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동맹 서기장이 되어(김병기 화백 일대 17)

 

    평양예술문화협회 총무이던 김병기는 곧이어 북한 미술동맹 서기장을 맡았다. 1946년 노동절날의 ‘5.1 캄파’(각주 1) 행사의 실행이 눈앞에 닥쳤다.

   김창만이 문화 관련 계획을 포함해서 문화인들을 굵직하게 엮는 행사를 주도했다. 그때 그의 지시로 김병기는 벽화 만드는 일을 총괄했다. 행진이 지나가고 함성이 들리는 그런 자리에 설치할 5백호쯤 되는 벽화 15개 이상을 열흘 만에 만들어야 했다. 넌 뭘 그리고, 넌 뭘 그리고 이런 식으로 시켜서 그 광경을 연출해냈다. 단상에 올라가서 박수도 받으며 김병기는 아주 유능한 사람처럼 부각되었다. 거기에 화가 김원(金源, 1912-94, 각주 2)은 흙으로 김일성 비슷하게 노동자상 조각도 만들어냈다.

    서기장이 되고 나자 직책이 직책인 만큼 유관 모임에도 참석해야 했다. 1946년 삼일절에 열렸던 연안파의 평남(平南)지구예술동맹 모임에 참석했다. 북한정권이 추진하던 토지개혁(각주 3)에 힘을 보태자는 취지의 결의대회였는데, 모임 장소에도 그즈음 북한 도처에 내걸렸던 현수막 살인집단 두목 이승만과 김구를 타도하자!” 현수막도 내걸려 있었다. 안막(安漠, 1910-?, 월북 무용가 최승희의 남편)과 소설가 김사량(金史良, 1914-50)이 함께 사회를 보았던 모임이었다.

    우선 평양 출생 김사량으로 말하자면 동경제대 독문학과를 다녔던 천재로 진작 소문났다. 1943, 일본군군주의의 강요로 조선청년들에게 학도병으로 나갈 것을 권유하는 연설을 한 뒤에 일본군 보도반원으로 북부 중국에 파견되었다가 연안으로 탈출, 팔로군 조선의용군 기자로 활동하다가 광복 때 귀국했다. 그때 탈출하지 않았더라면 이광수(李光洙, 1892-1950)같은 처지가 될 뻔 했다. 이후 북한에서 김일성의 항일투쟁을 소재로 한 희곡을 발표했고 625때는 인민군 종군작가로 참전하여 낙동강 넘어 내 고향 마산 뒷산 서북산까지 왔다. 그간에 <우리는 이렇게 이겼다>, <바다가 보인다> 등의 종군 실기를 썼다. 1950, 인천상륙작전을 당해 패퇴하는 인민군을 따라 북상하다가 죽었다(각주 4).

    거기서 태경은 민주주의라 했으니 누구는 자유주의를 말하고 마찬가지로 누구는 사회주의를 말할 수 있지 않은가?! 그게 민주주의다.”고 발언했다. 막상 그 입장에 대해 투표가 붙여지자 결과는 32 1의 패퇴였다. 사회석에 있던 안막이 은근히 다가와서 당신을 존경한다,” “당신의 입장을 이해한다.”는 말을 했다. 공작차원의 말인지 진실의 말인지 잠시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진실의 말이었다고 태경은 훗날 믿고 싶었다.

    그런 전후로 태경은 공산체제가 자유정신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거기에 진실이 있을 수 없음을 통감했다는 말이었다. 이를테면 북한에는 흐린 날이 배경인 그림은 그릴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밝은 희망만 있는 나라에서 어찌 흐린 날이 있겠는가고. 황소를 타고 가는 동자를 그려도 비판을 받았다. 동자는 나이가 나이인지라 유약(幼弱)하기 마련인데 체제의 기둥 같은 모습인 황소를 힘차게 끌고 나가야 하는 지도자가 어찌 유약하게 보일 수 있느냐는 식이었다그 지경에서 공산주의는 결코 아니다.”는 확신이 차츰 굳어갔다. 월남 곧 정치이념적 탈출(exit: 각주 5)은 시간문제가 되고 있었다.

남행에 앞서 일단 몸조심

    공산치하에서 일단 김병기는 나름으로 보신책을 강구했다. 하나는 정세가 불안해서 러시아어로 나는 미술동맹의 서기장 회원입니다.”라고 쓴 팻말을 항상 가지고 다녔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혹시 당할지 모르는 봉변을 피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다.

    또 하나는 집 2층에 소령 계급의 러시아 장교를 살게 했다. 그때 김병기의 집은 폴 발레리의 시 낭독회를 개최할 정도로, 음악가, 미술가 등 문화인들의 집결장소로 쓰였을 정도로 컸다.

