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마침에(박경리 이야기 낙수 4)

 

    낙수(落穗) 곡식을 거둔 뒤 떨어져 남은 고작 몇몇의 알곡이다. 그만큼 일을 치르고 난 뒤에 못 다한 뒷이야기라는 뜻의 '낙수'도 서너 꼭지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초 박경리 이야기 낙수로 세 꼭지 정도 적어보겠다고 마음먹었다. 세 번째를 적으려던 바로 그때 작가의 사위가 타계했다. 사위치고 김지하만큼 유명한 인사도 없을 것이다. 누군가 말했다. 박경리 장모-깁지하 사위의 유명도 높음은 동서고금으로 유례가 없을 것이라고. 동서고금은 몰라도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소설 그리고 시문학에 제가끔 한 경지에 이른 경우가 없을 것이란 말이었다. 김지하 죽음을 적지 않을 수 없었던 사연이었다.

    그 사이 세 차례 글이 나간 지난 목요일들은 하나같이 날자 인연이 예사롭지 않았다. 첫 번째 낙수 글이 나간 목요일은 428일이었다. 그의 문학세계를 기리는 장소와 기관을 말하면서 특히 고향 통영의 사연을 말할 때 박경리는 이순신에 못지않은 통영의 사랑이고 자랑이라 적었다. 428일은 바로 국정(國定) 충무공 생일이었다. 장군의 음력 38일 생일을 양력으로 환산해서 1967년에 나라가 충무공 이순신 탄신일로 고시했고, 1973년에 법정기념일로 정했다. 각종 추모기념행사가 이 날 열리는 것이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박경리-김영주 모녀의 유방암 투병에 대해 적은 목요일은 55일 목요일이었다. 이날은 바로 박경리가 타계한 날이었다.

    지하 시인의 죽음에 대해 적었던 512일은 내 선친의 기일이었다. 어린 날, 학교 공부에 줄창 매달리던 나를 두고 문약(文弱)’의 장래를 오히려 염려했다. 자라서 선생질을 할 것 같지 싶어서였다. 선생은 월급쟁이, 월급쟁이는 근무시간 근무 날만 일하는 직종이라, 해서 한 달 내내 월급날만 기다리는 삶이라 여겼다. 가족을 건사하는 가장의 도리는 마땅히 24시간 불철주야 일하는 삶이 정답이라 알았던 눈에서 보면 월급쟁이는 빌어먹는소극적 삶인데 그렇게 살아갈 것 같았던 나의 먼 장래에 대한 염려였다. 그랬던 월급쟁이 반생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늘그막에 큰 작가의 일대를 불철주야의 열성으로 적어왔다고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나마 선친께 감히 말씀 올리고 싶다.

    네 번째 목요일의 마지막 글은 김영주 사후에 토지문화관 이사장 자리를 이어 받은 작가의 둘째 외손주 관련이다. 무엇보다 그로부터 박경리 가계의 제적등본 등을 엿볼 수 있는 편의를 받았다. 박경리 작가가 일신의 내력을 말할 때 몇 번 등장했던 기봉이네가 누구인지는 그 가계 제적등본을 보고서야 비로소 간파했다. 필시 박경리를 연구하는 많은 평론가가 궁금해 했을 대목을 찾아낸 단서였다. 김영주가 죽음을 앞두고 후대를 위해 내밀히 적어준 가계도 그림도 보여주었다.

    질책성 반응도 들었다. 블로그 글이 사분의 일 정도 나갔을 즈음이었다. 박경리의 통영 피난시절을 이야기하면서 당신의 재혼사실도 언급했음에 대한 반응이었다. “할머니가 직접 말하지 않았던 것까지 적고 있으니 핏줄로서 불편하다!” 입장을 바꾸어 생각하면 제기할만한 말이었다.

    작가는 말하지 않았지만 사후에 그 딸은 공사(公私) 경로를 통해 말해왔다. 이를테면 나에게도 작심하고 말했던가 하면, 무엇보다 토지문화관 발간의 작가 추모문집 책자에서도 외면하지 않았다. , 작가 타계 1주기 때 김영주 이사장이 펴낸 추모문집(토지문화재단 편,봄날은 연두에 물들어, 마로니에북스, 2009, 195-200)작가 초상 때 초등학교 친구의 증언을 듣고 적은 현지신문 기자의 글(김영화, “내 친구 금이야. 곱디곱던 마음처럼 좋은 날 갔구나,”한산신문, 2008510일자)도 그대로 전재했다. 자연스럽게 이후에 나온 단행본에도 사실이 적시되었다(강제윤, 통영은 맛있다, 생각을담은집, 2013, 232-234).

    이즈음에서 내가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바는 작가가 입을 다문 것은 당신의 역지사지 심경의 발로였음이었다. 무엇보다 헤어진 사연을 말하게 되면, 혼인파탄이나 이혼을 항상 상대적으로 바라보는 세상인심이 늘 그러하듯, 반드시 상대에 대한 험담이 담길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었다.

    그때 통영사회가 과부장가를 두고 들썩했던 해프닝이 사회적 가십이었는지는 몰라도, 무엇보다 불륜(不倫)은 결코 아니었던 점에 나는 착안했다. 내가 만난 문화계 인사 한 사람도 알 만한 사람은 알고 있지만 굳이 입에 올리지 않을 뿐이라 했다. 자신의 다단계결혼이력(결혼이혼 그리고 유부남의 첩실)을 산문으로 가감 없이 정직하게 자복했던 작가의 절친 천경자(1924-2015) 화백의 경우는 그의 그림 매력을 더해주는 감초가 될 지경이었다.

    아무튼 재혼 해프닝의 외면 내지 간과는 정직서술원칙에 어긋난다는 것이 내 판단이었다. 아마도 당신이 통영을 무려 반세기나 찾지 않았음은 상처받기 쉬웠던 당신 심리가 오랫동안 그 상처를 자연 치유하지 못했던 점에서 박경리 심리학의 일단도 말해주는 것이라 싶어 거론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쯤해서 박경리 일대를 찾아 나섰던 글 대장정을 마친다. 2백자 원고지 23백장이었다. 토지 1원고분량의 절반에 좀 못 미친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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