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재산을 쓰라 - 무재 칠시(無財七施)의 회상 -2

 

세 번째는 심시(心施)다. 마음으로 빌어주는 것. 우리는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마음으로 정성껏 빌어주는 것이다. 포항에서 있었던 일이다. 지금은 절로 바뀐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곳에 불고기 식당을 운영하던 한 여인이 있었다. 남편은 젊을 때 한진운수 총무과장을 하다 불행히도 트럭이 전복되는 바람에 대퇴골을 다쳐 죽게 되었다. 그 부인에게는 어린 딸 둘 밖에 없었다. ‘나는 아무런 재주도 없고 집에서 살림만 했는데 얘들을 데리고 굶어죽게 됐다.’라는 비장한 생각이 들어 ‘아내는 약하나 엄마는 강하다’라며 팔을 걷어붙이고 시장바닥으로 나섰다. 패물 있던 것을 팔고 은행 융자도 받고 해서 우리나라의 제일 큰 어시장이 부산어시장과 요즘은 가락시장이 있으나 포항의 죽0도시장에 돈이 모자라 불고기가게를 차렸다. 작은 음식점에서 지극정성을 다해서 불고기를 팔았다. 세월이 가고 손마디는 거칠어지면서 시장바닥에 작은 가게가 전세가 되고 다시 자기 독립 가게가 되며 수 십 년이 흐르면서 빌딩으로 바뀌었다. 불고기 가게로는 포항시내에서 제일 유명한 집 중 하나다. 다른 집은 별로 사람이 없는데, 그 집만 가면 사람이 넘쳐난다. 알 수가 없는 일이다. 하루는 직원들을 데려가 회식을 끝낸 후 그 여인을 불렀다.

“사장. 이 빌딩 당신거지요?”

“그렇습니다.”

“요 앞의 빌딩도 당신 것이라고 하던데?”

“그렇습니다.”

“일전에 지역신문에 난 것을 보니 이 지역에서 제일 세금을 많이 낸 사람 중의 하나가 귀하입디다.”

“고맙습니다. 두루 이웃에서 도와줘서 잘 뻗어왔습니다. 모두 덕분이지요.”

내가 다시 묻는다.

“그러면 그 정도에서 멈추지 무슨 욕심을 또 내는가?”

이 사람이 놀래 묻는다.

“사장님 무슨 말씀. 내가 무엇을 욕심냈습니까?”

“이만한 기업을 일궜으면 좀 여유 있게 주변에 맡겨도 되는 것 아니겠나. 뭘 손수 칼질을 하고 고기를 썰어주고 그러나. 그거 뭐 손님 오면 고기 좀 덜 썰면 어떻고 더 썰면 어때. 그 나이에 손수 칼질을 하나?”

그랬더니 이 사람이 놀래서

“이따 다시 얘기를 드리죠.”

하면서 휑하니 나간다. 농담 삼아서 한 얘기라 그렇게 신경을 안 쓰고 식사 끝날 때 쯤 부하직원들하고 자리를 일어서는데 사장 여인이 다시 들어온다. 곱게 한복을 입고 금빛으로 테를 두른 커피 잔에 그 당시에는 그게 처음이었는데 블루마운틴 커피 칵테일 한 것과 코냑 한잔을 들고 들어왔다.

“아까 얘기 다시 드리려고요.”

하고 다소곳이 앉는다.

“말씀을 하시게.”

“저는 이러이러한 경력을 가지고 이렇게 살아왔고 딸 둘밖에 없는데 살 길이 막연할 때 덕분에 이렇게 살아왔다. 또 금강경을 신봉하는 불도이다. 늘 감사한 생각을 갖고 들어오는 손님을 보면 눈에 보인다. ‘아 이분이 오늘도 우리 집을 오셨군요. 감사합니다. 그리고는 이 사람은 몸에 기름기가 부족이네.’ 삼겹살 쪽으로 칼이 휙 가고, ‘아 이 사람은 기름기가 너무 많아’ 등심 쪽으로 칼이 휙 가고 저절로 손끝이 움직여진다. 그 사람의 상을 보면 어디가 영양분이 부족한 지 내 눈에는 보인다. 그래서 이것을 손수 하게 된다. 칼질은 나보다 나은 애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 칼질을 맡겨보면 그 심상이 들여다보인다. 속으로 종알거린다. ‘오늘 내가 밖에서 데이트도 해야 하고 바쁜데 빨리 끝내야 하는데 이 자식은 또 우리 집으로 오나. 우리 집밖에는 먹을 곳이 없나.’ 악념을 뿜으면서 칼질을 하니 내가 칼을 맡길 수가 없다.”

