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김영주 모녀의 유방암 투병(박경리 이야기 낙수 2)

 

    201910월 말, 박경리의 외동딸 김영주가 타계했다. 73세였다. 유방암 투병 소식은 듣긴 했지만 그리 쉽게 떠나진 않겠지 싶었던 참에 날아온 비보였다. 무엇보다 병약한 남편을 두고 떠나는 심정이 어떠했을 것이며, 작가 사후에 펼쳐온 그간의 현창사업을 어떻게 이어가게 할 것인가를 두고 병석에서 머리 굴렸던 대소사 염려가 오죽 했을까. 그래서 더욱 안타까웠다.

    김영주가 펼친 대표적 현창사업은 박경리문학상의 운용이었다. “죽고 난 뒤는 몰라도 생전엔 내 이름 문학상은 안 된다고 공언했던 작가였다. 그만큼 박경리 문학상은 김영주가 발의했고 이끌었던 사업이었다. 간혹 독지 기업가의 협찬은 있었지만 상금과 운용경비의 대종은 강원도청과 원주시청의 출연이었다. 당국이 방침을 정했다지만 매번 관청사람 상대는 여간 심줄이 굵지 않곤 못할일이었을 것이다.

    남편 김지하 시인의 건강은 박경리문학상 시상식에서 내가 엿보는 짐작이 고작이었다. 시상식은 당연히 아내의 주관이었고, 시인은 현장의 임석으로 그 존재감을 말해주었는데, 어쩌다 어느 해에 현신(現身)을 못 보면 건강이 여의치 않구나, 그런 느낌이었다. 김영주의 장례식장에서도 시인에겐 직접 문상을 못했다. 식장에 나왔다가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는 말만 전해 들었다.

    기실, 김영주는 내 아내의 유방암 이겨내기에 도움주려고 유심했던 적이 있었다, 공황장애 같은 병증에 시달려왔던 김 시인 일가가 2008년경이든가 백 살도 넘는 상수(上壽) 노장의 인술로 나았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읽었다. 병에서 해방된 감격으로 김 시인은 노장의 행적 책(박광수 엮음, 맘 놓고 병 고치게 해주세요: 신의 장병두의 삶과 의술이야기, 2009)에다 간곡한 서문도 적었다.

    내가 은고를 많이 입었던 경북 칠곡의 노부인이 기사를 보곤 시인 내외를 통해서 그 무면허신의(神醫)를 소개해달라고 청해왔다. 고맙게도 간첩 접선하듯 노장을 만나게 해주어 약 처방을 받을 수 있었다. 20085월이든가 그 접선 때 나는 백세 노인의 모습이 궁금해서, 양약사인 내 아내는 한약처방의 현장이 궁금해서 그 자리에 함께 갔었다.

    며칠 뒤 김영주가 내게 전화를 해왔다. 원주에서 서울 올라가는 길이니 만나자는 것. 내 아내의 찰색을 엿본 느낌으로 그 노장이 당신 약 먹기를 권유했다는 말이었다. 일단 내가 난감했다. 초기 유방암으로 처치를 받았다가 6개월 뒤에 뼈로 전이되어 졸지에 말기암환자가 되고만 아내. 항암제 고용량 투여 밖에 길이 없다는 주치의 진단에 따라 생사 문턱을 오가는 약 한 달의 무균실 입원을 이겨내야 했다. 이후 천행으로 회복의 길에 접어들어 완치의 기준인 십년 생존을 버텨온 시점에서 노장의 말은 또 다른 재발 가능성을 시사하는 듯 했다. 집에 돌아와 조심스럽게 말을 전했더니만, 양방이고 한방이고 간에 더 이상 투약은 못한다는 단언이었다.

    양방(洋方)은 발병을 예방적으로 차단하는 의술도 생겨났다. 2013, 미국의 유명 여우 안젤리나 졸리는 어머니의 유방암 사망이 당신의 발병 개연성을 예고한다며 사전 절제수술을 받았다고 외신이 전했다. 한방의 그 신의도 내 아내에게 그런 예방 대처의 시약(施藥)을 베풀 참이었던가.

    김영주의 유방암 투병 소식을 듣자마자 나는 당신의 유방 절제가 당초에 오진이었다고 말하던 박경리의 자가진단은 그게 아니었다.” 싶었다. 무릇 발병 요인 총설에서 유전인자설 대 환경설이 각각 절반이란 전제에 따르면 김영주의 유방암 발병에 유전인자의 유력 작용을 추정할 수 있고, 거슬러 올라가 박경리 유방암도 오진이 아니라 확진이라는 추정이 가능하겠다 싶었다.

    유방절제술을 받고 퇴원한지 보름 만에 자리에서 일어나서토지 1의 집필을 이어갔다. 가슴에 붕대를 감은 채로 붓을 들었다. 당신이 세웠던 집필구상에 따라 당신이 아니면 적을 수 없다는 절체절명의 집념이고 투신이었다. 치열한 삶의 의지가 암괴(癌塊)를 사라지게 만들기도 한다는 시중 상식설대로 박경리의 불같던 집필 열정이 암 전이 또는 재발을 막아주었던가. 박경리 모녀의 유방암 와병 관련으로 내가 궁금해 했던 이모저모를 적어보았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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