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창과 합창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위 18번곡이라는 것이 있어 분위기가 적당히 무르익으면 누구나 노래 한 곡씩은 할 줄 안다. 술자리가 벌어지고 흥이 돋우어지면 시키지 않아도 노래하며 어깨춤을 절로 추는 풍류를 아는 국민이다.
아낙들의 작은 계모임에서부터 직장인들의 회식, 고관들의 연회석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모임에는 꼭 장기장랑을 하는 시간이 있는데, 이런 경우 대부분 혼자서 나름대로 멋들어지게 노래를 부르기 마련이다. 이렇듯 노래와 춤이 남 앞에서 자기를 나타내는 우리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 되어왔다. 처음에는 서먹서먹해서 서로 체면을 차리고 앉아 있다가도 술이 한잔 들어가고 거기에 북, 장구나 밴드까지 더해지면 놀 줄 모르는 사람이 없다. 기분이 내키면 한 달 봉급을 몽땅 털어서라도 즐겁게 놀아버리는 소위 기분파 국민이기도 하다. 노래와 춤을 통해 자기를 드러내고자 하는 우리 국민의 욕구를 흡수하여 꽤 오랫동안 인기를 누리고 있는 ‘KBS 전국 노래자랑’이라는 프로를 언젠가 본 적이 있다. 혼자 나와서 하는 독창이 대부분이었는데 가수 못지않은 노래솜씨를 보여주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아예 음정, 박자 관계없이 혼자만의 흥에 취해 몸을 신나게 흔들며 노래하는 사람도 있었다. 남이 자기를 어떻게 평가하든, 지금의 상황이 어떤 내용의 것이든 관계없이 자기식대로 놀아버리는 우리의 성향이 그대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되었다.

우리 국민은 처음에는 점잖게 앉아 남이 어떻게 하나 보고 있다가 분위기가 차츰 무르익어가면 이처럼 각자의 기분대로 정신없이 놀아버리는 경향이 있다. 감정이 움직이기 쉬운 꽃피는 봄이나 분위기 좋은 가을, 혹은 선거철이 되면 아예 버스를 타고가면서 술을 마시며 취홍에 겨워 춤추며 노래한다. 절정에 다다르면 남이 어떤 노래를 어느 속도로 부르는 지는 안중에도 없고 오로지 자기 나름대로 부르는 한국형 디스코 합창이 흘러나온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과격한 춤에 혀 꼬부라진 불명확한 가사와 맞지 않은 박자에 고함소리가 더해져 시끄럽게 전개되는 합창이다.

서양인과 중국인은 술에 취해서 정신을 잃는 것을 싫어한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술을 좋아하며 술에 취해서 노래 한가락을 멋지게 뽑아내는 것을 호기롭다고 생각한다. 잠자고 있던 기백과 정열을 술이라는 매개체를 빌어 노래와 춤을 통해 폭발적으로 나타낸다. 우리는 신났다, 기분 좋았다 하면 엄청난 힘을 분출해 내는 동시에 남을 생각지 않고 자기만의 흥으로 신나게 놀기도 하고, 기분이 나쁘면 말하지 않고 시무룩하게 그냥 앉아 있기도 하는 자기중심적 성향이 있다.
미국, 유렵에서는 보편적으로 어떤 모임들에서 사전준비 없이 아무한테나 노래를 시키는 경우는 퍽 드물다. 우리처럼 18번이라는 비장의 노래가 없어서인지 그들은 지명 당했을 때 매우 당혹해 한다. 그러나 몇 명이 짝지어서 하는 합창은 잘한다. 그래서인지 함창음악회(콘서트)가 많고 인기도 독주회보다 높다. 또한 그들은 노래로 자기를 나타내는 것보다 말로 정확히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술에 취해 황설수설 하는 것도 없이 언제든지 이성을 잃지 않고 합리적이며 분명한 자세를 견지한다.

우수한 독창력이 있는 개인이 모인다고 해서 우수한 합창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합창은 개인의 뛰어난 목소리보다도 전체에 맞게 자기를 조절하여 조화를 이루려는 정신이 더 요구되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우수한 목소리가 때론 작아지고 때론 완전히 죽기도 해야 아름다운 합창이 될 수 있는, 독창과는 매우 다른 어려운 규칙이 있다. 큰 소리, 작은 소리, 긴 소리, 짧은 소리, 높은 소리, 낮은 소리, 맑은 소리, 탁한 소리 등 각자가 내야 할 소리가 따로 있다. 자기가 낼 소리를 정확히 내야만 훌륭한 합창이 이루어질 수 있다. 작고, 짧고, 낮고, 탁한 소리가 없으면 훌륭한 합창이 되지 않는다. 자기가 소리를 내지 못하면서 남의 소리만 탓해서는 안 된다. 또 어떤 수를 써서라도 크고, 길고, 높고, 맑은 소리만 내기를 원해서도 안 된다. 보다 성숙한 선진국민이 되려면 각자가 내는 모든 소리의 중요함을 알아야 한다. 작고 낮은 소리를 낼 줄 아는 사람도 인정받고 보람을 느끼며 살 수 있는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이 합창의 규율을 잘 지켜가지 못하면 선진국민, 일등국민이 될 수 없다.

이제 우리 국민의 무한한 신바람의 힘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우리 모두의 18번곡이 하나의 음률로 흘러나오게 해야 한다. 남의 음정, 박자에도 귀를 기울이고 혼자만 잘하는 18번 노래가 남도 좋아하는 것인지 신경 좀 써주자.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러한 화(和)의 문화를 이루어내는 것이다. 각자의 목소리를 좀 낮추어 남의 목소리와 균형을 이루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남이야 듣든지 말든지 기분에 따라 부르는 노래를 재조율하여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야 한다.
근로자의 노래, 정치가의 노래, 상인의 노래, 농부의 노래가 하나로 모아지고 전라도 노래, 경상도 노래. 충청도 노랫소리가 힘찬 합창으로 어우러져 전 세계에 메아리치도록 해야 한다. 우리 한국인도 마음만 먹었다하면 훌륭한 합창을 할 수가 있다. 화(和)의 문화가 우리 한민족 원래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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