놀라운 일이다. 보이지 않으나 마음으로 그렇게 손님을 빌어주니까 그 집만 들어가면 분위기가 넘친다. 무언가 흥겹고 괜히 어깨가 으쓱거리고 신바람이 난다. 이 여자는 돌아다니면서 손님을 더 먹이려고 안달이다.

“손님 이거 태백산에서 가져온 취나물이에요. 이것 좀 더 들어야 합니다. 야, 여기 국이 떨어졌다 더 갖다 드려.”

“아니. 난 다 먹었소.”

“아니 조금 더 드시라고.”

손님은 사양하느라고 안달, 주인은 손님에게 먹이느라고 안달. 이런 서로 위하는 마음이 부딪히게 되니까 훈훈하고 화답하는 따뜻한 분위기가 연출이 되고 무언가 흥겹고 그렇다. 아 이것이 보이지 않는 심시(心施)로구나.

그리고 포항으로부터 15리 정도 떨어진 곳에 금강정사라는 조그만 절과 암자가 있다. 일주일에 한 번씩은 거기에 가서 빌어준다. 그걸 본인이 모르게 한다. 자기 집에 드나드는 중요한 사람들의 명단을 벽에 걸어놓고 ‘부처님의 원력에 비나이다. 이 사람은 이러이러한 성실한 사람. 직장에서 곤혹스러운 일을 겪고 있습니다. 미물인 인간의 힘으로는 극복을 할 수 없으니 부처님의 원력으로 이것이 풀어지이다. 또 이 사람은 부모가 지금 병환으로 갈길 없이 헤매는 사람. 이것을 당장은 해결할 길이 없습니다. 길을 일러 달라. 또 이 사람은 대학에 진학할 때 몇 번 떨어져서 방탕하게 됐다. 제 길을 갈 수 있게 마음을 붙잡아 달라.’ 빌고 또 빈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빌어주는 마음을 본인이 모르게 한다.

‘왼손이 하는 것을 오른손이 모르게 하라’라는 성경구절을 이 사람이 실천하고 있구나. 이것이 이 사람의 힘의 원천이로구나. 마음으로 정성껏 구하면 상대방에게 전달이 되고 마음으로 지성껏 하면 겉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성어중 형어외(誠於中 形於外)라, 대학 장구의 한 구절이 문득 생각이 난다. 마음보 똑바로 쓰라는 우리의 속담이 하나도 그르치지 않는 오래된 경구요, 우리가 깊이 터득해야 될 삶의 갈무리가 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깊이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네 번째는 신시(身施)다. 신시라 하면 몸으로 때우는 것이다. 가장 쉽게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생각 밖으로 쉽사리 이루어지질 않는다. 사람이 이해관계의 동물이 돼서 자기에게 이로움이 있을 때에는 물불을 헤아리지 않고 몸으로 때우나 이해관계가 없고, 때로는 내게 손해가 나더라도 신의상 해야 될 일거리일 경우에도 귀찮다는 핑계로 열성이 떨어지게 되고 건너뛰게 된다. 쉬운 예로, 내게 가장 인상에 남고 고마움을 느끼게 되고 가까웠던 친구가 누구인가? 학식이 탁월한 사람인가? 높은 도덕심이던가? 아니다. 내가 손이 아쉬웠을 때, 길흉사를 당해서 특히 부모의 상을 당해서 경황이 없을 때 검부러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때, 손 하나라도 도움이 필요하였을 때 삼일 밤 삼일 낮을 꼬박 달라붙어서 지원을 하고 묵묵하게 일을 덜어주고 힘을 실어주던 친구의 우정은 잊을 길이 없다. 길게 남게 된다. 그런데 속담의 말대로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가 되더라도 정승이 돌아가면 그림자조차도 없게 된다.’ 라는 인정세태의 차가움이 일상사를 나타내게 된다.

