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 하더니(박경리 104)

 

    박경리가 중환으로 입원중이란 사실을 내가 안 것은 20084월 중순이었다. 현대 한국의 성취를 상징할만한 이들을 가려 찾아 초상사진 작업을 해오던 윤주영(尹冑榮, 1928- ) 전 문공부장관이 그 100인 초상화 작업(백인백상, YBM si-sa, 2009)에 어떤 여성이 좋겠느냐는 추천 제안을 듣고 박경리와 박완서 두 사람이 빠질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럼 두 사람에게 직접 연락해서 사진작업 참여의 시간도 얻어 달라고 청해왔다.

    경기도 구리시 아치울 마을에 살던 박완서 소설가의 접촉은 옛적에 (월간)뿌리깊은나무기자를 지낸 적 있었던 그 맏딸을 통해 간단히 승낙을 받을 수 있었다. 한편 아주 모처럼 토지문화관 사무국으로 전화를 했을 때는 벽에 탁 가로 막히는 기분이었다. 입원중이란 기별을 들었던 것. 윤주영은 병석의 작가도 찍고 싶다 해서 다시 원주로 전화했지만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는 중환이라 어렵다고 반응해왔다.

    그래저래 당신 병세에 대한 소문이나 기사에 대해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중환자실에서 일반병실로 옮겨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용태의 호전이라고 보도한 신문 기사도 보았다. 알만한 곳에 확인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가족들에게 임종(臨終)을 대비하게 하려는 조치일 뿐이란, 안타까운 소식이 다시 전해졌다. 예로부터 가족의 임종은 오복 하나라 했다. ‘고종명(考終命)’은 말 그대로 죽음을 미리 생각해둔다는 뜻이고, 비근한 일상어는 집에서 가족들이 지켜보는 사이에 죽음을 맞음이란 뜻이다.

    그리고 어린이날이었다. 방송을 통해 장서(長逝) 소식을 들었다. 생명에겐 죽음은 삶의 완성이라 했다. 특히 소설 속에서 수많은 죽음을 그렸던 작가였고 보니 그에 대한 생각이 깊기로 박경리만 한 경우는 흔치 않았을 것이었다.

죽음을 생각하다

    그런 박경리일지라도 당신 일신의 죽음은 언제부터 심각하게 그려보기 시작했을까. 행동엔 마음의 움직임이 먼저인 것. 매지리 땅을 확보했을 때 당신 사저를 지었던 땅 뙈기 한쪽을 묘지로 쓰겠다고 이미 작정해 두었다. 다시 세월이 흘러 아주 구체적인 결단을 내려야했던 시점이 다가왔다. 진의장 통영시장에게, 공무가 폭주하는 2004년 말인데도, 원주를 한번 다녀가라는 기별을 보냈다.

    시장 자리는 연말연시 관청 일에 잠시도 손을 비우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듣지 않아도 알만했다. 그러한즉 진 시장의 마음이 다급했다. 드디어 길을 놓은 것이 200515(진의장,바다의 땅, 멈추지 않는 나의 꿈, 채움, 2014, 156-9).

그런데 왜 불렀습니까?”

진 시장한테 유언을 하고 싶어 불렀어요.”

무슨 말씀을 하십니까. 오래 오래 사실 건 데 유언이라뇨?”

내 죽으면 통영에 묻어주세요. 유품들은 흐트러지게 하지 말고 모두 통영으로 가져가세요. 그리고 그 중 세 가지를 소중하게 여겨 주세요. 그 첫째는 재봉틀, 그 둘째는 국어사전, 그 셋째는 소목장입니다. 재통틀은 나의 생활이었고, 국어사전은 나의 문학이요, 소목장은 고향 통영이 내게 내려준 나의 예술이에요.”

토지원고를 주세요.”

하도 짐이 되어 1부에서 3부까지는 불태웠는데, 45부의 것은 세종대학에 있었던 모 교수가 가지고 있을 거예요.”

    내가 작가를 마지막 본 것은 200710월초 원주였다. 이해 8월말로 대학에서 정년퇴직했고 그 인사차 찾았던 것. 그때 작가는 귀래관 입구의 돌담을 쌓는다며 맨손으로 시멘트 반죽을 주무르고 있었다.

