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의 세상이야기]308.서산대사가 후세에 남긴 이정표

 

1392년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고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날 시기까지 200여 년간 이렇다 할 전쟁을 치르지 않아 국방강화정책이 약화되었고, 동인들과 서인들의 오랜 당쟁으로 인해 조선은 외부 적으로부터의 침략에 대한 대처에 큰 문제가 있었음을 스스로 알지 못했다.

같은 시기, 일본은 전국시대 때 분열된 나라를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가 기초를 마련하고 그를 주군으로 모시던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등장하여 100여 년 동안이나 계속되어 온 내란을 수습하고 통일국가를 수립하였다.

오다 노부나가의 고모노(소자小者, 주인의 집에 더부살이로 살면서 잡다한 일을 담당하는 사람)였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그 출신이 너무도 미천하여 사실 일본을 통치할 지배자가 될 만한 신분은 아니었다. 또한 계속된 전쟁으로 인한 국토의 황폐화, 유랑민의 급증, 전쟁 세력의 잔존 등으로 통일 이후 일본은 적잖은 문제가 발생했다. 그 중에 가장 무서운 것이 복속시킨 다이묘(大名)들의 반란이었다. 결국 이들의 관심을 외부로 돌리고 보상으로 지급할 땅과 곡식의 수급을 위해서는 대륙과의 전쟁이 불가피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 정복에 대한 열망을 부추겨 지방 영주들의 막강한 군사력을 전쟁이라는 구실로 집결 시켜서 반란을 미리 예방하려는 계략으로 드디어 대륙과의 전쟁을 결정하기에 이른다.

한편, 조선과 오래토록 친선관계였던 명(明)나라는 북방으로부터의 여진족의 잦은 침입으로 국력이 많이 쇠퇴한 반면, 일본은 몇 백년간의 계속된 전란에서 얻은 다양한 경험과 서양으로부터 새로 수입된 조총이란 우수한 병기가 있었음에 대륙을 정벌하려는 것에 큰 두려움이 없었다.

급기야 일본은 명나라와 화친을 맺고 있던 조선에게 정명가도(征明假道). 즉, 명나라를 치러 가려하니 조선은 길을 열어달라는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한다. 조선의 조정이 거절하자 일본은 이를 빌미로 1592년(임진년) 4월 조선을 쳐들어온다.

이것이 바로 임진왜란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전 조선의 조정에서는 서인 황윤길을 정사로 하고 동인 김성일을 부사로 하여 통신사를 일본에 파견했었는데, 이때 황윤길은 임금께 아뢰기를 “풍신수길은 겉으로는 평화를 말하며 조선과의 우호를 주장하지만 그 내심에는 야욕이 가득 찬 인물로서 반드시 경계해야할 인물”로 보고했으나, 부사인 김성일은 “풍신수길의 외모가 볼품없고 그 사람됨이 용렬(庸劣)하여 절대 조선에 위협이 될 만한 인물이 못된다.”고 선조께 보고하여 조정내부에서도 의견을 하나로 모으지 못하였고, 율곡(栗谷)이이의 이른바 ‘10만양병설’을 묵살함으로써 조선은 건국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출정군을 9개로 나누어 20만 명이 넘는 수군과 육군을 필두로 부산포를 공격하였고 무방비 상태의 조선은 삽시간에 조총으로 중무장한 왜군에 의해 피로 물들었다. 얼마 후 평양마저 함락시켰다는 보고를 받은 풍신수길은 중국정벌의 꿈에 부풀게 되었고, 중국정복 이후의 계획까지도 발표하였다. 파죽지세의 왜군은 함경도까지 진격하였으나, 이해 유월 조선팔도 전역에서 봉기한 망우당(忘憂堂)곽재우와 같은 의병장들과 서산대사나 사명당 같은 승병장들이 조선의 무능한 관군들을 대신하여 의·승병을 이끌어 왜군을 격파하였고, 바다에서는 성웅 이순신이 이끄는 수군의 대활약으로 전세를 만회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하였다.

