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비사』몽문(蒙文)환원 산실 고가에서 회상하는 『환단고기』 역주

 


 
『몽골비사』는 몽골 정사 중의 정사로 사마천의 『사기』보다 세계 역사학계에 관계 연구자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사서다.『환단고기』(계 연수)는 1911년에 간행되어 일부 재야사가들에게 전승되어 오다가 2012년 『안 경전 역주본』이 출간되면서 역사학계에 알려진 것으로 안다. 필자는 역주에서 유목사적 시각이 개입될 짙은 가능성을 나름대로 직감하면서 비로소 이제 막 잠깐 눈을 돌려보기 시작한 데 지나지 않는다. 전공 지도교수가 경성제대 사학과 출신인 당시의 유일한 한국인 몽골사가 고 병익 교수님인데다 전공이 13세기 칭기스칸 몽골제국 연구이고.연구 대상 자체에 대해 어떤 특정 가치나 의미를 부여하기보다는 “썩은 삶은 달걀에서 푸른곰팡이에 주목해 페니실린을 연구·검출해낸다”는 식의 연구접근방식을 이어받아서 더욱그러했다.물론 거대한 팍스 몽골리카를 역사적 연구대상으로 삼고는 너무나도왜소한 자신의 능력한계를 절감한 게 당시의 현실적 제일 주요 원인이었을 수 있다.
 


[그림]첸드꿍(祖,1875~1932년.漢文本 『元朝秘史』 몽골어문 복원<좌>)·엘덷테이(父,1908~1981<중>)·아.아르다잡(子,1936~2015<우>) 다구르족 『몽골비사』 몽문 환원 3대 집안.훌룬부이르·눈강(嫩江)선원(鮮原:Sopka &Steppe)일대가 고향인 아. 아르다잡 교수는 네이몽골사회과학원 역사연구소 파견 교수로 1999~2000년에 걸친 논자의몽골 기원지 현지 유목사유적 답사에 반려가 되어 헌신적인 기여를 해주었다.훌룬부이르 시 하일라르구 첸드꿍-엘덴테이-아. 아르다잡 3대 <『몽골비사』 중국어본 몽골어 환원> 학자집안 고가는 창고처럼 방치되고 있다. 윗 칼라사진은 1999년 10월 고가를 찾은 아.아르다잡 교수.  chuchaehyok.com 에 실림



그런 필자가 지금 감히 이 문제에 단편적이나마 조금 손을 대보게 된 데는나름으로 사연이 있다. 이른바 1980년대를 뜻밖에도 거의 해직교수로 보내다가 90년 몽·한 수교가 이루어지면서 전공분야의 희소가치? 때문에 생각지도 않게 한국몽골학회 창립을,북방정책의 주도 역을 맡은 노태우 정부의 도움으로 떠맡게 되었다.그래서 때마침 소속대학인 강원대 하서현 총장[농업자원경제학]의 강력한 주선으로 내몽골대학과 국내에서 맨 먼저 자매결연 하면서 ‘『몽골비사』 환원’ 3대 집안 손자 아. 아르다잡 교수를 반려로 삼아 그의 고향인 유목몽골 기원지 호눈선원(呼嫩鮮原:Honun Sopka &Steppe) 현지답사를 시작하는 행운을 안았다.참으로 현장에서 유목현장에 아주 무지한채로 유목을 너무 많이 배웠고,근래까지 직·간접적으로 학문적 교류를 해왔으나 나이를 먹으면서 갖 80대에 든 그이가 타계했음을 제자 에르덴바아타르 교수[내몽골 대, 칭기스칸 아우 조치 카사르 후예,홍산 문화권  赤峰이생가]를 통해 전해 듣고 그 역사적인 집안의 유적 하나라도 띄워 남겨야 겠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몽골비사』 환원’이란 본래 위구르어로 쓰인 원본을 한자몽음(漢字蒙音)의 전사본(轉寫本)으로 다시 제작해 전해져 남겨진 것을 그 한자문어 주해(註解)병기를 주시하면서 몽골문어(文語)로 복원(復元)해본 작업을 말한다.1917년 부라아드의 자금 지원을 받아 이 작업을 이룬 아. 아르다잡(阿爾達札布:Aula. Ardaajab) 교수의 조부 첸드꿍(成德 公: Цэндгүн)은 당시에 피살됐고 부친 엘덴테이(額爾登泰:Eldentei)에 이어 손자 본인에이르기까지 계속 그 작업이 계승·발전돼 이어지고 있었다.부리아트, 다구르,에벵키,오룬춘,나나이 등 몽골족을 이루어온 여러 유목몽골로이드의 구비 사료와 유적이나 유물  및 언어·민속 들을 두루 섭렵하며 복원을 이루어내고 있었다.막 2000년대에 들며 한국에 와서 관계 학술대회에 직접 참여한 적도 있다. 

