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105) 천리구 김동성 (2)

 

    내가 천리구 김동성 선생을 알게 된 것은 그가 번역한 장자와 그의 책 米洲印象을 통해서였다고 했다. 앞 책의 서설(序說)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도 했다. 내가 장자와 그 사람됨을 좋아하나 그 이야기는 뒤로 미루고 나중 책 이야기를 먼저 하려고 한다. 나는 앞에서 천리구에게 당신의 이력을 한마디로 말하라고 한다면 나는 언론인이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미주의 인상을 번역한 황호덕은 김동성의 인생을 들여다보면, 그의 진정한 모습은 여행가혹은 편력가(遍歷家)로서의 삶에 있지 않았나 싶다.”라고 했다. 하기야 그는 누구보다도 여행을 많이 했다. 황호덕의 해설을 인용한다.

    “1909년 미국 유학길에 나서며 시작된 그의 세계 일주는 장소를 늘여가며 생애 내내 간헐적으로 이어졌다. 여행이란 그의 삶에서 활력 그 자체를 의미했다. 그도 그럴 것이 김동성은 곧잘 최초의 해외편력들을 스스로의 견장으로 기꺼워하곤 했다. 예컨대 동아일보창간 때 중국 명사들의 휘호와 축하 메시지를 받아오던 일이나, 192110월 하와이에서 열린 만국기자대회에 참석하여 부의장에 선출된 일, 1922년 동아일보사의 초대 미국 특파원이 된 일, 해방 후 미군정의 여권으로 해외를 여행한 최초의 한국인이 된 일은 김동성이 즐겨 떠올린 생의 황금 시절이었다.”

    그러면 천리구는 언론인이 아니라 여행가인가? 내가 이야기하고 있는 미주의 인상은 천리구의 유학체험을 위주로 쓴 것이지만, 그 후에도 그는 미국인상기(1948), 중남미 기행(1954) 등의 여행기를 남겼다. 교양물로도 볼 수 있으나, 민주주의와 대중문화에 대한 교육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언론인이 쓴 여행기다. 다시 미주의 인상으로 돌아가 책의 특징을 살핀다.

    첫째, 이 책은 한국인이 미국서 출간한 거의 최초의 영문단행본이다. 그에 앞서 출판된 책은 이승만의 Neutrality as Influenced by the United States (미국의 영향을 받은 영세중립론, 1912)이 있을 뿐이다. 또 강용흘의 영문소설인 The Grass Roof(초당)가 비교적 일찍 출판된 영문소설이기는 하나 1931년이었다.

    둘째, ‘인상이라는 제목이 말하듯이 책은 관찰을 통한 동서비교문화론이다. 다시 인용이다.

    “의식주를 비롯한 미국의 생활문화, 미국인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생각과 현실, 여성과 가정에 대한 관찰, 대학생활의 편린들, 정치와 언론 등의 공공 영역에 대한 평가, 스포츠 등의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 미국인의 종교 생활 등이 한 개방적 동양인의 관점에서 에피소드의 형식으로 묘파되어 있다. 조선이라는 세계의 변방, 식민지에서 온 한 동양인 청년이 미국이라는 거대한 땅에서 경험한 일들과 문화적 섭취들이 담담하고도 재치 있게 표현되어 있어, 1910년대 한국인의 미국관, 서양관의 일단을 확인할 수 있다. 양성평등이나 미주적 가치, 자유로운 개인과 언론의 중요성, 도서관 문화로 대표되는 교양에의 강조 등, 그의 신념은 이미 이때 확립된 것이 아닌가 여겨진다.”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1916년에 출간된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의 번역이다. 2부는 천리구가 앞의 책의 일부를 국한문으로 번역하여 1918매일신보에 연재한 것을 현대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3부는 이 책이 미국서 출간되었을 적에 미국 언론에 보도된 것을 변역한 것이다. 잘 알려지지 않은 동양의 한 이방인의 미국관찰은 미국인의 호기심을 자극했을 것이다.

    뉴욕에 처음 입항한 약관의 김동성은 어떤 연유인지는 모르나 남부 아칸소 주의 주도 리틀록(Little Rock)에서 멀지 않은 콘웨이(Conway)시 교외에 위치한 헨드릭스 칼리지(Hendrix College)란 사립대학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다시 오하이오 주립대학(Ohio State University)를 거쳐 역시 오하이오 주의 신시내티 미술학교(Art Academy of Cincinnati)를 다녔다. 10년이 넘는 기간이었다. 미국서 귀국하자 19204월에 동아일보사에 취직을 하여 언론계에 첫발을 내딛었다. 그러면서 그림이야기란 제목으로 4칸 만화도 그려 싣기 시작했다. 미술에 관심과 소질이 있어서 미술학교에 다녔겠지만, 천리구는 한국의 신문만화의 효시(嚆矢)를 연 언론인이기도 하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다. 해방 직후 어떤 친구가 미국유학을 갔다. 여권이 잘못되었는지 뉴욕에서 상륙을 하지 못하고, 멀리 배에서 자유의 여신상(The Statue of Liberty)’만 보고 왔다. 그런데 귀국하여 한국미주유학생협회인가 하는 단체의 회장이 되었다고 한다. 그런 친구도 있고 천리구와 같은 유학생도 있다. “이 생각 저 생각이 있듯이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있는 세상이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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