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321.송도삼절(松都三絶)로 손꼽히는 기생 황진이

 

송악ㆍ송도ㆍ개주ㆍ개경ㆍ송경 등은 모두 평안도 개성(開城)의 옛 이름들이다.

918년, 고려의 태조인 왕건이 후고구려의 궁예를 추방하고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데 그 국호를 ‘고려(高麗)’라 정했다. 이듬해 왕건은 철원에서 송악(松嶽)으로 천도를 하며 개주(開州)라 바꿔 부르다가 960년, 다시 개경(開京)으로 바꿨다. 개성은 475년 동안이나 왕조를 이어나간 한마디로 고려역사의 심혼이 살아 숨 쉬는 유서 깊은 고장이라 할 수 있겠다.

예로부터 중국과 맞닿은 지리적 여건으로 중국과의 교역이 활발해 자금이 원활히 돌고 반면 세금감면의 혜택이 많았으며, 소위 내로라하는 기생들이 많기로 유명했던 평안도의 감사(관찰사) 발령은 당시 지방 관료들의 최고의 희망사항이었다 한다. 이와 관련해 생겨난 속담이 바로 “평양감사도 저 싫으면 그만이다.”인데, 여기서 말하는 “평양감사”는 틀린 단어이고 정확하게는 “평안감사”라고 해야 옳다. 당시의 감사(監司)라는 자리가 요즘의 도지사와 같은 자리여서 평양을 포함하는 도 단위인 평안도의 평안감사라 불러야 정확한 것이다. 평양은 평안도 전체를 총괄하는 감영(監營). 즉, 감사가 정무를 맡아보던 관아(官衙)가 있었던 곳으로 지금으로 말하자면 평안도의 도청소재지였던 것이다. 굳이 비유하자면 평안감사는 경기도지사정도로, 평양시는 수원시쯤으로 이해하면 좋을 듯하다.

오늘은 송도삼절(松都三絶)중의 하나라 일컫는 당대 최고의 기생 황진이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하는데 화담(花潭)서경덕, 박연폭포와 더불어 자신을 감히 송도의 삼절이라 칭했던 그녀는 조선역사상 최고의 미모와 예술과 사랑과 자유를 추구했던 하지만 기구한 삶의 여인이었다.

양반의 얼녀로 출생했던 황진이는 16세기 당시 조선사회의 규범에 따라 양반의 첩이 될 운명이었다. 첩이라는 것이 정실부인에 비하면 한참 못 미치는 것이지만, 첩의 자리라면 그나마 안정적인 삶을 살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자신처럼 그녀의 자식도 서출이라는 신분상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실도 받아들여야만 했고, 황진이는 당시 기녀들의 로망이라던 이른바 ‘양반가문의 첩’자리를 버리고 기생이라는 천한 신분을 택하게 되며 이를 통해 사대부를 세상의 조롱거리로 만들어 양반도 상놈과 별반 다를 바 없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것을 알리고자 했다. 이러한 황진이의 자유로움과 급진적인 성향은 수많은 유명 문학·예술인들로부터 각종 소설 및 드라마, 영화의 소재로 사랑받을 수 있었던 확실한 이유였다.

참고로 ‘얼녀’란 천첩이 낳은 딸을 가리킨다. 조선시대 첩의 자식들을 서얼(庶孼)이라 불렀다. 이 서얼 간에도 차별이 있어 서(庶)는 양인(良人)첩의 자손, 얼(孼)은 천인(賤人)첩의 자손을 말한다. 따라서 양첩의 자식은 서자(庶子), 천첩의 자식은 얼자(孼子)라 하였다.》

황진이가 학식과 권세를 겸비한 조선사대부들을 희롱하고자 조선 최고의 군자라고 불리던 종실 벽계수를 유혹한 일화는 너무도 유명하다.

『 황진이의 미모와 기예가 하도 뛰어나서 그 명성이 조선팔도에 널리 퍼졌다. 자신은 결코 황진이의 유혹에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던 벽계수는 황진이를 만나기를 원하였으나 풍류명사(風流名士)가 아니면 황진이를 만나기 어렵다는 말을 듣고 이달이란 자에게 그녀를 만날 수 있을만한 방도를 물었다.

“그대가 황진이를 만나려면 내 말대로 해야 하는데 따를 수 있겠소?”라고 이달이 물으니 벽계수는 “당연히 그대의 말을 따르리다.”라고 답했다.

이달이 말하기를 “그대가 소동(小童)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가지고 뒤를 따르게 하여 황진이의 집 근처 누각에 앉아 술을 마시고 거문고를 타고 있으면 황진이가 나와서 동자의 곁에 앉을 것이오. 그때 본체만체하고 일어나 재빨리 말을 타고가면 황진이가 따라올 것이오. 취적교를 지날 때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으면 일은 성공일 것이오, 그렇지 않으면 성공하지 못할 것이오.”라고 했다.
벽계수가 그 말을 따라서 작은 나귀를 타고 소동으로 하여금 거문고를 들게 하여 누각에 올라 술을 마시며 거문고를 켜게 하니 과연 황진이가 옆에 앉았다. 벽계수는 그녀를 본체만체하고 바로 일어나 나귀를 타고 가니 황진이가 그의 뒤를 쫒았다. 취적교에 이르렀을 때 황진이가 동자에게 그가 벽계수임을 묻고는 시조를 한 수 읊는다.