귀한 사례 한 가지를 소개하고자 한다.

1977년 11월 16일 많은 인명이 다치고 세상을 놀라게 한 엄청난 이리역 화약폭발사고가 있었다. 주차 중이던 한국화약을 실었던 열차가 인부의 작업실수로 폭발하면서 연쇄폭발이 되고, 이리 역 전체가 쑥대밭이 되었다. 그때 가까운 거리에 있는 삼남극장에서 우리나라 국보급 연예인으로 일컬어지는 하춘화가 무대쇼를 하고 있었다. 기둥이 부서지고 천장이 무너지면서 하춘화도 흙자갈더미에 깔렸다. 이때 무명인으로 하춘화의 경호인 역할로 몸으로 때우고 있던 이주일이 쫓아가서 기둥토막을 치우고 기절해 있는 하춘화를 둘러매고 피투성이가 되면서 구조해 냈다. 경찰심문이 이루어진다. 이주일을 보고 하는 소리다.

“너는 뭐하려고 거길 들어갔어? 그 짚더미가 무너져 내리는데 너도 죽게 될 텐데 죽어도 괜찮아?”

이때 이주일의 답변이 주변사람을 울리게 한다.

“내가 무명인으로 하춘화 덕에 밥이라도 먹고 있고, 보디가드 역할인데 설사 죽더라도 내 책임은 다해야 할 것 아닙니까.”

비몽사몽간에 있던 하춘화가 이 말을 듣고 자기도 모르게 굵은 눈물방울을 흘리게 된다. 천상천하에 누가 있어서 자기의 생명을 담보로 하면서까지 나를 살리려고 애 쓰는가. 이주일이 이런 사람이었구나. 참으로 고맙구나.

내색을 않고 서울로 올라와 전세 집을 마련해주고 이 사람의 취업을 알선해 주려고 동분서주한다. 그때는 방송국이 하나였었다. PD를 붙잡고 애원을 한다. 이주일이 이런 사람, 이렇게 심성이 착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곧은 사람이니 일거리 한번 줬으면 좋겠노라고 간청을 한다. 그 얘기를 듣고 감동을 한 PD가 이주일을 불러서 인터뷰를 하게 된다. 지금 명동성당 앞에 골목길로 내려가다 보면 예전 YWCA빌딩 맞은편에 초원다방이라고 있었다. 거기서 인터뷰를 하는데

“아무리 봐도 얼굴 모습이 그것 가지고는 안 되겠다. 그 스토리는 좋으나 외모가 받쳐주질 못해서 안 되겠어. 다음에 기회를 한 번 보세.”

완곡하게 거절하고 돌려보낸다. 그런데 돌아가는 이주일의 뒷모습이 예의 오리궁뎅이를 흔들면서 비틀거리며 나가는 묘한 걸음새다.

“이보게 젊은이. 이리 좀 와. 다시 돌아와.”

“예. 왜 그러시죠?”

“가만있어. 지금 다시 걸어봐. 걸음새가 왜 그래?”

“예? 제가 어때서요?”

다시 걸어 나가는 것이 예의 오리궁뎅이 특이한 걸음새다.

“어 좋아. 얼굴은 내밀지 말고 나가는 것 한 커트.”

물론 과장기가 섞인 설명이었다고 생각은 되나 그러나 이것이 천하의 이주일, 개그맨의 왕자 이주일, 돈방석에 앉아 있던 이주일, 국회의원을 역임했던 이주일 탄생의 첫 시작이었다. 몸으로 때우며 목숨을 담보로 하고 책임을 이행하던 이주일의 심시가 없었으면 오늘날 개그맨의 왕자로 영원히 기록을 남긴 이주일의 탄생설화는 없었을 것이다. 이것이 어디 이주일에 국한된 것인가. 몸으로 때우고 지성을 다하는 것이 드디어 빛을 발하게 된다. 우리는 낭중지추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은 아무리 감추어도 그 끝이 날카로우면 마침내 주머니를 뚫게 된다. 사물의 이치가, 세상의 섭리가 마찬가지 아닌가 생각을 해 본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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