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본 외교관이 있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1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뇌조리에 자리 잡은 하늘묘원. 야트막한 구릉 지대에 천주교 묘지가 조성돼 있다. 이곳에 제2대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가나야마 마사히데(金山政英·1909∼1997년)의 묘가 있다. 묘역 관리는 비교적 잘 돼 있었다. ‘제2대 주한 일본국 대사, 金山 아우구스티노 政英님의 무덤’이라고 또렷하게 쓴 묘비석이 우뚝 서 있었다. 주한 일본 대사를 지낸 인물의 묘가 일본 땅이 아니라 한국 땅에 들어선 자세한 사연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우여곡절 끝에 1965년 한·일 국교가 정상화되면서 양국 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수교 협상을 전후한 임시대리대사 체제가 끝나고 66년 3월 기무라 시로시치(木村四郞七) 초대 주한 일본 대사에 이어 가나야마가 68년 7월 15일 제2대 대사로 서울에 부임한다. 72년 2월까지 3년7개월간 주한 대사로 일하면서 한국의 산업화 초기에 한·일 관계 발전을 위해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활동했던 대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일본 재계 총리 이나야마도 두 손 들어
특히 그는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만나면서 “기백이 넘치는 훌륭한 분”이라고 평가하면서 각별한 존경을 표시했다. 박 대통령도 그를 격의 없이 대하며 아꼈다. 최서면(89) 국제한국연구원 원장은 58년부터 30년간 도쿄에 체류하면서 한국연구원을 설립하고 독도와 한·일 관계 연구에 일생을 바쳐온 원로 역사학자다. 박 대통령과 가나야마 대사의 친분 관계를 가까이서 지켜본 최 원장은 “포항제철은 박태준씨가 주도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 이면에는 가나야마 대사의 숨은 공로도 있다”며 비화를 공개했다.

 어느 날 박 대통령이 “술이나 먹자”며 가나야마 대사를 청와대 쪽으로 불렀다. 박 대통령이 돌발 질문을 던졌다.

 ▶박정희=“가나야마 대사, 당신은 누구요.”

 ▶가나야마=“예, 일본국 주한 특명전권대사입니다.”

 ▶박정희=“거꾸로는 안 되겠소. 대한민국의 주일 특명전권대사 역할 한번 해주시오.”

 박 대통령은 이날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당시 일본 총리에게 보내는 친서를 가나야마 대사에게 건넸다. 친서에는 포항제철소를 만들고 싶은데 일본 측이 기술 협력을 해달라는 요청이 담겨 있었다.

 일본 외무성에는 알리지도 않고 가나야마 대사는 조용히 도쿄로 건너가 사토 총리를 만났다.
 ▶사토=“(한국의 제철소 건설을 지원하는) 그 문제는 안 된다고 했는데 또 해달라고 가져왔군.”

 ▶가나야마=“박 대통령께서 저에게 이 친서에 답이 없으면 한국에 돌아올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일·한 관계가 끝장납니다.”

 ▶사토=“이거 큰일 났네.”

 사토 총리는 그 자리에서 이나야마 요시히로(稻山嘉寬) 신일철 회장 겸 일본 경제단체인 게이단렌(經團連) 회장에게 전화를 돌렸고 그날 밤 세 사람이 만났다.

 ▶이나야마=“나사도 제대로 못 만드는 한국이 무슨 제철소야.”

 ▶가나야마=“그런 말씀 마십시오. 1897년 야하다(八幡) 제철소(신일철 전신)를 만들기 전에는 우리도 나사조차 못 만든다는 소리를 들었어요. 변명보다는 도와줄 방법을 찾아주세요.”

 가나야마는 마치 주일 한국 대사로 부임한 사람처럼 집요하게 이나야마 회장을 설득했다. 당시까지 ‘일본의 재계 총리’로 불리던 이나야마 회장은 결국 마음을 돌렸고 포항제철소 지원의 길이 열렸다.

“광복절 행사에도 참석 못 할 이유 없어”
기억할 만한 일화는 또 있다. 대사 부임 이후 처음 맞은 69년 3·1절 기념식에 가나야마는 주한 일본 대사로서 사상 처음 참석했다. 이후 지금까지 어떤 후임 대사도 엄두를 내지 못한 기록이다. 당시 본국의 질책을 받자 가나야마 대사는 “과거를 청산하고 앞으로 한국과 잘 지내기로 해놓고 한국의 기념일을 축하하는 것이 문제가 되나. 8·15 광복절 행사에도 못 갈 이유는 없다”고 항변하며 뜻을 굽히지 않았다고 한다.

 가나야마 대사가 일관성 있게 한국에 우호적인 태도를 보여주자 일부에선 창씨개명한 한국인 김씨의 후예로 오해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가나야마 대사가 “나는 원래 구보타(久保田) 가문 출신인데 가나야마 가문의 양자가 됐다”고 해명하자 해프닝으로 끝났다. 대신 그는 김해김씨 명예회원으로 명부에 올랐다.

 이처럼 한국을 누구보다 사랑한 것은 사실이라지만 그렇다고 대사까지 지낸 일본인이 사후에 한국 땅에 묻힌 곡절을 충분히 설명해 주지는 못한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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