청산리 벽계수야 쉬이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명월이 만공산할제 쉬어감이 어떠하리

벽계수는 밝은 달빛 아래 나타난 꾀꼬리처럼 고운 음성과 그녀의 아름다운 자태에 놀라 그만 나귀에서 떨어졌다.』

격조 높은 황진이의 시조 앞에 벽계수는 군자로서의 허울을 벗어던진 것이다. 종친이라는 신분과 당대 최고의 호인이라던 벽계수를 무너뜨린 일로 황진이는 유명세를 탔다.

벽계수에 이어 불가의 생불로 통하던 지족선사(知足禪師)를 파계시켰고, 도학군자로 취명하였던 화담(花潭)서경덕을 유혹하기도 했다.

황진이의 일생에서 결코 빠질 수 없는 인물이 바로 화담선생인데, 그녀는 화담이 과연 진실한 군자인지 거짓된 군자인지를 밝혀보고자 했다. 뭇 남성들이 황진이 앞에선 모두 무릎을 꿇었지만 화담선생만큼은 그녀의 유혹을 뿌리쳤다. 그의 그런 높은 덕망 앞에 황진이는 감복하여 화담의 제자가 되기를 자청했다 한다.

이후 황진이는 당대의 절창(絶唱)이던 이사종(李士宗)을 사랑하여 송도를 떠나 6년간이나 조선팔도를 유람하였으며, 황진이의 마지막 사랑이었던 소세양(蘇世讓)이란 인물은 “황진이가 제 아무리 천하절색이라고는 하지만, 나는 그녀와 딱 한 달만 함께 하고 깨끗하게 헤어질 것이다. 만일 하루라도 더 그녀의 곁에 머물게 된다면 나를 인간이 아니라고 해도 좋다.” 황진이를 만난 소세양은 한 달의 약속으로 동거에 들어갔다. 마침내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소세양은 황진이와 함께 이별의 술잔을 나누었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을 하고 있다가 시 한수를 소세양에게 써주었다. 그런 그녀의 시 한수는 소세양의 심금을 울렸고, 친구들은 약속을 지켜내지 못한 소세양을 인간이 아니라고 놀렸다 한다.

달빛 아래 뜰에는 오동잎 모두 지고 찬 서리 들국화는 노랗게 피었구나
다락은 높디높아 하늘만큼 닿았는데 오가는 술잔은 취하여도 끝이 없네
흐르는 물소리는 차기가 비파소리 피리에 감겨드는 그윽한 매화향기
내일 아침 눈물지며 이별하고 나면 님 그린 연모의 정 길고 긴 물거품이 되네

소세양과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황진이는 40세의 나이로 짧은 인생을 마감한다. 그녀는 파란만장했던 삶을 산 여중호걸답게 마지막 유언 또한 속인들과는 사뭇 달랐다.

“나는 평생에 여러 사람들과 같이 놀기를 좋아하였은즉 고적한 산중에다 묻어주지 말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대로변에다 묻어주며, 또 평생을 음률을 좋아하였은즉 장사지낼 때에도 곡을 하지 말고 고악으로 상여를 전송해 달라. 또한 나 때문에 천하의 남자가 자신을 스스로 사랑하지 못했으니 생전의 업보로 내가 죽거든 관을 쓰지 말고 시체를 동문 밖에 그냥 내쳐 뭇 벌레들의 밥이 되게 해 천하 여인들의 경계로 삼아라.”

훗날 백호(白湖)임제가 가변의 쓸쓸한 황진이의 무덤을 발견, 그녀가 죽고 없음에 대한 아쉬움을 달래며 다음과 같은 시 한수를 읊었다.

청초 우거진 골에 자난다 누워난다
홍안을 어데 두고 백골만 묻혀난다
잔 잡고 권할 이 없으니 그를 설워하노라

과거 김대중 정권에서 햇볕정책을 정당화시키려는 일원으로 만들었던 개성공단이 지금은 남과 북의 이해관계로 전면 멈춰져있는 상황이다. 개성공단은 친북주의자로서 이른바 햇볕정책의 숙원(?)을 이루어 낸 고(故) 김대중 대통령의 엄청난 작품(?)인데, 언젠가는 이런 사달이 일어나게 될 것을 알고도 강행한 김대중 대통령은 오늘날 불귀의 몸이지만 자신의 정신을 계승하려는 친북 정치인들을 끊임없이 양산해내고 있다. 당시 정부의 대북정책을 믿고 개성공단에다 투자를 했던 많은 기업인들은 대북정책의 기조가 바뀌는 바람에 사업체를 두고도 갈수가 없는 말도 안 되는 꼴을 당했고 대한민국정부는 책임을 지지 않아 사업이 망한 기업인들이 부지기수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부를 믿고 북의 땅에다 사업을 시작한 기업인들은 졸지에 회사를 잃은 것이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당시 개성공단을 만들었던 정부는 훗날 이런 일이 생길 것을 모를 리 없었겠지만 훗날의 일이 당시 무엇인가에 혈안이 되어있던 절대적 권력자의 야욕을 잠재울 수는 없었다.

