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316.시대를 조소(嘲笑)했던 방랑시인 김삿갓

 

조선 후기의 유명한 방랑시인 난고(蘭皐)김병연은 평소 큰 삿갓을 뒤집어쓰고 조선팔도를 돌아다녔다고 해서 그의 성(姓)에다가 삿갓 립(笠)자를 붙여 김립(金笠)이라 불리었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우리들에게는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역시 가장 친근하게 다가온다.

김병연은 1807년 조선 후기, 당대의 명문이었던 안동 김씨의 시조이자 고려의 개국공신 김선평의 후손으로 경기도 양주에서 출생하였다.

이 시기, 그러니까 조선 후기의 우리나라는 삼정의 문란으로 내약(內弱)한 상황이었다. 각종 부조리와 정치ㆍ사회적인 난맥상(亂脈相)이 드러났던 시기였던 것이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여러 계층의 다양한 저항행동들이 표출되었다. 전국적으로는 돌림병과 천재지변이 끊이지 않았으며 계속되는 민란 등으로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김병연이 5세 때, 당시 선천부사(宣川府使)였던 조부(祖父) 김익순은 ‘지방 차별 타파’를 구호로 내걸고 일어난 평안도 농민항쟁(홍경래의 난)에서 제대로 싸워보지도 않고 반란군의 수장 홍경래에게 투항했던 일을 거짓으로 꾸며 오히려 자신이 민란을 제압한 공로자로 조정에 보고했던 사실이 발각되어 처형당했다. 이 사건이 이른바 ‘김익순의 정법’인데, 대역죄인의 집안으로 멸족을 당할 위기에 놓였으나 노복(老僕)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피신해 숨어 살았다. 그가 여덟 살 되던 해에 천신만고로 사면되어 고향인 양주로 돌아오나, 그의 가족들이 온전히 터를 잡고 살 곳이 없었다. 가족들은 이곳저곳을 떠돌다 강원도 영월 땅에 정착을 했다. 몰락한 집안을 다시 일으켜보려는 어머니의 견결한 의지로 어려운 살림살이였음에도 불구 병연은 학문에만 정진할 수 있었다. 그 결과 어린 나이에 이미 사서삼경을 통달하는 영특함을 보였으며 특히나 글재주가 남달랐다.

김병연이 열여섯이 되던 해 과거에 응시를 했는데, 시제가 〈논 정가산 충절사 탄 김익순 죄통우천(論 鄭嘉山 忠節死 嘆 金益淳 罪通于天)〉 즉, “정가산의 충성스러운 죽음을 논하고, 김익순의 죄가 하늘에 이를 정도였음을 통탄해 보라.”였다. 그는 김익순이 자신의 조부인 줄도 모르고 “한 번은 고사하고 만 번 죽어 마땅하고, 너의 치욕스러운 일동국의 역사에 유전하리.”라는 명문으로 장원급제를 하게 된다. 급제의 기쁨도 잠시뿐, 김병연은 어머니로부터 자세한 집안내력을 듣고, 조상을 조롱하는 시제를 풀어 과거에 급제를 한 것에 대한 극심한 자책과 주변사람들의 폐족에 대한 멸시로 고민하다가 결국 벼슬길을 포기하고 방랑생활을 시작한다.

죽장망혜(竹杖芒鞋)에 괴나리봇짐 하나를 둘러메고, 얼굴은 전체를 가리다시피 하는 큰 삿갓을 뒤집어쓰고는 정처 없이 조선팔도를 떠돌아다니게 된 것이다.