본래 열강 각축 중의 틈새에서 힘의 균형을 활용하면서 민활하게 독립투쟁 차원에서 이루어진 몽골역사 복원 작업이었다. 순수사학적인 접근보다는 그 나름의 장단점의 출입이 있을 수는 있지만 한자기록사료 일변도의 예속성을 과감히 끈질기게 벗어나면서 세계사적 차원의 「몽골비사학」을 일구어내고 있는 데는, 팍스 몽골리카 체제 하에서 인류사 상 첫 세계사인 랏시드 앗 딘의 『집사』를 써낸 금자탑 차원의 일대 공헌이 무엇보다도 더 강고한 디딤돌이 되었던 것이라 하겠다. 아. 아르다잡 손자 교수는 네이몽골대 교수였다가 18년간 하방당해 중학교 교사로 재직 중에, 제자들에게 6개월간 학교 창고에 감금당하기도 했다. 고난 중의 순간 순간에도 자의적(恣意的)인 사료해석을 금기시하고,올바른 구미사가들의 엄밀한 사료검증정신을 할 수 있는 한 따라 배우려 몸부림치던 겸허하고 숭고한 그이의 사가로서의 정신자세에 다시 한번 더 경의를 표한다.

한겨레사에 관해 문외한이라 할 논자가 시원 유목몽골사를 천착해 보다가 유목몽골시원사의 일환으로서의 ‘차탕조선’에 이른 터에,『환단고기 역주본』(2016년)에 12환국(桓國) 위치가  대부분 바이칼 호 동쪽 싱안링 북부에 자리 잡고 있음을 나름대로의 전거를 확보해 기록하고 있음에 놀라 새삼 이에 주목케 되었다. 논자가 눈여겨보는 순록유목민의 ‘차탕조선 태반’일대에 내포되는 영역이어서다.물론 여기서 지칭하는 「차탕조선」은 일 민족·일 국가사 차원의 명칭개념이라기보다는 유목이라는 특정 목축업종의 의미를주로 내포한다.

이런 구체적인 한 사료문제를 굳이 이에 꼬집어 언급하는 까닭은 이럴 경우엔 적어도 치밀한 사료비판을 전제로 한다면,『환단고기』가 사가가 사료로 주목해야 할『몽골비사』에 버금가는 시원 유목몽골사료로는 정식으로 치부될만하지 않을까 해서이다.훌룬부이르 ‘『몽골비사』 몽문(蒙文)환원’ 산실 고가에 새삼 다시 들어보며,단 물과 불이 그러하듯이 신앙과 역사과학은 각이한 본질이 있음을 냉엄하게 인정하고,‘『몽골비사』학’이 과학적으로 그러하듯이 ‘『환단고기』학’도 그렇게 세계적 차원으로 발돋움해,계속 상호작용해내며 생명을 제대로 살려가는 인류사적 관계 역사 복원과업에 더불어 매진해가야 하리라 여긴다.

     
chuchaehyok.com 월요칼럼 2017. 11. 2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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