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시인의 타계(박경리 이야기 낙수 3)

 

    김영주가 이사장을 맡고 그 얼마 뒤였다. 토지문화관 안마당에서 내개 불쑥 한마디 던지듯 말했다. “지하 시인이 감옥에서 죽어줘야 했다!”

    이른바 운동권의 고소원(固所願)이었다 했다. 박경리의 피맺힌 지난날이 그 사위에게 판박이로 되풀이 됨이었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대/ 사위는 서대문형무소에 있었고/ 우리 식구는 기피 인물로/ 유배지 같은 정릉에 살았다/ 천지간에 의지할 곳이 없이 살았다/ 수수께끼는/ 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 사세시 어머니의 사는 법(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 홀가분하다, 2008)의 한 구절이다.

    인신공양(人身供養)의 제물이 되어줘야 했을 그 인물이 1990년대 학생청년들의 분신과 투신자살이 잇따르자 그들이 반동이라 딱지 붙인 조선일보에 적어 일갈했다.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 이후 김지하는 더욱 이래나 저래나 죽어줘야 할 사람으로 낙인찍혔다.

    박경리의 문학향기를 좇아 오래 원주 단구동을 오갈 적에도 시인과 정색으로 마주친 것은 단 한 차례였다. 단구동의 작가집도 일대 주택단지 개발사업에 수용될 처지라는 하소연을 내가 들어주는 대신, 그때 원장 일 보던 대학원에 와서 당신이 특강을 해주십사 청할 적이었다.

    그리고 내가 원주 집을 찾아 김지하 시인을 얼굴로 맞댄 것이 마지막 마주침이었다. 박경리의 음력 기일이던 2020423일이었다. 박경리 이야기 연재를 시작하면서 내심으로 집필 동기를 강화할 심산의 행보였다. 시인의 아내 김영주에 이어 토지문화관 이사장에 오른 김세희 당신의 둘째가 길을 놓아주었다. 한국대학 교육과정으론 최초인 예술치유(art healing)’ 전공을 택해 건국대에서 한창 박사학위논문 작성중인 바쁜 시간 중에 틈을 내준 호의였다.

    2년 전이던 그때 이미 시인의 병색은 짙었다. 출입 거동이 어려워진 병자를 지친(至親)들만으로 시봉하기 어려워진 경우에 대처해 나라가 간병인제도를 운영 중인 데도 김세희 내외만이 안간힘이었다. 간병인 서비스 제공에 필요한 정부 기준 적용을 확인하겠다며 현장을 나왔던 관청 사람을 시인이 호통을 쳐서 발길을 돌리게 했다는 뒷말이었다. 투옥으로 점철된 그의 삶에서 무릇 관청 쪽 일이라 하면 하나같이 바로 관재수(官災數)로 여겼을 그의 강박 심리가 작동했던 것이었을까.

    당신 집에서 둘째 내외와 그 존비속의 보필을 받아오던 시인의 최만년은 마침내 인연이 닿은 요양원으로 얼마간 옮겨가야만 했다. 마지못했던 이 전후 사정을 언뜻 내게 비출 적의 김세희는 불효가 이 아닌가 싶어 가슴 저리다고 말하던 전화 목소리엔 눈물이 서려 있었다.

    지하 시인을 만났던 그날 당신의 언사는 우주’, ’생명같은 보편성 낱말로 시종했는데, 듣는 입장에선 그 거대 보편성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허황한 채로만 귀에 울렸다. 이어 작별하는 내게 근간 시집흰 그늘(2018)을 쥐어주었다.

    그러면서 흘린 작은 목소리 한 마디는 우주의 진동이 감지되었다고 말하고 싶은 큰 울림이었다. “우리 세희, 잘 좀 봐주세요!” 2014년 그림 개인전(“시인 김지하의 빈산,” 옥션 단선갤러리) 개최의 변과 한 가닥이었던 것. “그림 팔아서 아내에게 차 한 대 선물하고 싶다!”,

    소위 진보의 기수라고 자처하는 신문은 지하 시인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 제목을 독재에 맞섰던 투사 시인끝내 변절 오명 벗지 못한 채...”라 뽑았다. 제 신문이 나올 수 있었던 먼 원력에 칼보다 강한 붓”, “몽둥이 같은 글이 있었음을 모르거나 외면한 무모 언사였다.

    원주로 문상을 다녀온 늦은 밤, 이제 시인의 일대 행적은 유신 감옥 동기생의 언술로 대신 기억하려 한다.

그는 진보라는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진보란 깃발을 들고 나와 친북이니 종북이니 어쭙잖은 가치를 내세우는 작자들을 멀리했다. 대한민국을 어지럽히는 인간들을 향한 그의 확고부동한 자세는 강남 일대에서 샴페인이나 마시면서 무산자 혁명을 꿈꾸는 한심한 인간들과 달랐다.

나는 김지하와 같은 시대를 살아오며 같은 생각을 하고 같은 고민을 함께 존재해온 사실에 보람과 긍지를 느낀다. 천관우가 남긴 말을 되새겨본다. 김지하는 우리 역사에 틀림없이 남으리라는 그의 한마디를(김동길, “김지하,”백년의 사람들, 나남, 2020, 492-495).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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