삿갓을 읊다 詠笠(영립)

가뿐한 내 삿갓이 빈 배와 같아 / 浮浮我笠等虛舟(부부아립등허주)
한번 썼다가 사십 년 평생 쓰게 되었네 / 一着平生四十秋(일착평생사십추)
목동은 가벼운 삿갓차림으로 소 먹이러 나가고 / 牧堅輕裝隨野犢(목수경장수야독)
어부는 갈매기 따라 삿갓으로 본색을 나타냈지 / 漁翁本色伴沙鷗(어옹본색반사구)
취하면 벗어서 구경하던 꽃나무에 걸고 / 醉來脫掛看花樹(취래탈괘간화수)
흥겨우면 들고서 다락에 올라 달구경 하네 / 興到携登翫月樓(흥도휴등완월루)
속인들의 의관은 모두 겉치장이지만 / 俗子依冠皆外飾(속자의관개외식)
하늘가득 비바람 쳐도 나만은 걱정이 없네 / 滿天風雨獨無愁(만천풍우독무수)

어느 날 지나가던 사람이 “어찌 그렇게 큰 삿갓을 쓰고 다니오? 불편하지 않소?”라고 특이한 복장을 한 김삿갓에게 묻자, “조부가 나라를 배신했고, 나는 조부를 배신하였으니, 하늘아래 차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는 몸이라 그러오.”라고 대답했다한다.

김삿갓은 시로써 당시의 부조리한 양반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였고, 부정부패를 일삼는 세도가들을 조롱하였으며, 오만하고 방자한 부자들의 허풍을 마음껏 풍자하였다. 그의 시는 늘 백성에 대한 연민의 마음과 부당하게 대우받고 사는 가난한 백성들의 속내를 대변하는 한풀이로써 충분했다. 특유의 재치와 해학으로 서민들의 애환을 주로 즉흥시로 빗대며 한평생을 살게 된다.

산과 들 그리고 사람에 얽힌 그의 시는 한 수 한 수 철학이 깃들어져 있으며 풍자성이 강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루는 김삿갓이 어느 깊은 산골에 사는 가난한 농부 집에 하룻밤을 묵게 되었다. 가진 것 없는 주인이 미안해하며 나름 정성껏 대접해 내어온 죽 한 사발에 김삿갓은 즉흥시 한 수를 지어 화답한다.

네 다리 소반 위에 멀건 죽 한 그릇 / 四脚松盤粥一器(사각송반죽일기)
하늘에 뜬 구름 그림자가 그 속에서 함께 떠도네 / 天光雲影共排徊(천광운영공배회)
주인이여, 면목이 없다고 말하지 마오 / 主人莫道無顔色(주인막도무안색)
물속에 비치는 청산을 내 좋아한다오 / 吾愛靑山倒水來(오애청산도수래)

또 하루는 김삿갓이 함경도의 어느 부잣집에서 냉대를 받고 나그네의 설움을 한문 숫자 새김을 이용하여 표현한 재미있는 즉흥 풍자시를 읊조린다.

스무나무 아래 서른 나그네가 / 二十樹下三十客(이십수하삼십객)
마흔 집안에서 쉰밥을 먹네 / 四十家中五十食(사십가중오십식)
인간 세상에 어찌 일흔 일이 있으랴 / 人間豈有七十事(인간개유칠십사)
차라리 집으로 돌아가 서른 밥을 먹으리라 / 不如歸家三十食(불여귀가삼십식)

방랑시인 김삿갓은 함경도 단천에서 한 선비의 호의로 서당을 차리고 3년여를 머무는데, 가련은 이 때 만난 기생의 딸이다. 그의 나이 스물 셋. 힘들고 지친 방랑길에서 모처럼 갖게 되는 안정된 생활과 아름다운 젊은 여인과의 사랑. 그러나 그 어느 것도 그의 방랑벽은 막을 수 없었으니 다시 삿갓을 쓰고 정처 없는 나그네 길을 떠난다.

