례의 춤으로 마무리 하는데, 여기서 춤을 추는 것을 신에 접근하기 위한 것으로 본다.
김형효 교수는「한국사상산고」에서 무(巫)자는 춤추면서 신명을 다함에서 유래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즉 ‘巫’자는 ‘工’자에 人人(두사람)이 춤을 추는 형상에서 나왔다는 것이다. 그래서 춤을 추는 것은 강신(降神)하기 위함이요, 노래를 부름은 신과 벗하기 위함인데 춤과 노래는 모두 기도(祈禱) 즉, 재앙을 피하고 복을 비는 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무(巫)자의 형상이 하늘과 땅을 두명의 인간이 춤을 추는 모습으로 잇고 있는 것처럼 신과 일체가 된 무당을 통해 사람들이 신에 접근함으로써 인간과 신이 하나가 되어 천(天), 지(地), 인(人) 합일의 장이 이루어진다. 울긋불긋한 옷을 입은 무녀가 잽이들의 장단에 따라 춤바람을 날리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웅성거림을 멈추고 그녀의 사그락거리는 옷자락 소리, 발을 내딛는 버선소리만이 들릴 정도로 숨을 죽인채 춤과 사설(辭說)에 빠져 들어간다.
그녀가 “엇세! 엇세!” 하며 신을 부르며 아래위로 껑충껑충 뛰는 도무(蹈舞)를 출 때쯤이면 그녀의 눈빛은 신이 내린 듯 타오르고 그녀의 둘레를 에워 지켜보고 있던 구경꾼들은 ‘얼씨구!’하며 장단이라도 맞추는 마음으로 발꿈치를 들고 어깨를 들썩인다. 신에 잠겨서, 그리고 신에 실려서 춤추고 노래하면서 황홀과 앙분(昻奮), 격앙(激昻)과 도취를 넘나드는 무당의 신명, 그, 신바람에 취해 구경꾼들도 흥이 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굿청을 에워싸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무당의 신바람에 감염되어 곧 난장(亂場)이 만들어진다. 신성한 장에서 생명과 재생의 장으로 바뀌어 신명으로 맺힌 감정을 푸는 집단적인 놀이의 장이 시작되는 것이다. ‘난장’ 즉, ‘야단굿’이란 말이 시사하듯 사회적 제약에 묶이고 눌려있던 갖가지 욕구와 욕망이 일시에 터뜨려진다. 술의 신(神) 박카스에게 바친 오지(Orgy)같은 제의적(祭儀的) 광란이 시작되는 것이다.

살인과 도둑질을 제외하고는 어떠한 행동도 용납되는 이 난장이 15일간 지속되고 사람들은 각기 마음속에 맺힌 것들을 자유롭게 표출함으로써 쌓였던 앙금을 씻으면서 신바람이 폭발하는 장을 연출한다. 평소 인간 생활을 억압하던 제약들과 인간 사이에서 빚어졌던 갈등이 난장 속에서 적나라하게 노정되면서 갈등이 해소된다. 이 무질서, 야단법석으로 맺힌 것이 풀리며 가슴이 시원해진다. 이 난장이 계속되는 동안 임금은 두 손을 모으고 혹 있었을지도 모를 자신의 잘못을 뒤돌아보며 백성들과 하나 되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백성들은 이 굿판에서 자신을 잊고 몰입함으로써 황홀경에 이르고, 강요나 억지도 없고 부조리나 비리도 없는 가운데 나랏님과 한마음이 되고 신령과 융합하는 체험을 통해 천지인합일(天地人合一)상태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인간과 자연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 이르면서 동시에 인간이 하늘과 땅의 합성적 존재 즉, 천지간 중심핵이 되는 존재임을 같이 느끼고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보다 더 귀한 존재가 없다는 인식을 공유하며 마음을 합치는 것이다.

굿을 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가슴에 맺힌 것을 풀고 주위 사람들과 마음을 하나로 합칠 수 있기 때문에 신바람이 난다. 이 굿판은 신과의 대화, 주위 사람들과의 대화가 이루어지는 곳이다. 특히 마을굿 비용을 마련키 위해 주민전체가 돈을 걸립(乞粒)하는 과정에서 같은 마을에 사는 공동운명체로서의 결속의식을 다지게 된다. 굿이 끝난 후에는 주위 마을 사람들까지 참여하여 재수와 건강에 좋다고 믿는 제사음식을 골고루 나누어 먹기도 하고 지신밟기, 농악놀이, 소리판, 탈판을 벌이기도 하면서 신명나게 한판을 놀며 묵은 감정을 씻는다.

이처럼 굿과 놀이는 ‘굿을 논다’, ‘굿놀이’라고 표현되듯이 서로 가름할 수 없을 정도로 얽혀 있다. 태풍이 지나가듯 신명을 피우는 난장이 다 지나고 나면 그 공동체는 정화 되고 쇄신된다. 이 굿판을 통해 자신을 잊었다가 다시 회복하는 재생의 힘을 얻어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전통적인 질서와 규범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를테면 조화의 회복인 것이다. 그것이 치병굿이건 재수굿이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삶의 부조화를 없애고 다시 조화를 이루게 해주는 역할을 한다.
모두가 하나로 어우러지는 체험은 신들림 속에서만 가능하다. 현실에서의 부조리, 인간관계에서의 오해와 갈등들을 도무지 감당하기 힘들 때 사람들은 굿판을 벌이고 그 신들림 속에서 조화를 찾고 화합의 장을 가짐으로써 어려움 속에서도 더욱 힘차게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얻는 것이다. 복과 화를 같이 누릴 주위 사람들에 대해 한층 강한 애정을 느끼며 인간 자체가 바로 최고의 선이며, 인간의 길을 지키는 길이 곧 하늘의 길을 지키는 것임을 알게 된다. 나의 이익과 너의 이익을 따로 나누어서 보지 않고 커다란 하나로 보는 자타일여(自他一如)의 가치관, 어느 민족보다도 강한 인본주의 정신이 집약되어 있는 홍익인간의 건국이념이 조상들의 삶속에 살아 숨 쉰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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