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경 김병기(金秉騏) 화백의 마지막 필력

 

    김병기 화백의 영생처가 경기도 포천시에 자리한 나남수목원으로 정해졌다. 당신의 106세 생일을 한 달여 남겨두고 지난 31일에 타계했으니 우리나라 회화사상 최장수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생물적인 최장수만이 아니었다. 타계하기 직전까지 화필을 들었던 점에서 세계 최고기록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었다. 평양의 종로초등학교와 일본 문화학원의 동기생이던 요절 이중섭보다 무려 2배반이나 장수했다.

    내가 당신을 마지막 만난 것은 지난 123일 북한산 자락 일영의 냉면 전문집이었다. 냉면 맛은 겨울에 당신과 더불어 먹던 것이 내가 누리던 호사 가운데 하나였다. 평양의 큰 부잣집 핏줄이었으니 아마도 냉면 맛 진수 가리기에 그만한 입맛도 없었을 터. 함께 먹는 냉면 맛이 참 좋았다.

    내가 당신의 필적을 마지막 만난 것은 224일자 자필 서명이었다. 타계 불과 닷새 전이었다. 큼직하고 반듯한 사인북에 쓴 힘찬 글씨였다.

    사인북 서명엔 특별한 사연이 있었다.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이자 삼성출판박물관(서울 구기동 소재) 김종규 회장의 간곡한 청을 받고 당신을 모시고 있던 막내아들인 김청윤 조각가에게 내가 특청해서 성사된 일이었다.

    김 회장은 문화행사엔 빠지지 않는 우리 문화계 마당발로 정평난지 오래. 그런 기회마다 당신은 방명록을 갖고 다닌다. 명사들의 필적을 받아두는 일에, 방명록이 특별 제작된 것임이 말해주듯, 그렇게 열성일 수가 없었다. 당신의 지우이자 이웃이던 영인문학관의 이어령 문학평론가가 권면한 바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사인 받기를 인생 대사처럼 여기는 듯싶었다.

    내가 김 화백과 자별하게 지내는 줄을 알고는 몇 해 전에도 특청해왔다. 당신이 직접 만났을 적에 사인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었던가. 내가 대신 얻어주려던 미션은 실패였다. 김 화백은 이상하게도 그런 백지위임장 같은 서명은 사양이었다. 그 즈음 영인문학관의 강인숙 관장도 서명을 받고 싶다 해서 내가 화가의 평창동 화실 방문 길에 앞장섰지만 그 역시 불발이었다.

    지난 2022215일 김종규 회장이 무슨 큰일을 앞 둔양 나를 만나자 했다. 마침 정월 보름날이었기에 들고 온 큼직한 보따리에 부름이 가득 담긴 줄 알았다. 나를 만날 때마다 종씨(宗氏) 아재비라고 불러왔던 터라 그런 생각이 언뜻 들었다. 그건 예의 그 방명록이었다. 거기엔 이미 상수(上壽) 김형석 교수의 서명이 앞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었다. 잇대서 태경의 서명을 받아달라고 청해왔다.

    다시 김청윤에게 부탁할 도리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도 답이 없었다. 또 실패라고 예감하던 차 서명을 얻었다는 쾌보가 날아들었다. 드디어 태경의 서명이든 사인북이 내가 출입하는 가나문화재단 사무실로 228일에 전달됐다. 나는 31일에 사무실에서 나가서 픽업했다.

    바로 그날 밤 10시반경에 김청윤이 태경의 타계를 전화로 알려왔다. 장난전화인줄 알았다. 서명에 감사합니다.” 덕담이 부기되어있었다. 세상을 떠날 때 남기는 사세구(辭世句)가 이만하기가 쉬울 것인가. 역시 클 태()”, “길 경()”의 태경이었다.

    나는 김종규 회장 같은 이를 인격수집가라 부른다. 영어에 name-dropping이란 말과 일맥상통한지도 모른다. “그 명사는 나도 안다는 식으로 행세함을 말한다. 유명 인사를 알고 있다고 과시하는 것이다. 연예계나 스포츠계의 명인들 사인을 받으려는 몸짓과 닮았지 싶은데 사인북의 서명은 이름에다 간단한 덕담도 보탰으니 한결 상질(上質)임은 분명했다.

    나남수목원을 꾸려가고 있는 조상호 나남출판 사장도 인격수집가의 전형(典型)이다. 좋은 필자를 찾고 수배해서 그들의 저술을 출간하고 있다. 공개강연장에서 마주쳤던 조지훈 시인을 흠모한 끝에 출판계에 뛰어 들었다 했다, 그 이름을 딴 문학상 지훈상도 제정시상해왔다. 당신 모교 고려대의 총장을 역임한 독립투사 김준엽의 현창에 앞장섰던 것도 그 일환이었다.

    얼마 전 나남수목원 한쪽에 당신 양친을 이장했다고 들었다. 연장으로 인연이 닿는 대로 알만한 인사에겐 수목장을 주선할 것이란 말은 들었다. 김청윤이 김 화백의 영생처를 국내에 마련해야겠다는 말을 듣자 나는 그 당장에 나남수목원을 추천했다. 당초 뉴욕 교외에 김환기도 묻혀있는 이름난 공원묘지에 아내를 먼저 안치했고 당신도 잇따라 갈 것이란 말은 화백 생전에 나도 들었다. 아들 생각은 달랐다. “아버지가 백세 때 한국 국적을 회복했다. 그래서 이 땅에 계시는 게 옳다고 미국 사는 큰형과 합의했다는 것.

    유해는 오는 625일 수목원 어느 나무 밑에 안치하겠다 했다. 6.25 전에 월남했다가 전쟁을 만났던 태경이었다. 1.4후퇴 때 어렵사리 피난 갔던 부산에서 종군화가단 부단장으로 투신했음은 동란 전에도 몸담았던 반공(反共)미술의 연장이었다. 1951년 봄 피카소가 6.25 발발이 미군(美軍) 소행임을 암시하는 한국에 있었던 학살”(Massacre in Korea) 그림을 그렸다는 소식이 들렸다. 그 당장에 공산주의자 피카소가 진상을 모른 채 그린 그림이라고 항의하는 편지를 적었다. 해도 전란 통에 우송할 길을 찾지 못했다. 대신, 당신 우상과 결별하는 굿바이 피카소 편지를 국내에서 일단 발표하는 해프닝을 가졌다.

    김병기에게 6.25는 당초 통한(痛恨) 그 자체였다. 그랬던 6.25에 당신이 영면에 들게 되었음은 사람 운수의 반전치고 이만할 수가 없지 싶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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