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의 정신적 뿌리-1

 

‘원형(原型)’은 변하지 않는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난다. 팥으로는 메주를 쓸 수 없다는 이치이다. 이것이 자연의 섭리요, 생태계의 본질이다.
사람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억조창생(億兆蒼生)의 얼굴 모습이 서로 다르듯이 사람은 저마다 독특한 개성을 지니며 그것으로 그 사람의 됨됨이(正體性 : Identity)를 형성한다. 혈연과 지연, 문화와 역사를 같이한 민족의 원형도 변하지 않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변하는 것은 그 시대를 규제하는 문화정신의 소산(所産)인 사고(思考)의 틀 즉 범형(汎型, 패러다임)일 뿐이다. 고려시대에는 불교적, 조선시대에는 유교적 범형이 지배했다. 그러나 한국인의 원형은 양시대를 관통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동양인과 서양인의 원형이 다르고 같은 동양인이면서도 일본인과 한국이이 같지 않다. 바꾸어 말하면 원형이 다르기 때문에 민족끼리 마음의 벽을 허물지 못한다. 역사를 거슬러 고대에 접근할수록 그 순수성과 배타성은 강하게 나타난다.
수많은 사회학자, 인류학자, 문명비평가들도 민족 고유의 사고체계인 민족성을 중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민족원형(民族原型)’이야말로 각 민족의 역사를 움직여 온 정신성 곧 에토스(Ethos)라고 했다. 심리학자 융(C.G JUNG)이 주장한 인류의 원형도 같은 의미이다. 그는 그것이 각자의 무의식속에 잠재해 있다고 보았고 그 무의식의 깊은 곳에서 약동하는 생명력의 집합적인 내용을 ‘집합적 무의식’이라 불렀다. 따라서 한 사람 한 사람의 인간이 이러한 민족적 무의식과 깊은 관련을 지니고 있다고 보았다. 이 민족원형은 일단 형성되면 민족주체가 생존하는 한 거의 변하지 않는다.

