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127) 천리구 24

 

    정치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천리구의 사랑 다음 이야기는 참정권이다. 그것도 여성참정권이다. 여자들의 지위와 권리가 막강하여 남성의 우위에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여자들에게는 투표권이 없는 것을 천리구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평균적인 미국 여성의 지성은 다른 어느 나라 여성들보다 훨씬 탁월한 것 같으며,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여성들은 사실상 미국의 지배자다. 언제나 여성이 먼저다. 5센트를 내고 탄 전차에서 우리가 좌석을 차지할 수 있는 때는 거의 없다. 밥벌이를 하는 것은 남성인데도, 여성은 남성을 완전히 지배한다.”

    여자가 남자를 종 부리듯이 지배하는데도 참정권은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예컨대 여자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기 일쑤다.

    “,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나가서 우유병 내놓았는지 좀 봐요, 프리치가 집에 들어왔는지도 꼭 확인하고요.”

    우리나라에서도 새벽이면 우유가 배달되는 집에 많다. 근자에는 종이팩이 주로 쓰이지만, 유리병인 경우에 배달하면서 빈 병을 수거해 간다. 우유 먹는 풍습은 젖소 많이 기르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먹고 난 빈 병을 내다 놓는 일이 남편 몫이 된 것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나, 나는 먼저 잘 터이니 너는 빈 병을 내다놓는 것을 잊지 말라는 명령이다. 아이가 들어왔는지도 살피라는 것이다. 늦게 들어오면 어쩌나? 찾으러 나가나?

    여자는 대수롭지 않게 남편에게 무어라고 하지만, 듣는 남편은 즐겁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나 어쩌나? 참는 게 제일이다. 공자는 작은 일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에 혼란을 가져 온다(小不忍則亂大謀, 論語』 「衛靈公)”고 말했다. 미국 남자들은 논어는 안 읽어도 여자 말은 참고 잘 듣는다. 큰 계획을 도모하기 위하여 참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정에서만 막강한 힘을 갖는 것은 아니다. 사회 경제적으로도 큰 힘을 갖고 있는 여성이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남성들이 투표권처럼 사소한 것을 여성들에게 내주기를 주저하는지, 도저히 모를 일이다.” 정말 투표권이 사소한 것일까? 그러면서 천리구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한다.

    “다수의 주에서 머지않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한다며 기사도 정신을 뽐내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몇몇 여성은 소위 자격이 충분한정치가들보다 공직에 더 적합하다. 이런 점에서 몇몇 남성은 밥줄을 잃게 될까 두려워했다.”

    정말 밥줄 때문일까? 정치는 남자들의 일이란 관념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여성의 참정권 혹은 투표권의 확대는 세계적인 추세였다. 그 시작은 뉴질랜드(1893). 이어 오스트레일리아(1902), 핀랜드(1906), 노르웨이(1913)로 이어졌다. 또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여성의 보통선거권이 인정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 후다. 우리가 민주주의국가로 알고 있는 스위스에서도 여성선거권이 인정된 것은 1971년이다.19487월에 제정된 대한민국헌법 제8조는 모든 국민은 법률 앞에 평등하며 성별에 의하여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여 여성참정권의 기반을 마련하였으니 스위스보다 선진이라고 할까? 그러나저러나 천리구는 미국의 여성참정권에 관하여 또 이렇게 능청을 떤다.

    “여성에게 투표권을 준다면 여성들은 바느질 모임과 추수감사절 준비를 그만두고, 선거운동 여행이며 연설에 나서게 될 것이다. 물론 선거운동 자금은 추수감사절이나 브리지[트럼프 카드 게임]모임 경비보다 더 많이 나갈 것이다머지않아 이루어지게 될 일이다. 어째서 그저 논쟁거리로만 그칠 것이 아니라 대의 그 자체를 위해, 참정권을 지금 당장 줘버리지 않는가? 아내가 연단에 올라가 있는 동안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 해도 말이다.”

    미국에서는 전미여성참정권협회(The National 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1890년에 창립되었다. 그러나 이 협회는 기존의 전국여성참정권협회(National Woman Suffrage Association, NWSA)와 미국여성참정권협회(American Woman Suffrage Association, AWSA)가 합쳐진 것이었고, 따라서 여성참정권운동의 역사는 훨씬 오래다. 이러한 단체들의 운동 때문만은 아닌지 몰라도 미국은 1920년 수정헌법 19조의 비준으로 여성의 보통선거권이 국법이 되었다. 천리구가 미국의 여성참정권을 걱정하기 훨씬 후다.

    여성참정권의 기반은 평등사상이다. 평등은 자유와 더불어 근대 시민운동의 주축이다. 그러나 무엇의 평등이고, 어디까지 평등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있다. 남자와 여자가 권투를 할 수도 없을 것이며, 동일한 조건에서 마라톤경기를 할 수도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조시대에부터 그 망할 놈의 주자학(朱子學)인지 뭔지가 들어와 남존여비(男尊女卑) 여필종부(女必從夫) 따위의 해괴망측한 풍조가 불었다. 주자가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여자는 비하되고 존중을 받지 못했다. 서양에는 “Lady First!”라 하여 여성을 존중하는 미풍이 있다. 또 여러 사람 앞에서 연설을 할 적에 “Ladies and Gentlemen!”이라고 하면서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개떡 같은 신사를 앞세워 신사 숙녀 여러분!”으로 시작한다. 왜 그럴까?

    내가 오래전 대학원학생 때 들은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하나 한다. 어느 대학에서 처음 온 외국인 학생을 위한 오리엔테이션 미팅이 있었다. 그랬더니 거기에 참석한 한 중국 학생이 일어나, “We don't want to be oriented, we want to be occidented!”라고 했다는 것이다. 구태여 번역하자면, “우린 東洋이 되기를 원하는 것이 아니라 西洋이 되기 원합니다.” [Occident는 동사로 쓰이지는 않는다. 한국식 엉터리 영어를 콩글리시라고 한다. 중국의 그것은 칭글리시(Chinglish: Chinese English?)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들어본 적은 없다.] 서양 문물을 배워 서양 사람처럼 되었으면 좋겠다는 이야기였다. 그러다가 woman suffrage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자 다른 중국학생이 그게 “woman suffers monthly”냐고 물었다고 한다. 여자가 다달이 귀찮게 겪는 것, 월경(月經)이냐고 물은 것이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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