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320.민족시인 이상화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몇 년 전부터 하루의 시작을 거실 쇼파에 앉아 따뜻한 모닝커피 한 잔과 함께 조간신문을 읽는 것에서 바뀌어 커피를 타서 서재로 들어가 컴퓨터를 부팅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김동길의 프리덤왓치(www.kimdonggill.com)를 들어가 김동길 선생님께서 쓰신 칼럼이 오늘은 어떤 내용일까를 확인하는 일이 나의 하루의 시작을 준비하는 습관이 되었기 때문이다.

감히 이 분의 글이 잘못 될 리 만무하지만 나는 누구보다도 선생님의 칼럼이 온라인상에 올라가는 일련의 과정을 잘 알기에 그래도 혹여나 옮기는 과정에서 실수는 있을 수 있는 것이기에 혈안이 되어 오타를 찾는다. 그러하기에 나는 남들보다 선생님의 칼럼을 여러 번 읽는다. 또 새로운 이야기들의 일곱 명의 필진 중에는 내가 가장 ‘막둥이’이기에 선생님께서 어느 날 친히 나를 부르시어 그런 권한을 주셨다.

‘당구삼년폐풍월(堂狗三年吠風月)’이라고 매일 매일을 이런 일상을 반복하다보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실력(?)이 늘어가고 있었다. 선생님께서 처음 내게 칼럼을 써보라고 권유를 하셨을 때의 말씀이 기억난다.

“처음에는 낯설어 많이 힘들고 고되겠지만 몇 년의 시간이 흐른 후에는 자신도 모르게 엄청난 식견으로 쌓이게 될 것이며 그것이 인생을 사는데 적잖은 밑천이 될 것이다.”

교양(敎養)이란 학문, 지식, 사회생활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품위. 또는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을 일컫는 말이다. 즉, 지식의 벽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진 집과 같은 것이 아닌가 싶다.

이런 말 하면 뭐하지만 지난 6년간 칼럼을 쓰는 동안 어떤 때에는 생업에 심각한 위기가 다가와 밤새 비몽사몽으로 칼럼을 쓰고는 다음날 눈동자에 핏기가 가시지도 않은 채 신용을 지키려 동분서주 했던 적도 있었다. 고비 때마다 선생님의 칼럼에서 자연스레 배웠던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도 있는 인생의 난관에 부딪혔을 때 현명하게 대처하는 법이 자연 떠올랐고 나는 선생님의 그런 가르침을 확신했다.

1928년 태어나신 김동길 박사님이 겪었던 시련들에 비하면 내게 다가와 있던 배고픔들은 정말 낯부끄러운 작은 일들이었기 때문이었으니까.

웬만한 정도의 고비를 넘어 본 사람에게 그 다음에 닥친 고비는 이미 한 번 넘었던 일이라 마치 세상을 잃은 듯 나라를 뺏긴 듯 눈앞이 깜깜해지는 두려움 속에서도 의연히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 법이고 결국 이런 과정들 속에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다는 진리를 알고 나면 세상이 한결 쉬워진다. 다만 한결 쉬워진 세상이라고 자만하거나 으스대면 견디기 힘든 시련이 찾아온다는 것이 인생의 진리인 듯싶다.

내가 이룬 오늘의 것들은 대인들의 이룸에 비하면 너무 작은 것이라 감히 언급할 내용도 아니겠지만 의지가 박약한 신세대들을 위해 오늘이 고난스러워도 참고 부딪히고 정신을 가다듬고 기다리다보면 누구에게든 기회는 반드시 찾아오게 되는 것이라는 것을 지면을 통해서라도 꼭 강조하고픈 마음이다. 그러나 기회는 형체도 없고 소리나 예고 없이 슬며시 왔다가는 것이라 항상 준비되어 있어야 내게 다가온 기회를 느낄 수 있다.

죽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살고자하는 강한 의지이다. 우리의 역사가 증명해주었듯, ‘빼앗긴 절망의 들에도 결국 봄은 왔다.’

민족시인 이상화는 일제강점기 국토를 빼앗긴 식민지하의 민족현실을 '빼앗긴 들'로 그렸다. 1926년 《개벽》 6월호에 발표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비록 나라는 빼앗겨 얼어붙어 있을지언정, 봄이 오면 민족혼이 담긴 국토, 즉 조국의 대자연은 우리를 일깨워준다는 것이다. 일제에 대한 강력한 저항의식을 이 시를 통해 표현했다. 이 때문에 《개벽》지는 결국 일제에게 폐간 되고 말았다.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 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나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 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 자국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를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나 가자.
마른 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 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 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2018.03.15. 한림(漢林)최기영 > ericchoi11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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