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104) 내가 넘은 38선 (14)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국가를 무던히 사랑하는 수학자다. 그는 여러 권의 단행본을 집필했다. 그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 국가의 품격이 아닌가 한다. 오상현의 번역(Book Star, 2006)이 있기에 사서 읽었다. 내용은 앞에서 말한 日本포럼의 글들을 부연이다. 새로운 것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후지와라의 글을 읽으면서 일본의 수학이 세계적인 수준이란 것이 마음에 걸렸다. 일본이 한국보다 앞선 분야가 많다. 배울 것은 배워야 한다. 수학도 앞섰으면 배워야 할 것이다.

    나는 수학과는 거리가 멀다. 어려서 구구단은 외었고, 3때까지 배운 것이 끝이다. 대학입시를 위하여 미적분과 해석기하 등도 공부했다. 학교서 배운 책은 아니지만, 해석기하는 일본인 와타나베 마고이치로(渡辺孫一郞)初等解析幾何學(1929년 초간)의 번역본으로 공부했고, 미적분은 세 사람의 미국교수가 공저한 책인데 교수들의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그 후의 나의 수학이란 생활에 필요한 가감승제(加減乘除)이니 산수 혹은 계산이라면 모를까 수학은 아니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그건 그렇다고 치자. 그러다가 한국의 수학은 어떤가 하는 데 생각이 미쳤다. 우리나라의 수학은 어떤가?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우선 역사책을 뒤져보는 것이다. 그래 진단학회에서 나온 韓國史: 近世後期篇(1970, 8)을 펼쳤다.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기대하였다. 선조 이후에 서양의 수학과 역법(曆法)이 수입되었다고 하고, 남병철(南秉哲, 1817-1863)이 지은 海鏡細草解(해경세초해)가 수리서(數理書)로 뛰어났다고 나와 있다. 그러나 이 책은 천체의 측량에 관한 것이다.

    남병철은 위의 책 외에도 儀器輯說(의기집설) 등의 저술이 있다. 그러나 그의 책들은 대체로 천문, 기상, 지구, 역법에 관한 것이고, 우리가 생각하는 수학과는 거리가 있다. 또 그 동생인 남병길(南秉吉, 1820-1869)算學正義(산학정의) 등의 수리에 관한 책을 썼고, 비슷한 시기에 이상혁(李尙爀, 출생 사망년도 불명)算術管見(산술관견)이란 책을 냈다고 한다. 실학파로서 청나라에 들어온 서양 수학을 소개한 것이라 했다.

    이러한 정보로는 한국 수학의 역사와 성취를 가늠하기 힘들다. 그러다가 인터넷에서 김용운(金容雲)과 김용국(金容局)이 공저한 韓國數學史(과학과 인간사, 1977)란 책을 알게 되었다. 도서관에서 대출하여 읽었다. 간단히 소개하면서 내 생각을 덧붙인다.

    도입(導入)부문에 동양 3국의 수학에 관한 개괄적인 언급이 있다. 중국의 수학은 율력(律曆)에서 시작되었다. () () () 도량형(度量衡)을 하나의 수리의 기본원리로 삼아 그것으로 우주만상의 이치를 설명하려고 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음양오행(陰陽五行), 십간(十干), 십이지(十二支)의 사상이 생겼다. 그것이 한반도로 들어왔다. 관학(官學)의 일종으로 명맥이 유지되었고, 종사자도 중인(中人)이었다. 일본의 수학은 화산(和算)이란 이름으로 알려졌다. 임진란 당시 조선에서 수입한 중국의 산서(算書)의 영향이 크다. 그러나 7세기말에서 9세기 초의 나라(奈良)시대에 이미 중국에서 수학과 계산도구인 산목(算木)’을 수입하였고, 산박사(算博士)가 산생(算生)에게 수학을 가르쳤다고 한다. 백제를 통해서인지는 알 수 없어도 역사가 오래다.

