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115) 천리구 12

 

도시 이야기가 시골생활로 이어진다고 했다. 천리구가 본 미국의 시골이다.

    “미국의 시골 같은 곳은 그 어디에도 없다. 이따금 미국 시골의 언덕과 바위와 시냇물은 우리 고국에서 이식해 온 것처럼 여겨졌다. 아니면 기적처럼 우리가 고향 땅으로 훌쩍 옮겨 간 것처럼. 우리는 자연이 온대 지방의 세상을 거의 닮은꼴로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에 감동했다.”

    미국의 시골 같은 곳이 어디에도 없다는 것은 그것이 유별나서가 아니라 두고 온 고향 같은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잠시 머무른 뉴욕은 믿기 어려운 풍경이었다. 고향에 있을 적에 광고 등을 통해 싱어빌딩과 같은 마천루 사진을 보기는 했으나, 막상 와서 보니 촌계관청(村鷄官廳)이다. 촌닭이 잡혀 관청에 끌려온 격이다. 그런데 이제 그 촌닭이 시골길을 가고 있다. 제고장으로 간 느낌이다. 더구나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한 지가 2년 넘었다. 고향이 그립지 않을 수 없다. 그래 미국의 시골을 보고 천리구는 그게 고향과 같다고 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때 <고향땅>이란 노래는 없었지만, 있었으면 천리구는 불렀을 것이다. 나도 부른다. 윤석중 작사, 한용희 작곡의 서정동요(抒情童謠).

    고향땅이 여기서 얼마나 되나

    푸른 하늘 끝닿은 저기가 거긴가

    아카시아 흰 꽃이 바람에 날리니

    고향에도 지금쯤 뻐꾹새 울겠네

 

    고개 넘어 또 고개 아득한 고향

    저녁마다 노을 짓는 저기가 거긴가

    날 저무는 논길로 휘파람 불면서

    아이들은 지금쯤 소 몰고 오겠네

    천리구가 노래는 부르지 않았으나 계속해서 이렇게 썼다.

    “여름날의 푸른 들판이나 겨울의 눈 덮인 빈터는 자연의 천재성이 빚은 완벽한 예술 작품이다. 먼 초목지에서 들려오는 소 방울 소리나 농가마당의 가금류 울음소리가 참 좋았다. 우리는 즐겁고 소박한 시골집들에서 버터밀크와 달콤한 사과주를 즐겼는데, 가족성서 낭독 시간을 정하고 신심 깊이 준수하는 집들이었다.”

    다시 읽어보니 시골생활에 관한 글은 천리구가 아칸소로 가는 길에 느낀 소감이 아니라 시골생활 일반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다 시골집에서 버터밀크와 사과주를 대접받은 모양이다. 나는 사과주를 담근 적이 없다. 그러나 여러 종류의 과실주는 많이 담갔다. 매년 6월 말이면 으레 매실주를 담갔고, 구기자와 오미자도 내 담금주의 단골 고객이었다. 오가피와 솔잎으로도 담갔다. 7-8 리터짜리 유리병에 적당한 양의 과실을 넣고 30 혹은 35도짜리 소주를 붓는다. 경우에 따라서는 설탕도 넣는다. 여러 해를 묵혀 숙성시킬수록 맛이 좋아진다. 그러나 나는 술을 옆에 두고는 참지를 못했기 때문에 담근 술이 오래 남아나지 않았다. 천리구가 마신 사과주는 어떻게 담갔는지 모르나 그리 독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시골생활의 문제는 젊은이들이 시골에 묻혀 농사를 짓지 않으려는데 있다. “전기조명, 자동차, 사람들, 극장에 이끌려 젊은 세대는 거의 모두 대도시로 나갔다. 야심이 덜하게나 덜 세속적인 이들만이 고향에 남겨졌다는 것이다. 도시에 비해 시골에서 두 배에 달하는 물질적 부를 축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젊은이들은 그것을 마다하고 시내에서 전차를 타는 것을 좋아한 모양이라고 천리구는 적었다. 그러나 자동차가 적시에 등장하여 시골에서 도시로 가는 이주의 물결을 어느 정도 가라앉혔다는 것이다. 도시에서 아주 먼 시골이 아니면, 시골에서 도시에 접근하기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하긴 원래 미국은 영국을 위시하여 주로 유럽에서 이주한 사람들이 세운 나라다. 이제는 이주가 이동이 되었다고나 할까?

    우리도 전에는 시골 혹은 지방에서 공부깨나 하면 서울로 유학을 가곤했다. 내가 대학 다닐 무렵에 있던 일화다. 전라도에서 서울에 온 어떤 학생이 하숙방을 얻었다. 옆 하숙방에도 학생들이 있었다. 전라도에서 온 친구는 서울말을 배우고 싶어서 옆 하숙방 학생들의 말을 열심히 익혔다. 그러다가 알고 보니 옆 하숙방 학생들은 경상도 출신이었다는 것이다. 경상도 말을 열심히 배운 것이다. 경상도와 전라도만이 아니라 전국에서 모두 서울로 유학 온 이유는 같다. “사람의 새끼는 서울로 보내고 마소 새끼는 시골로 보내라는 말이 있다. 서울로 가야 출세의 길이 트이기 때문일까? 도대체 출세가 무엇인가? 벼슬하는 것인가? 서울도 벼슬도 싫다는 노래가 있다. 1953년에 박재홍(1924-1989)이 불러 히트한 <물방아 도는 내력>이다.

    벼슬이 싫다마는 명예도 싫어

    정든 땅 언덕길에 초가집 짓고

    낮이면 밭에 나가 기심을 매고

    밤이면 사랑방에 새끼 꼬면서

    새들이 우는 속을 알아보련다

 

    서울이 좋다지만 나는야 싫어

    흐르는 시냇가에 다리를 놓고

    고향을 잃은 길손 건너게 하며

    봄이면 버들피리 꺾어 불면서

    물방아 도는 역사 알아보련다

 

    사랑도 싫다마는 황금도 싫어

    새파란 산기슭에 달이 뜨면은

    바위 밑 토끼들과 이야기하고

    마을의 등잔불을 바라보면서

    뻐꾹새 우는 곡절 알아보련다

손로원 작사, 이재호 작곡이다. [박찬호 지음, 이준희 편집, 한국가요사 2(미지북스, 2009, 175-176).] 박재홍은 <마음의 사랑>(1949), <울고 넘는 박달재>(1950), <경상도 아가씨>(1955), <휘파람 불며>(1957) 등의 여러 노래를 불렀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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