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으로 태어날까 나비로 태어날까(박경리 106, 연재끝)

 

    200858,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서 영결식이 열렸다. 말 그대로 모모한 문인들의 추모 말이 심금을 울렸다.

    장례위원장 박완서(朴婉緖, 1931-2011)는 당신의 분신인 대하소설 토지주제어에서 관형사 대하소설말마디를 따왔다. 이 작은 나라에서 그런 큰 강이 존재할 수 있다는 건 문학이니까 가능한 축복이요 기적이라고 조사(弔辭)했다. 이어 자타공인의 현대한국 계관시인이근배(李根培, 1940- )토지낱말에서 말꼬리를 잡았다. “한 자루의 붓으로 개간하신 그 땅은/ 오늘 아니라 후대에까지/ 넉넉하게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곡식과 과일을 생산해 갈 것입니다고 조사(弔詞).

노제, 추모식, 안장식

    이제 영생처로 떠날 채비를 해야 했다. 역시 현장 호상의 마음이 분주했다.

선생님의 긴 그림자는 서울에서 영동중앙경부대전-통영고속도를 따라 돌며 꽃다운 나이의 여고시절을 회상했습니다. 붉은 벽돌의 진주여고는 고풍스러웠습니다. 교정의 잘 손질된 곰솔 머리에는 흰 댕기를 둘렀습니다. 선생님의 말없는 가르침은 후배 여고생들의 눈망울에 향기로 피어났습니다. 선생님은 남에게 성가시게 하기 싫어 하셨습니다. 윤이상 선생님께서는 공해상에서나마 고향 불빛을 보셨듯이(각주 참조) 통영에 도착하실 땐 이미 어둠이 깔린 이후였습니다.

그렇게 조용하던 통영바다가 돌개바람에 몸서리친 것은 다음날이었습니다. 무슨 바람을 그렇게 몰고 오셨습니까? 만장은 추모 글귀를 알아보지 못할 정도로 꼬였습니다. 꽃상여도 휘청거렸습니다. 연도변의 시민들은 고개를 들지 못했습니다. 꽃상여는 김약국이 있던 간창골과 뚝지 먼당 서문고개를 그쳐 판대목 으로 향했습니다(김상영, “앞의 글”).

원주 추모식

200858일 오전 11시 원주시 토지문학공원(현 박경리문학공원) 선생의 옛 집 앞뜰에서 추모식을 가졌다. 이후 선생의 유해는 다시 매지리 토지문화관으로 옮겨졌고, 오후 130분부터 창작실 앞뜰에서 노제가 거행되었다. 유족들은 노제를 마친 뒤 영정을 모시고 선생이 직접 가꾼 텃밭과 집, 토지문화관 사무실 등을 돌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토지문화재단 편(박경리 추모집: 봄날은 연두에 물들어, 2009, 226)

진주 추모식

200858일 오후 630분 진주여고에서 추모식이 이어졌다. 유족들은 선생의 영정을 가슴에 안고 어린 시절 작가의 꿈을 키웠던 교정을 순회한 뒤 추모식장에 영정을 안치했다. 진주시향의 조곡이 연주되는 가운데 선생의 영정이 추모식장으로 들어서자 기다리던 300여명의 조문객들은 반절례를 올렸으며, 재학생 대표의 조시(弔詩) 및 생전 선생의 자작시 <미친 사내?> 낭송, (‘일신동문) 총동창회장의 추도사, 유족 대표 분향의 순으로 추모식이 거행되었다(앞의 책, 233).

통영 추모제와 안장식

서울 영결식, 원주 추모식과 노제, 그리고 진주 추모식 이후 58일 밤 8시 선생의 유해는 고향인 통영시에 도착하여 서호동 숭례관에 안치되었다. 다음 날 수많은 통영시민들의 애도의 물결 속에서 추모식과 노제, 안장식을 가진 후 통영 앞바다와 한산도가 한눈에 들어오는 산양읍 신전리 양지농원의 미륵산 자락에 안장되었다(앞의 책. 240).

    나는 통영 영결식 참석을 위해 김포공항에서 아침 7시 20분 비행기를 탔다나남출판의 조상호 사장과 동행이었다사천비행장에서 택시로 탔고 아침 10시 영결식이 예정된 옛 기선머리인 강구안 문화광장에 닿았다현장은 흙과 생명의 작가고 박경리 선생추모제라고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원고지에 새긴 만장

    통영 시장예술인연합회 회장의 조사와 추도사가 있었다. 이어 앞장 선 영구차를 따라 조문객들은 1.5킬로를 걸어서 충렬사 마당까지 모두 걸어갔다. 작가가 다녔던 통영초등학교의 옛 자리 세병관 앞으로 나아가던 그 거리 보도엔 어린 여학생들이 늘어서서 대선배가 그 학교 개교 100주년이던 때 기념행사를 위해 원고지에 적어준 축하 글을 복사한 길다란 플래카드를 만장 삼아 들었음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충렬사 옆 마당에서 노제를 지낸 뒤 통영시 산양면 미륵산 기슭의 묘택 예정지 까지는 자동차로 갔다.

    하관 직후 하토하기 전에 그 옆을 열사람 정도 쭉 둘러섰다. 장소판촉(place- marketing)으로 나비축제를 열고 있는 전남 함평군에서 보내온 나비가 든 플라스틱 팩을 일제히 열기 위해서였다. 나도 하나 들고 그 행사에 참여했다.

    당신의 시내 모습내세에는/ 꽃으로 태어날까/ 나비로 태어날까로 끝맺는다. 나비와 꽃은 남자와 여자 대비로 보는 것이 우리의 통상적 발상이라면, 나비를 날리는 것은 내세에는 당신이 남자로 태어나라는 축원이었던가.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각주:

재독 음악가 윤이상(1917-95)은 북한 왕래의 이력으로 말미암아 친북 통일운동가로 점 찍혀 남한은 오갈 수 없는 몸이 되었다. 해도 경남 산청에서 났으나 유아 때부터 통영에서 자란 작곡가에겐 망향의 그리움이 날로 짙어갔다. 만년에 일본을 찾을 일이 있었다. 이른바 통일운동의 각 계파가 나름대로 환대하는 사이로 자유주의자 쪽에서 망향의 염원을 대리만족시켜준다며 시모노세키에서 배를 빌려 통영 최근접 공해까지 나아갔다. 먼발치에서나마 통영의 불빛이라도 보여주겠다는 배려였다. 배가 통영 앞바다 공해상 지점에 닿았을 무렵 격정이 치솟아 그만 그 바닷물로 작곡가가 뛰어들었다고 소문났을 정도였다. 한데 이 해프닝이 통일운동 전선의 계파들 사이에 분쟁거리로 비화했다. 배편을 마련했던 쪽은 작곡가를 한국으로 귀순(?)시키려는 시도였다고 비판받았고, 그렇게 귀순으로 비치는 거동은 통일운동 노선의 배반이라며 작곡가의 베를린 집으로 몰려가서 규탄 집회도 열었다. 이 소동에 만년의 작곡가 심기가 크게 상했다는 것이 윤이상과 아주 가까웠던 재미 인사가 들려준 회고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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