    아이가 하나 있는 부부였다. 태경은 러시아어를 못하고, 그쪽도 한국어를 못했지만 문화적으로 서로 통한다는 느낌이 있었기 때문에 친구가 되었다. 당시 그 사람들은 기름덩어리 라드(lard: 요리용 돼지기름)’을 먹었다. 태경 가족도 먹었는데 그게 니글니글하니까 땅에 묻은 동치미를 꺼내서 같이 먹었다. 평양냉면 맛이 좋은 게 평양 사람들은 땅에 묻은 동치미를 쓰기 때문이 아닌가. 러시아 부부도 동치미를 곁들여 먹어보더니 좀 더 달라했다.

    그는 태경의 집안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한번은 너희 아버지가 남쪽에 있으니까 너도 남쪽에 가라!는 말이었다. 이게 테스트하는 줄 알고 태경은 아무 대답도 안했다.”

 

각주 1: 캄파(Kampa)는 정치단체가 그 단체원뿐만 아니라, 널리 일반대중을 대상으로 하여 일정한 정치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운동형태의 조직 활동. 러시아어 캄파니야(Kampaniya)의 약칭으로 중세유럽 도시의 시의회 의사당의 대종(大鍾)을 의미하는 캄파넬라(campanella)에서 유래했는데, 그 종소리를 듣고 시민들이 무장하고 일어섰다 한다. 오늘날에는 학생운동선거운동노동쟁의자선운동 등을 목적으로 가두에서 모금을 하는 자금캄파를 의미하는 경우가 많다(두산백과).

각주 2: 평양 출생으로 1938년 일본 제국미술학교 졸업했다. 1947년 월남하여 6·25때는 태경과 함께 종군화가단 단원이었다. 나중에 홍대 교수를 지냈다.

각주 3: 북한은 19461월말에 결성된 농민연맹의 요구를 받아들여 38일에 토지개혁에 관한 세칙을 공포하고, 3월 말까지의 짧은 시간에 정부 매수를 완료했다.

각주 4: 김사량 평전(심원섭 옮김, 문학과 지성사, 2000)을 적었던 재일 한국인 번역가 안우식(安宇植, 1932-2010)은 경남 함안군 출신으로 조총련계에서 전향했다. 안은 젊은 시절에 어느 일본인 문인이 "한국에도 문학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충격 받아 한국문학을 번역의 길을 선택했다 한다. 박경리의토지1부를 일본말로 옮겼다. 경상도 사투리를 어떻게 번역했는가 내가 물었더니 일본말 가운데 사투리가 유별난 시고쿠(四國)지방 말투로 옮겼다 했다. 작가는 이 번역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고, 이후 다른 번역본이 나왔다고 들었다.

각주 5: 전쟁과 같은 사회재난을 피해 남한으로 몰려든 월남 인구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드높인 상징이기도 했다. 국가의 정통성은 국민들의 충성과 비례한다면서 유명경제학자(Albert Hirschman, Exit, Voice, and Loyalty, Harvard Univ. Press, 1970)는 기업과 정치현상에 두루 공통되는 논리를 제시한 바 있다. 한 기업의 제품이 불만스러우면 제품을 사용하면서도 동시에 직접적인 제언을 통해 제품의 결함을 발언’(voice)하는 것이 충성’(loyalty)이지만, 그 제품을 더 이상 사주지 않는 불매행위’(exit) 역시 그 기업에 충성이 된다는 논리를 전개한 바 있다. 이 대() 기업논리가 정치체제에도 그대로 해당된다는 그의 입장에 따르면 북한 땅을 벗어난 많은 월남 피난민은 벗어난 북한 땅에 대한 비판적 충언(exit)이며, 거꾸로 합류한 땅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충성(voice)이 되는 상황을 연출한 것이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No.

Title

Name

Date

Hit

3324

이 생각 저 생각 (130) 천리구 27

최 명

2022.10.17

5687

3323

510. 김동길 박사님, 존경합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인승일

2022.10.16

271

3322

東吉 선생님 영전에 드립니다

여상환

2022.10.12

1574

3321

김동길 칼럼 ‘새로운 이야기들’을 마치며

이성순

2022.10.11

1455

3320

이 생각 저 생각 (129) 산남 김동길 선생과 나

최 명

2022.10.10

2734

3319

(마지막 글) 자유민주 한국제단에 일신을 건 망백(望百)

김형국

2022.10.06

3229

3318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최우람 ‘작은 방주’전

이성순

2022.10.04

2233

3317

이 생각 저 생각 (128) 천리구 25

최 명

2022.10.03

1696

3316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513)

정우철

2022.10.02

556

3315

6⦁25전쟁 전야(김병기 화백 일대 19)

김형국

2022.09.29

2003

3314

나라 밖 문화재의 여정

이성순

2022.09.27

832

3313

이 생각 저 생각 (127) 천리구 24

최 명

2022.09.26

1647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