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실의 천사’ _권진규 탄생100주년기념

 

한국 근현대 미술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권진규 탄생 100주년 기념-노실의 천사>전시(2022. 3.24~ 5.22)가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한다. 노실(爐室)이란 197233일 조선일보에 기고한 권진규의 시에서 따온 가마 또는 가마가 있는 아틀리에를 의미하며, 천사는 노실에서 만들어진 작품을 말한다.

 

전시는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조각, 회화, 드로잉과 아카이브 등 240여점을 선보인다. 유족의 기증작과 함께 이건희 컬렉션, 국립현대미술관, 고려대박물관, 리움을 비롯한 기관과 개인 소장자에게 대여 받은 작품들로 구성된 권진규의 회고전시 중 최대 규모다. 특히 미술 애호가로 유명한 방탄소년단(BTS)멤버 RM이 소장한 ’(1965년작 추정)도 포함돼 큰 화제를 모으고 있다.

 

권진규는 구상과 추상, 고대와 현대, 동양과 서양, 여성과 남성, 현세와 내세의 경계를 넘나들며 평생 '노실의 천사'를 구하고자 했다. 지금은 한국 근대 조각을 완성하고 현대 조각을 개척한 거장으로 평가받지만, 생전에는 제대로 인정받지 못해 '비운의 천재 조각가'로 불렸다. 자신의 작품에 대한 무관심과 생활고로 고통 받던 그는 19735월 작업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전시 공간은 권진규 아틀리에의 우물과 가마를 형상화하여 그의 세계를 느낄 수 있도록 권진규의 정체성을 곳곳에 반영했다. 각 작품별로 좌대를 만들지 않고 시멘트 블록과 시멘트 벽돌로 일정하게 쌓아 넓은 좌대를 만들었다. 우물과 가마를 떠올리게 하는 동그란 좌대는 우물을 본떠 삼공블록과 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1965년 신문회관 권진규 첫 개인전 때 삼공블록과 벽돌을 이용해 자기 작업실을 형상화한 데서 착안했다.

 

전시는 그가 죽을 때까지 노실의 천사를 구하고자 했던 여정을 따라 1947년 미술에 입문했을 때부터 생을 마감할 때까지 주요 작품을 망라한다. 자작시를 바탕으로 불교에 한평생 귀의해왔다는 점에 착안한 전시는 시기별로 입산(1947~1958), 수행(1959~1968), 피안(1969~1973)으로 구분된다.

 

'입산'1947년 성북회화연구소 시절부터 일본 무사시노미술학교에서 수학하던 시기다. '수행'은 귀국해 손수 작업실을 짓고 밤낮으로 작품 활동을 하며 수행자처럼 생활하던 시기의 작품을 소개한다. 이때 탄생한 작품이 교과서에도 실려 유명한 지원의 얼굴’(1967)이다. 마지막 공간인 파안에서는 전통 재료인 건칠을 활용하며 작품에 매진한 시기다. 자기 자신을 승려로 표현한 가사를 걸친 자소상’, 삼베의 거친 질감을 살린 건칠 작업으로 예수의 고뇌를 형상화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 나무로 깎아 만든 불상등이 대표적이다.

 

곳곳에 설치된 영상에서는 미처 몰랐던 다양한 권진규의 일상과 함께 작업을 알 수 있고, 전시 마지막 방을 나오기 전에 권진규가 생전에 그렸던 스케츠북 25권을 관람객들은 손에 들고 만지고 펼쳐본다. 깜작 놀라 자세히 보니 그의 작업실에 있던 스케치북 그대로 낡은 표지, 테이프자국까지 원본과 똑같이 만들어 놓은 영인본이다.

 

전시 관람 내내 작품이 주는 감동을 넘어 미술관측의 전시기획과 디스플레이에 더 감동을 받는다. 한평생 어떤 사조에 휩쓸리지 않은 채 작품에 몰입해 자신만의 작품세계를 구축한 권진규가 추구했던 것은 사실적인 것도, 아름다운 대상도 아니라 결코 사라지지 않는 영혼과 영원성이라는 마음이 그대로 전달되어 전시장을 나오지 못하고 계속 머문다.

 

이 성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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