김일성이 친히 자신의 아들을 맡긴 황장엽이라는 큰 인물이 자유의 땅 대한민국으로 망명을 한 역사적 사건은 대북기조를 과거와 완전히 달리 가져가야만 한다는 김대중 대통령의 이른바 햇볕정책 주장이 북에서는 주체사상을 만든 장본인으로 화려한 이력과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인물의 망명의 이유와는 완전히 반대방향이기에 김대중 정부는 황장엽 선생을 안전가옥이라며 창살 없는 감옥에 가둬두고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각계각층에서 빗발치는 강연요청과 인터뷰 및 출판제의는 애써 공들여 짜놓은 햇볕정책을 완전히 뒤집는 일이기에 황선생의 대외적 활동 일체를 막았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햇볕정책인데 당시 정부가 북에게 바친 엄청난 금액의 돈들이 결국 북의 핵개발의 뒷돈이 되었고 북은 오늘날 국제사회를 들었다 놨다 하는 미국도 쉽게 다루지 못할 정도의 엄청난 건달이 되고 말았다.

하여튼 이미 만들어진 개성공단은 말 그대로 ‘계륵(鷄肋)’인데, 닭갈비처럼 먹자니 뻑뻑해서 거북스럽고 버리자니 아까운 상황인 것이다. 지금까지의 북의 스타일로 봐선 언제든 수틀리면 개성공단을 막고 맘 내키면 우호적 관계를 거론해가며 양국 교류차원에서 또다시 재가동시키고 언제든지 지들 마음대로 꺼내들 수 있는 카드이다.

최근 강력한 미국의 압박을 견디다 못한 북한은 스스로 협상테이블을 만들어 보려는 모습이다. 혹자는 갑자기 180도 변한 저들의 속내를 의심도하고 혹자는 강경했던 저들이 강력한 압박을 견디다 못해 결국 손을 들고만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절대 외교적 중심을 잃지 말아야할 것이다. 저들의 돌변한 태도에 흥분해 무엇이든 요구를 들어주어서도 안 된다. 냉철함을 잃지 말고 저들이 진심으로 변했다면 최대한 따뜻하게 받아주되 주변국들과의 공조를 통해 체제를 보장해주는 선상에서 외교적 지원이 기본인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알만한 내용이다.

같이 죽자고 덤벼들던 북이 하루아침에 개과천선해 모든 것을 내려놓을 리는 만무하다. 다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타당한 것이고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 그리고 국제사회의 평화와 번영이 전제된 일이라면 목숨을 걸고라도 도와야겠지만 별 조건 없이 단순한 체제보장이라는 엉뚱한 제안은 그들의 과거 행태를 보아서는 생각할 내용도 아니다.

부디 이번 일을 계기로 양국이 보다 우호적인 관계로 발전하고 그렇게 적당한 시간을 보내다가 좋으면 통일을 천천히 고려해 보는 것이 최선의 방법일 것이다.

< 2018.03.22 한림(漢林)최기영 > ericchoi1126@naver.com


 

 No.

Title

Name

Date

Hit

2045

[최기영의 세상이야기]342.공자의 정명론을 행하면 밝은 세상이 만들어진다

최기영

2018.10.18

573

2044

세대(世代, generation)별 차이와 특성(52)

김정휘

2018.10.17

387

2043

한국추상미술의 리더 유희영의 ‘색면추상’

이성순

2018.10.16

541

2042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06)

정우철

2018.10.14

447

2041

바이칼 호의 현무(玄武), 부르칸 바위(不咸岩) -생명의 뿌리

주채혁

2018.10.15

521

2040

357. 내가 ‘닐 암스트롱’이 된 듯 우주비행 훈련에서 달 착륙까지 체험(?)했다!

인승일

2018.10.13

360

2039

역사의 허(虛)와 실(實)-3

여상환

2018.10.12

170

2038

[최기영의 세상이야기]341.훈민정음, 백성을 가르치는 바른 소리

최기영

2018.10.11

416

2037

세대(世代, generation)별 차이와 특성(51)

김정휘

2018.10.10

295

2036

모더니즘 건축의 거장 ‘알바 알토’를 만나다

이성순

2018.10.09

600

2035

홍오두~오녀산성 넘나드는 Along Mountain(阿龍山) 고개[BC4~5C] Ⅳ

주채혁

2018.10.08

562

2034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305)

정우철

2018.10.07

281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