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104) 천리구 김동성(千里駒 金東成) (1)

 

    이런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다. “50년 전에는 이러이러한 뛰어난 작가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작가들이 없다고들 한다. 그러나 50년이 지나고 나면 요즘의 아무 아무개들이 그런 급의 작가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다.” 정확한 인용도 아니고, 출처도 분명치 않다. 영국의 소설가, 저널리스트, 희곡작가인 아놀드 베넷(Arnold Bennett)의 글이 아닌가 한다. 그는 1867년에 태어나서 약관(弱冠)의 나이인 1898년에 첫 소설을 발표했다. 1931년에 타계하기까지 30개나 되는 장편소설을 포함하여 60여권의 저술을 발표한 다작가였다. 런던과 파리를 오가면서 플로베르(Gustave Flaubert)과 발자크(Honoré de Balzac) 등의 사실주의(寫實主義)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프랑스여자와 결혼을 했다.

   베넷의 대표작은 The Old Wives' Tale(1908)이 아닌가 한다. 빅토리아 여왕 후반기의 포목상의 두 딸 이야기다. 소피아는 모험적인 성격으로 애인과 파리로 도망가서 살았고, 동생 콘스탄스는 시골집에서 단조롭고 평범한 일생을 보낸다는 이야기다. 상당히 긴 대작이어서 어지간한 끈기가 없고서는 완독하기 어려운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오래전부터 베넷에 관심이 있어서 그의 소설을 모았었다. 열댓 권은 되었는데 정년을 하면서 학교도서관에 기증을 하여 지금은 하나도 없다.

    내가 베넷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오래 전에 그의 Literary Taste: How To Form It이란 수필집을 읽고서부터였다. 그것은 1909년에 나왔다. 내가 읽은 것은 일본 도쿄고등사범학교 영문학교수인 후쿠하라 린타로(福原麟太朗)의 편집으로 1927년에 도쿄에서 출판된 것이다. 제목 그대로 문학에 대한 취미를 어떻게 하면 갖게 되는가 하는 이야기를 이런저런 측면에서 하고 있다. 그러면서 찰스 램(Charles Lamb)부터 시작을 하라고 했다. 특히 그의 유명한 수필 를 읽으라고 했다. 린타로가 편집한 책의 부록이 바로 그 수필이다. 그래 읽었으나 문학에 대한 취미가 생겼는지 어쩐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나는 위에서 50년 전의 작가와 50년 후의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베넷의 글에서 읽은 것 같다고 했다. 그래 같은 맥락에서 우리에게도 50년 전에 뛰어나다고 생각나는 작가나 인물에 비견되는 사람들이 요즘도 있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다가 천리구 김동성(千里駒 金東成) 선생을 생각한 것이다. 천리구는 1890년생이다. 132년 전이다. 그러니 50년 전이 아니라 100년 전의 인물이라고 해야 옳을 것 같다.

    내가 천리구를 알게 된 것은 대학 졸업 다음해인 1963년이다. 59년 전이다. 그해 을유문화사는 <世界思想敎養全集>을 출간하기 시작했고, 그 첫 권이 莊子였다. 김동성의 번역이었다. 역자를 알고 산 것이 아니라 책을 사고 나서 역자인 천리구를 알게 된 것이다. 어느 책이든 처음 접하면 서문이나 머리말 또는 목차를 먼저 읽게 된다이 책에는 천리구가 편역(編譯)’했다는 序說이 있다. 어렵지만 아주 잘 쓴 해설이었다. 책이 마음에 들었다. 그래 유학을 갈 적에도 그 책을 갖고 갔다. 가져는 갔으나 그 책을 제대로 읽은 기억이 없다. 귀국할 적에 다시 갖고 왔다. 장자가 나와 함께 유학을 한 셈이다.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20여 년 전에 안동림 역주의 장자(현암사)를 샀다. 두 사람의 번역본이 생긴 것이다. 어쩌다 생각이 나면 두 책을 비교하여 읽는다. 후자도 공을 많이 드린 책이라 장점이 많다. 그러나 천리구의 책은 처음으로 장자를 알게 된 것이어서 그런지 애착이 간다. 천리구의 이야기가 본의 아니게 장자란 책으로 번졌다. 다시 천리구로 돌아간다.

    내가 천리구를 다시 알게 된 것은 몇 해 전에 그의 米洲印象(현실문화, 2015)이란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은 천리구가 1916년에 미국서 출판한 Oriental Impressions in America(Cincinnati: The Abingdon Press)의 번역이다. 번역은 김희진이 1차로 전문을 번역하고, 그것을 성균관대학교 국문학과 교수인 황호덕이 검토하였다고 하니 둘의 공역이다. 여기에 소개된 천리구의 이력을 간단히 살핀다. 간단히 살핀다고 했으나 그의 이력은 복잡하고 화려하다.

    천리구는 문필가이고 만화가이고 번역가이고 정치가이기도 했으나 본인에게 물으면 나는 언론인이다라고 대답했을지 모른다. 1906년 소년의 나이로 윤치호를 초빙하여 개성 한영서원을 설립하는데 참여했다. 일본 유학이 유행이던 시절에 일본을 마다하고 중국과 미국을 택하여 10여 년간 유학했다. 귀국 후 동아일보창간에 참여하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해외특파원기자였고 또 우리나라 최초로 세계기자대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동아일보조사부장, 조선일보발행인 겸 편집인, 조선중앙일보편집국장을 역임했다. 당시 이상협(李相協)과 안재홍(安在鴻)과 더불어 조선의 3대기자로 꼽혔다기자활동만 한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언론학 개론서인 신문학(1924)을 집필했고, 뉴미디어 해설서로 라디오(1927), 영한사전인 최신선영사전(1928) 등을 출간했다. 해방 후 합동통신사를 설립하여 언론계에 복귀했다. 또 대한민국 정부 수립 후 초대공보처장, 민의원, 국회부의장 등의 정치활동도 했다. 유엔총회 한국대표로 외교 무대에서도 활약했다.

    한학 지식을 바탕으로 한문학상식』 『중국문화사』 『삼국지연의』 『서유기』 『금병매』 『열국지등을 번역하였고, 칭기즈칸을 다룬 영문소설 The Great Khan을 신문에 연재하기도 했다. 또 위에서 언급한 米洲印象외에 중남미기행이란 여행기도 있다. 1969년에 작고했다.

    숙명여자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옥렬(金玉烈)은 천리구의 여식(女息)이다. 1930년생이다. 국제정치가 전공이다. 한국국제정치학회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학회에서 더러 만났다. 안다면 아는 사이다. 우리 집에서 가까운 방배동에서 살았다. 어쩌다 동네에서 마주치기도 했다. 한동안 보이지를 않아 이상하다 생각했는데, 작년(2021) 57일자 조선일보에 부고가 났다. 지금 산 사람 말고는 다 죽었다는 것이 내가 가끔 하는 말인데, 이젠 천리구도 그의 딸도 내 말을 뒷받침하고 있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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