쉽게 끝날 듯싶었던 전쟁이 장기화되자 왜군은 명나라와의 화의교섭에 들어간다. 명나라의 사신 심유경과 왜장 고니시간의 강화가 성립되자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일단 철수를 명하였으나, 그것이 명나라에게 속은 것임을 알고는 크게 분노하여 화의를 결렬시키고 1597년 1월 다시 군대를 동원하여 조선에 2차 침입을 감행함으로써 정유재란을 일으킨다. 그러나 기나긴 전쟁에 지친 왜군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고 오랜 전쟁으로 인해 국력만 소모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이듬해 1598년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중병을 앓고 이윽고 “철병(撤兵)하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이로써 승자도 패자도 없는 7년간의 전쟁은 끝을 맺게 되었고,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대륙정벌의 야욕이 무리했던 이유로 일본은 국민 생활이 피폐해졌으며, 국내 봉건 제후의 세력이 급격히 약화되어 훗날 소설 ‘대망(大望)’의 주인공인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일본 에도 막부의 초대 쇼군으로 등극하게 된다.

임진왜란은 조선 건국이후 최대의 전란이자 국가적 위기였다. 앞에서 언급했던 ‘봉기한 승병장’ 서산대사(휴정, 休靜)는 72세의 노구(老軀)를 무릅쓰고 전국 각지의 승려들에게 “전장으로 뛰어들어 나라를 구하라”는 내용의 격문으로 승병들을 결집하고 친히 승병장으로 의승군을 통솔하여 평양을 수복하는 큰 공과를 올렸다. 선조는 그에게 팔도선교도총섭(八道禪敎都摠攝)이라는 직함을 내렸으나 연로쇠경(年老衰境)을 이유로 군직을 제자인 사명당(유정, 惟政)에게 물려주고, 묘향산으로 돌아가 나라의 평안을 기원하였다. 서산대사는 선조가 서울로 환도할 때, 수백여 명의 승병을 거느리고 개성으로 나가 어가(御駕)를 호위하며 맞이하였고, 선조가 무사히 서울로 돌아오자 그는 승군장의 직에서 물러나 묘향산으로 돌아와 열반(涅槃)을 준비하였다.

그 뒤에도 이곳저곳을 순력(巡歷)하다가 1604년 묘향산 원적암에서 설법을 마치고 자신의 영정을 꺼내어 그 뒷면에다,

“80년 전에는 네가 나이더니, 80년 후에는 내가 너로구나 / 八十年前渠是我, 八十年後我是渠”

라는 시를 적어 제자인 사명당에게 전하게 하고는 가부좌한 채, 85세를 일기로 입적하였다. 입적한 뒤 21일 동안 방 안에서는 기이한 향기가 가득했다고 한다.

다음은 서산대사께서 입적하기 직전 읊은 ‘해탈시(解脫詩)이다.

삶도 한 조각 뜬구름이 일어남이요 / 生也一片浮雲起(생야일편부운기)
죽음도 한 조각 뜬구름이 스러짐이다 / 死也一片浮雲滅(사야일편부운멸)
뜬 구름 자체가 본래 실체가 없는 것이니 / 浮雲自體本無實(부운자체본무실)
나고 죽고 오고 감이 역시 그와 같다네 / 生也去來亦如然(생야거래역여연)

중국 당나라 때의 한상이라는 고명한 시인은 “인간은 백년도 못 살면서 천년의 근심을 가지고 산다.”고 인간의 어리석음을 표현했다.

개중의 사람들이 기우(杞憂). 즉, 하늘이 무너지는 근심으로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기우란,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 또는 그 걱정’을 뜻하는 말로, 옛날 중국 기(杞)나라에 살던 어떤 사람이 ‘만일 하늘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하고 침식을 잊고 걱정하였다는 데서 유래한다.

서산대사가 후대에 남긴 삶의 진전(眞詮). 즉, 참된 깨달음처럼 “인간은 죽음에 다다라 사대(四大). 곧, 육신이 진정한 ‘나’가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오온(五蘊). 곧, 살아 움직인 활동이 모두 공(空)이라는 것을 알아차려야 비로소 세간을 벗어난 자유인으로 해방되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이 세상에서 익힌 매듭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곧 다시 얽매임으로 굴러다니게 된다.”는 말씀을 깨달아 남을 해하려는 욕심을 버리고, 보다 지혜로이 행복하게 살다가려는 것이야말로 인생의 참 진리임을 늘 새기고 살자.

끝으로 민족지도자 백범(白凡)김구 선생께서 평소에 자주 읊조리셨다던 애송시이자, 서산대사의 선시(禪詩)를 이록하며 오늘의 칼럼을 마무리 짓고자 한다.

눈 덮인 광야를 지나갈 때에는 /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
행여 그 걸음을 어지럽게 하지 말라 / 不須胡亂行(부수호난행)
오늘 남긴 나의 발자국이 / 今日我行跡(금일아행적)
마침내 후세들의 이정표가 되리니 /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

< 2017.11.23. 한림(漢林)최기영 > ericchoi112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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