인간은 항상 원형 속에서 형성되고 문화는 언제나 범형에 의해 규제된다. 이 원형이 타의 의해 무자각(無自覺)적으로 왜곡 당할 때 민족은 멸망한다. 구약의 신을 비롯하여 역사 속에 통찰력이 뛰어난 지도자는 모두가 그들의 원형이 바뀌는 것을 가장 싫어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사기(史記)’의 저자인 사마천의 궁형(宮刑)이다. 한(漢)무제는 이릉장군이 흉노(匈奴)와 싸워 패하고 결국 포로가 되었음을 알고 크게 화를 냈다. 더욱 무제를 화나게 한 것은 이릉이 흉노족의 옷을 입고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사마천은 이릉을 변호하다 한무제의 심한 미움을 산 것이 화근이 되어 궁형을 당했다. 옷을 바꿔 입는다는 것은 스스로의 원형을 바꿀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으로 고대 중국인의 무의식 속에 깊이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족의 흥망성쇠의 비밀은 원형질의 보존과 깊은 관련이 있다.
유태교의 사제인 랍비(Rabbi)의 기도는 모든 이의 가슴을 적시는 처절한 원형의식임을 알 수 있다.
“신이시여! 유태인으로부터 탈무드를 거두어 가지 마시옵소서. 그것은 곧 유태인의 멸망입니다.” 「탈무드」야말로 유태인의 민족원형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정신적 뿌리인 ‘민족원형’은 무엇인가. 그것은 단군정신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단재(丹齋)선생은 이를 ‘수두정신’이라 했다. 단군의 실재에 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지 않지만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다. 왜냐하면 어느 민족의 건국신화이건 신화로서의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선조들이 단군신화를 통해 우리 민족의 이상적인 삶의 형태를 어떻게 제시하고 있으며 그 신화에 담긴 사상의 실체가 무엇인가 하는 점이다. 단군시화이든 한국적 무교(巫敎)이든 그것이 담고 있는 정신이 문제란 뜻이다.
많은 학자들은 단군정신에는 로고스(Logos)적 측면과 파토스(Pathos)적 측면이 있다고 보고 있다. 전자는 이상(理想)적이고 이성(理性)적인 이념의 모습이고, 후자는 현실(現實)적이고 감성(感性)적인 정감(情感)의 표출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느 경우에나 이성과 감성, 이상과 현실은 인간의 사고의 틀을 지배하는 양면모습을 대변하고 있다.
단군정신의 이성적 측면과 감성적 측면을 구분하게 하는 기준은 삼국유사 등 고대 사서(史書)의 여러 기록에서 일관되게 나타난 단군신화에 유래한다. 단군신화의 이성적 측면은 홍익인간(弘益人間)과 재세이화(在世理化)에서 찾을 수 있다. 전자는 널리 인간계를 유익하게 한다는 한국사상의 원형이고, 후자는 세상을 이(理)로서 다스린다는 이치(理致)의 대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는 단군정신의 이념이요, 로고스(Logos)다. 따라서 두 가지로 요약된 이념을 더욱 구체적으로 해석해 보면 민족원형으로서의 이상적인 삶의 모습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먼저 널리 인간 세상을 유익하게 한다는 홍익인간 사상이야말로 사랑정신의 극치이다. 모든 사람들이 조건 없는 사랑을 베풀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신의 사랑이며 절대적 사랑이다. 살신성인(殺身成仁)의 사랑이요, 이타적 사랑이다. 이러한 사랑정신이 극치에 달할 때 상대적 개념인 너와 내가 없어진다. 신과 인간의 차별도 허물어진다. 상대적 가치개념에서 절대적 가치개념으로 전환되기 때문이다. 또한 이해득실(利害得失)에서 빚어지는 편의주의와 합리주의, 실리주의들도 없어진다.
우리 선조들은 이러한 절대가치를 천도(天道), 또는 천륜(天倫)이라고 생각했고 사람들은 상대가치적인 기준으로 이를 거역함으로써 죄악이 잉태된다고 보았다. 유달리 우리 민족이 하늘을 숭상한 이유도 이러한 천인합일(天人合一)적인 사상적 맥락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나’라는 단절된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홍익인간의 세상이 못된다고 생각한 것이다.
사실상 나는 ‘나’라고 내세울 수 없다. 왜냐하면 ‘나’는 부모에게 정혈(精血)을 받아 이 세상에 태어났고 한 평생을 영위함에 있어서 하루라도 남과 더불어 살지 않고는 사회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한 나는 내 조상과 내 뒤를 이을 자손만대에 이르기까지 서로 고리로 연결된 나이기 때문에 나는 나만의 내가 아니다. 그러므로 너와 나는 남일 수 없고 선조와 나도 같은 고리에 묶여 있는 동체(同體)이며, 나는 하늘과도 절대적 사랑으로 소통할 수 있다고 믿었다.
따라서 이러한 세계관을 가진 우리 선조들은 나와 남, 나와 선조, 나와 후손, 나와 하늘, 나와 땅이 모둔 나와 같은 한 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우리 선조들의 이와 같은 홍익인간적 사고의 틀은 이 세상 모두를 사랑하는 것이다. 그것은 곧 나를 사랑하는 일이기도 하다. 즉, 너와 나를 구별하는 상대적 사랑에서 벗어나 더 큰 사랑으로 모두를 포용하는 절대적 사랑이 바로 홍익인간이 추구하는 이념인 것이다. 여기에서 모두가 하나라는 ‘한’사상이 유래하고 있는 것이다. 자타일여(自他一如), 생사일여(生死一如), 신토불이(身土不二)적 사상이 같은 맥락에서 수천년 동안 우리 민족정서의 원형으로 용해되어 있었던 것이다.

재세이화(在世理化)도 단군정신의 중요한 이념적 기틀이며 재세이화는 천하를 이치(理致)로 다스린다는 뜻이다. 이러한 정신에 바탕을 둔 우리민족의 정치사상은 유가(儒家)의 덕치주의와 법가(法家)의 법치주의를 이치주의(理致主義)로 융합하고 조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정자가 덕을 갖추면 법으로 명령하지 않아도 국민이 스스로 질서를 지킨다는 덕치주의는 때와 장소에 따라 막연하기도 하고 실효성이 적다고 보았고 법치주의는 인간의 이성이 문제가 된다고 보았다. 우리 선조는 덕치와 법치를 양극화하지 않고 이치를 내세워 조화를 꾀하였다.
이 이치는 사람에게 있어서는 이성이 되고 사회의 존재질서에 있어서는 규범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천지 대자연의 원리와 인간의 이성과 사회의 존재규범에 잘 맞도록 정치를 하는 것을 최고로 꼽았던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이(理)는 서양의 합리성과는 다른 우리 실제생활에 관계되는 모든 규범이 무리 없이 와 닿는 전체이다. ‘그럴 리가 없다’, ‘이치(理致)에 맞지 않는다’ 등의 이(理) 앞에서는 와도, 신하도, 부모도, 자식도 승복한다. 이(理)의 정치는 강압적인 힘을 사용하지 않는다. ‘순리’대로 하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화백제도의 만장일치가 가능했던 이유도 순리에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재세이화는 상하간의 계급의식을 거부한다. 임금과 신하간의 신분관계도 평등하며 모든 정사는 순리에 따라 의결하고 행한다. 여기에서 우리 민족의 또 다른 이념으로서의 훌륭한 원형을 볼 수 있다. 상하간에는 차별의식이 없고 군신간의 신분까지도 지극히 ‘평등주의’적이며 ‘이치주의’라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민본정치의 원형을 단군정신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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