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빨리 문화, 가소롭습네다.”

 

예전 늦가을, 평화통일자문위원의 일원으로 4박5일간 금강산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북한 땅을 밟아 보았다는 설렘이나 경직된 북한사회에서 가지게 되는 긴장감, 그 속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모습들의 이야기는 익히 들었음직해 새삼 거론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 생각된다. 그러나 나에게 아주 강한 인상을 남겨준 한마디 말이 있어 이 자리를 빌려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화두로 제시해 보고자 한다.

우리 일행들은 다소 비중 있는 인사들로 구성된지라 북한에서 특별히 선발된 특수요원들의 안내를 받으며 관광을 하게 되었다. 관광 마지막 코스로는 그동안 체력소모가 많았을 것을 감안해 구룡연을 돌아보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내려가는 부류와 상팔담까지 올라갔다오는 부류로 나뉘었는데, 나는 한 덩어리의 바위에 8개의 웅덩이를 파며 흐르는 상팔담의 정경을 놓칠 수 없어 안내요원을 따라 등반길에 올랐다.

등반 도중 휴식시간을 이용해 잠시 안내요원과 이야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당시만 해도 금강산을 찾는 관광객이 상당히 많았던지라 도대체 몇 명 정도가 금강산을 다녀갔을까 궁금한 터에 안내요원에게 물어보니 대략 20만 명은 넘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이들도 꽤나 많은 남한 사람들을 접하였겠구나 하는 생각과, 북한에서 어느 정도 대접받는 직분에 있을 이들로서는 우리를 대하는 느낌에 있어서도 일반 안내원과는 사뭇 다를 것이란 생각에 소감을 물어 보았다. 그러자 안내요원은 이번 손님들은 각별히 신경을 써 안내하라는 지시를 받았을 뿐 특별히 할 이야기가 뭐 있겠냐면서 주저하다가 다만 이 한마디는 꼭 했으면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훈련된 특수요원들이라 비교적 함께 나누던 이야기도 상당한 수준에 도달해 있는 것 같고, 특히 북한에서 선발된 특수층의 일원인 이들이 꼭 한마디 해야겠다는 말에 궁금함이 더해져 기탄없이 이야기해보라며 권면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그 안내원은 ‘가소롭습네다.’하는 것이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말에 참으로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물었다.

“가소롭다니요? 뭐가?”

그러자 안내원은 오해는 마시라고 하면서 차근차근 그 이유를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자기들은 평상시 특수훈련으로 단련된 자로서 금강산을 단 하루에도 오르내릴 수 있는 강인한 체력을 가졌을 뿐만 아니라 네다섯 명쯤은 순식간에 제어할 수 있는 무술을 소유하고 있는 선발된 정예요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그들의 임무는 질서정연함 가운데 한 사람의 관광객이라도 낙오됨이 없이 안전하게 금강산 관광을 마칠 수 있게 하는 것으로 이를 위해 등반속도를 조절해 가며 산행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관광객중 소위 등산깨나 한다는 사람, 좀 배웠다는 사람들끼리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참으로 가소롭다는 것이다. 그들이 주고받는 이야기들 속에는 ‘자기는 안내요원들을 앞질러 제일 앞장서 왔다’는 둥, ‘설악산 등반을 몇 시간 안에 해냈다’는 둥, ‘등산경력이 몇 년이 된다’는 둥의 이야기로 마치 무슨 영웅담이라도 되듯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소롭습네다. 우리가 속도를 제대로 내서 산행을 강행한다면 아마 전부 쓰러지고 말텐데 말입네다. 남한 사람들은 그저 우리 안내요원들을 앞지르겠다는 마음만 있어 속도전을 벌일 뿐 구룡폭포의 장엄미도 감상할 줄 모르고, 기기묘묘한 암석과 산봉우리의 경이로움도 즐길 줄 모르니 남한에서는 등산하는 방식을 좀 바꿔야겠습네다.”

이 같은 안내요원의 말에 얼굴이 화끈거려 도저히 자리를 같이 할 수 없었다. 그러했다. 우리 사회는 부지불식간에 속도만을 중시한 ‘빨리빨리’사회가 되어 버린 것이다. 등산 좀 한다는 사람들을 보면 내설악에서 외설악을 밤새 몇 시간 만에 주파했다느니, 달도 없는 깜깜한 밤에 야간등반을 강행해 몇 시간 만에 왔다느니 하는 것을 자랑삼아 떠벌리고 있지 않은가. 6시간이건 10시간이건 산행에 있어 시간이 뭐가 중요하단 말인가.

외설악을 오르다가 백담사에 잠시 들러 민족의 비운을 한탄하며 시를 짓던 한용운 선생의 유적지를 돌아보며 당시 어떠한 심정으로 이렇듯 절절한 시구가 떠올랐을까 헤아려보기도 하고, 우리 역사의 질곡의 삶을 살았던 전두환 전대통령이 칩거했던 방을 둘러보며 잘못된 역사를 반성하고 반추해 보는 시간적 여유를 가져봄이 산행의 의미를 더해주는 것이 아닐까. 함께 온 일행들끼리 서로 감사한 마음을 나누고 여유로운 심성과 넉넉한 마음의 산행을 통해 영적인 성장을 도모함은 또 어떠한가.

우리는 산을 올라가는 데에만 급급한 나머지 산행 내내 앞사람의 운동화 뒤축만을 보고 걸을 뿐, 자연을 음미하고 마음의 수양을 쌓는 진정한 산행의 의미는 잃어버리고 있다. 더군다나 그저 남보다 먼저 오르겠다며 앞사람을 제치고 나서는 데만 전념하지 않는가. 교육에서도 마찬가지다. 너도나도 1등만을 고집하고, 1등만을 부추기는 서열중시주의가 우리 교육의 현실이 되어 버린 지 이미 오래전 일이다.

북한 안내원의 그 한마디는 그저 ‘빨리빨리’가 강조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병폐가 그대로 반영된 것이 아닌가싶어 참담한 기분이 들었다. 이제는 보다 의미 있는 풍요로움을 추구할 수 있도록 우리의 시야를 바꿔나가고, 전후좌우 살필 줄 아는 넉넉한 심성으로 이웃도 헤아릴 줄 아는 우리의 모습으로 탈바꿈해 나가야 될 때가 아닌가 한다. 다시 한 번 되짚어 본다.

 

여상환


 

 No.

Title

Name

Date

Hit

3293

이 생각 저 생각 (122) 천리구 19

최 명

2022.08.22

1506

3292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507)

정우철

2022.08.21

477

3291

‘글의 사람’(김병기 화백 일대 13)

김형국

2022.08.18

1718

3290

‘코로나19 확진’을 받고

이성순

2022.08.16

872

3289

이 생각 저 생각 (121) 천리구 18

최 명

2022.08.15

1554

3288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506)

정우철

2022.08.14

553

3287

귀향의 시간(김병기 화백 일대 12)

김형국

2022.08.11

1810

3286

‘어느 수집가의 초대’전

이성순

2022.08.09

973

3285

이 생각 저 생각 (120) 천리구 17

최명

2022.08.08

1538

3284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505)

정우철

2022.08.07

592

3283

무대미술쪽 관심(김병기 화백 일대 11)

김형국

2022.08.04

1896

3282

'20세기를 매혹시킨 디자인 가구'展

이성순

2022.08.02

821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