    본론은 한반도의 수학사이다. 3국시대로 소급된다. 어느 나라나 다 그랬겠으나 토지측량, 조세, 부역(賦役), 곡물교환, 조공(朝貢)과 무역, 소득지출, 축성, 토목공사, 공예제작 등의 실용을 위한 산수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것이 도량형, 음률, 천문학, 풍수지리사상 등으로 발전했다. 관료적 산수였다. 고려시대에는 중국의 송과 원의 산학(算學)이 들어왔다. 민간수학도 있었다고는 하나, 주로 국자감(國子監)의 관영(官營)수학이었고 천문학 위주였다고 한다. 그러나 고려의 쇠망이 양전제(量田制)의 문란과 연관이 깊다는 사실도 고려 수학의 일단을 설명한다.

    조선시대의 전기다. 세종은 궁정과학의 붐을 열었다. 천문학에 대한 관심, 역서(曆書)편찬, 자격루(自擊漏)의 발명 등은 수학에 기반을 둔 과학적 근거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또 세조 때 편찬된 經國大典에 들어있는 八學(팔학)’算學(산학)’이 들어있는 것을 보면 산수를 중요시한 것이 분명하다. 산학자(算學者)가 다수 출현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중기를 연산에서 인종까지로 보면, 이 시기는 타성(惰性)과 정체(停滯)의 시대다. 더구나 임진란으로 나라가 망했다. 그나마 실낱같은 명맥을 유지하던 산학마저 자취를 감췄다. 공백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도 아주 망하지 않은 것은 그 후 실학(實學)이 대두한 때문이다. 서양의 충격이다. 실학의 최초 인물은 이수광(李晬光, 1563-1628)이 아닌가 한다. 그는 세 차례에 걸쳐 연경을 다녀왔고, 백과사전적인 芝峰類說(지봉유설)을 저술했다. 여기서 그는 서양의 과학을 소개했다. 실학은 이규경(李圭景, 1788- ?)으로 이어졌으며, 그는 五洲衍文長箋散稿(오주연문장전산고)에서 중국의 형이상학과 서양의 궁리(窮理)와 측량(測量)의 형이하학을 대비시켰다.

    실학기(實學期)의 수학자로는 算學啓蒙(산학계몽)을 저술한 김시진(金始振)이 있다. 또 황윤석(黃胤錫, 1719-1791)算學入門, 홍대용(洪大容, 1731-1783)籌學需用(주학수용), 최한기(崔漢綺, 1803-1879)習算津筏(습산진벌)을 저술했다. 이러한 전통이 위에서 말한 남병철, 남병길, 이상혁 등으로 이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중국수학의 수준을 넘어 독자적인 발돋움을 한 흔적은 없다. 전통적인 유학과 음양오행 등의 관념에서 벗어나지 못한 잡학의 한 가닥이었다. 또 조선조 초부터 산사(算士)를 위한 과거도 있었으나, 응시자는 중인이었다. 조선은 계급사회였기 때문에 망했다는 것이 나의 평소 지론인데, 수학을 위시하여 과학자들을 홀대 천시하였으니 더 일찍 망하지 않은 것이 이상한 일이다.

    1954년 자유당 정권 시절이니 오래 전이다. 요즘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겠으나 위헌적인 사사오입 개헌에 수학자가 동원된 일이 기억난다. 정권의 시녀역할을 한 것이다. 학자는 모름지기 자기 연구에 몰두해야 한다. 또 무슨 상이나 명예를 염두에 두고 연구해서는 안 된다. 뛰어난 결과가 나오면 상을 받기도 한다. 그것도 운이 따라야 한다.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모르나 우리나라 수학자가 수학의 노벨상이라는 필즈상(Fields Prize)’을 수상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없다. 우리나라 수학자들도 분발하여 뛰어난 업적을 이루어 이 상의 수상자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일본에는 네 명이나 나왔다지 않나.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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