    생전에 마지막 본 모습도 그처럼 집념의 일상이었다. 바로 이 해 7월에 불치병 판정을 이미 받았고 항암치료는 받지 않으려 했음은 나중에 들었다. 그럼에도 당신의 일상적 집념은 여전했으니 다만 그게 글쓰기가 아닌 젊은 작가 밥 해주기였다.

    “하숙치는 사람이 되었어요!” 기쁜 나머지 스스로 탄성을 지르는 듯 했다. 채소밭에서 가꾸는 푸성귀도, 작가를 기려 외부에서 보내온 세찬(歲饌) 등도 모두 문화관 식당으로 올려 보낸다며 스스로도 흐뭇해했다. 이 경과는 시로도 남겼다(산골 창작실의 예술가들).

멀리서 더러 보기도 하지만/ 방 안에서도/ 나는 그들을 느낄 수 있다/ 논둑길을/ 나란히 줄지어 가는 아이들처럼/ 혼신으로 몸짓하는 새 새끼처럼/ 잔망스럽게 혹은 무심하게/ 그들은 그렇게/ 내 마음에 들어오는 대상이다// 회촌 골짜기를 떠나 도시로 가면/ 그들도 어엿한 장년 중년/ 모두 한몫을 하는 사회적 존재인데/ 우습게도 나는/ 유치원 보모 같은 생각을 하고/ 모이 물어다 먹이는/ 어미 새 같은 착각을 한다/ 숲 속을 헤매다 돌아오는 그들/ 식사를 끝내고 흩어지는 그들// 마치/ 누에꼬치 속으로 숨어들 듯/ 창작실 문 안으로 사라지는 그들/ 오묘한 생각 품은 듯 청결하고/ 젊은 매같이 고독해 보인다

생로병사의 그 노환

    작가의 늙음의 병 타령을 내가 직접 들었던 것은 2004년 말이었다. 동아일보 일행이 인터뷰하려고 원주행을 했을 때 나도 동행했던 1220일 경이었다. “건강이 좋아 보인다.”는 기자의 인사를 받고나서였다.

     “겉보기만 그래요라는 말로 되받았다. “혈압조절약을 먹고 있고, ()이 조금 나오고, 백내장 수술 날짜를 받아놓았다했다. 해도 인터뷰 3시간 동안 줄담배를 태우면서도 기침 한번 안 하는 걸 보면 아직 정정하다고 기자는 진단했다(황호택, “국민문학토지작가 박경리,”신동아, 20051).

    작가의 병 타령은 나중에 서사시로 읊었다. 시구를 따라가다 보니 2004년 경에 이미 마음에 품었던 시로 읽혔다.

(전략)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눈물을 많은 눈물을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산다는 것)

    작가 하세(下世)의 구체 경과는 한참 나중에 진의장 통영시장 그리고 류우익 전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들었다. 2008326일로 잡힌 청와대 '경연(經筵)' 요청을 받고(각주 참조) 작가는 그 이틀 전 24일에 서울에 왔다. 류 실장이 삼청동의 이름난 한식집 용수산에서 저녁을 대접했을 때만 해도 용태는 평시와 다름없었단다.

    다음날 갑자기 몸에 병이 생겨 서울아산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거기서 뇌출혈 판정을 받았다 했다.

    갑작스런 입원에 딸 김영주는 어머니 박경리의 종신(終身)을 직감했다. 입원 즈음에 벌써 말문을 닫았기 때문이었다. 중환자실 입원이었다가 가족 요청으로 423일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

 

각주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한지 한 달이 지날 즈음 서울대 교수 출신 류우익(柳佑益, 1950- ) 비서실장이 보기에 최고통치 사무실이 당장 불끄기 같은 현안에 온통 매몰된 양이 무척이나 안타까웠다. 이의 지양과 함께 원려(遠慮)의 틈새를 마련하고자 왕조시대에 권력자와 신하가 마주 앉아 천하를 논하는 경연(經筵)같은 자리를 마련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1회로 박경리 작가를 청했다. 청계천 복원 아이디어의 출발에 박경리가 있었음은 누구보다 대통령이 잘 알고 있던 터였고, 비서실장은 교수시절 작가에 대한 존경으로 진작 원주를 찾았던 적이 있었던 인연으로 작가에게 무슨 말이든 좋으니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청했던 것. 작가의 갑작스런 와병으로 326일 강연은 취소했고 일단 48일로 경연 날짜를 재조정해두었다 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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