가련한 행색의 가련한 몸이 / 可憐行色可憐身(가련행색가련신)
가련의 문 앞에 가련을 찾아왔네 / 可憐門前訪可憐(가련문전방가련)
가련한 이 내 뜻을 가련에게 전하면 / 可憐此意傳可憐(가련차의전가련)
가련이 이 가련한 마음을 알아주겠지 / 可憐能知可憐心(가련능지가련심)

김삿갓은 살아생전 약 1천여 편의 시를 쓴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456편 정도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옳은 것은 옳다, 그른 것은 그르다고 한다는 뜻으로, 사리를 공정하게 판단함을 일러 시시비비(是是非非)라고 하는데, 김삿갓이 읊조린 시시비비란 제목의 시가 참으로 수준급이어서 소개해 보려한다.

이 해 저 해 해가 가고 끝없이 가네 / 年年年去無窮去(년년년거무궁거)
이 날 저 날 날은 오고 끝없이 오네 / 日日日來不盡來(일일일래부진래)
해가 가고 날이 와서 왔다가는 또 가니 / 年去月來來又去(년거월래래우거)
천시(天時)와 인사(人事)가 이 가운데 이뤄지네 / 天時人事此中催(천시인사차중최)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이 꼭 옳진 않고 / 是是非非非是是(시시비비비시시)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해도 옳지 않은 건 아닐세 / 是非非是非非是(시비비시비비시)
그른 것 옳다 하고 옳은 것 그르다 함. 이것이 그른 것은 아니고 / 是非非是是非非(시비비시시비비)
옳은 것 옳다 하고 그른 것 그르다 함. 이것이 시비일세 / 是是非非是是非(시시비비시시비)

김삿갓은 오랜 방랑 생활로 인해 쇠약해져, 전라도 땅에서 그의 나이 쉰일곱에 쓸쓸히 눈을 감았다. 마지막으로 그의 자서전과도 같은 일대기로 죽기 직전에 썼다는 <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를 소개하며 오늘의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난고평생시(蘭皐平生詩)

새도 둥지가 있고 짐승도 굴이 있건만 / 내 평생을 돌아보니 너무 가슴이 아프네 / 짚신에 대지팡이로 천리 길을 떠돌며 / 물과 구름처럼 사방을 내 집처럼 여겼네 / 남 탓할 수 없고 하늘 원망할 수도 없어 / 섣달그믐엔 서글픈 마음 가슴을 미였네 / 어려서는 좋은 세상 만났다 생각하며 / 한양이 내가 성장한 고향인줄 알았네 / 집안은 대대로 부귀영화를 누려 / 꽃 피는 장안 명승지에 집이 있었네 / 이웃 사람들이 아들 낳았다고 축하하고 / 조만간에 장원급제 출세하길 기대하였네 / 머리카락 자라선 팔자가 기구하여 / 뽕나무 밭 바다 되듯 집안이 망하였네 / 의지할 친척 없고 세상인심 박해지고 / 부모상 마치자 집안이 황폐하였네 / 남산 새벽 종소리 들으며 신 끈을 매고 / 동방풍토 돌아다니며 시름이 가득찼네 / 마음은 고향 그리는 여우같건만 / 형세는 울타리 뿔 걸린 양이네 / 남녘지방에 예부터 나그네 많았다지만 / 부평초처럼 떠도는 신세가 몇 년인가 /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어찌 본색이랴만 / 입 다물고 사는 것이 그 중에 상책이라 / 이리 살며 차츰 세월을 잊어버려 / 삼각산 푸른 모습이 아득하기만 하여라 / 강산 떠돌며 구걸한 집이 수도 없건만 / 풍월시인 행장은 빈 자루 하나뿐이네 / 천금의 부자와 만석꾼 부자들의 / 후하고 박한 가풍을 고루 맛보았지 / 신세는 궁박하여 늘 백안시당하고 / 세월 갈수록 머리만 희어져 가슴만 아프네 / 돌아가기도 어렵지만 그만 두기도 어려워 / 죽도록 길 위에서 떠돌아야 하는 신세네

< 2018.02.08. 한림(漢林)최기영 > ericchoi11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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