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99) 내가 넘은 38선 (10)

 

    글로벌 시대라 그런지 국제인(國際人)이란 말이 생겼고, 자식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많다. 초등학교에 가기 전부터 영어를 가르친다. 그렇다고 국제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또 초등학교부터 PC를 가르친다고 PC를 만들거나 소프트웨어를 쓰는 인재가 탄생하지는 않는다. 국어와 산수 교육이 부실하면 창조력의 기초가 생기지 않는다고 후지와라는 말한다.

    나는 일본어를 못 읽는다. 대학에 다닐 적에 일본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닌 적이 있고, 대학원 다닐 적에 일본인 친구에게서 과외공부를 한 적도 있으나 누가 무어라면 나의 일본어는 가나를 아는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나 번역물은 꽤 읽었다. 처음 읽은 소설이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태양의 계절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번역된 것이 없어서인지 아주 오래된 고전은 읽은 기억이 없다. 그런데 후지와라는 일본의 수준 높은 전통문학이 8세기 전후의 니혼쇼키(日本書紀), 고지키(古事記), 만요슈(萬葉集)부터 시작되었다면서 겐지모노가다리(源氏物語)를 지은 무라사키 시키부(紫式部)나 바쇼(芭蕉) 같은 천재가 여러 명 나온 것은 다른 문학사에 없는 일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그들의 글을 읽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벨문학상이 8세기경부터 있었다면 일본은 50명 이상의 수상자를 배출했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고 하니 그런가 하나 이것은 좀 과장이다.

    노벨상은 1901년부터 주어졌다. 지난 120년 동안 일본은 2명이 문학상을 받았다. 그 비율로 따지면 8세기부터 19세기까지 좋게 보아 많아야 20명이다. 과장이라고 해도 읽을 고전문학이 있다니 그런가 한다. 우리에겐 무엇이 있나? 한문으로 쓰여 진 것은 그만두고 한글로 된 것으로 언뜻 생각나는 것이 구운몽』 『춘향전』 『흥부전』 『심청전등의 소설, 정철(鄭澈)과 박인로(朴仁老)의 가사(歌辭), 시조(時調) 등이다. 내가 알기로는 구운몽춘향전의 일부는 고등학교 2학년과 3학년 국어에 나온다. 고등학교 2학년이면 대체로 18세다. 18세면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같은 공직자선거의 투표권이 있다. 그 나이 때라도 그러한 고전을 읽으니 다행인지도 모르나, 후지와라 식의 창조성을 발전시키는 국어교육이라면 아주 어려서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하기야 후지와라의 주장이 다 옳은 것도 아니겠고, 일본은 일본이고 한국은 한국이다. 춘향전같은 고전이 아니라도 지난 세기 초부터 발표된 최남선, 이광수, 김동인의 시, 소설, 수필 등을 읽으면 된다. 이들 말고도 최근에 이르기까지 훌륭한 작가들의 좋은 작품이 많다. 닥치는 대로 읽으면 된다. 나라마다 다른 것이다.

    후지와라의 다음 이야기는 수학이다. 수학은 문학 다음으로 일본의 뛰어난 학문분야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벨수학상이 있으면 일본은 10-20명이 수상했을 것이라고 했다. 일본의 수학역사는 길다. 그 대표로 에도시대의 세키 다카가즈(關孝和, 1642-1708년 경)와 다케베 가타히로(建部賢弘, 1664-1739)를 들고 있다. 전자는 필산대수학(筆算代數學)을 확립하여 방정식의 해법, 행렬식, 정다각형, 원주율 등의 업적을 남겼고, 후자는 삼각함수표를 작성하는 등의 뛰어난 업적을 남겼다는 것이다. 이들은 17-18세기에 활약하였다. 그러나 20세기에 와서도 그러한 전통은 계속된다.

    1936년에 노벨수학상이라 불리는 필즈상(CRM-Fields Prize)’이 생겼다. 4년에 한 번씩 40세 미만의 수학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일본은 고다이라 구니히코(小平邦彦) 3명이 수상했다. 필즈상은 4년에 한번 주는 상이다. 3인이면 한 사람당 노벨상 네 개에 해당한다. 3명이면 12명이 된다. 말로는 그렇다. 후지와라의 글은 20년 전의 것이기 때문에 그 후에 일본수학자가 필즈상을 더 수상했는지는 모르나 한국인 수학자가 필즈상을 탔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다. 필즈상만 가지고 본다면 일본의 수학이 우리보다 한참 앞섰다. 하기야 전에도 말했다. 노벨과학상을 받은 일본인은 25명이다. 한국은 한 명도 없다.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 이야기가 되지 않는 이야기를 하는 나도 딱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그렇고 후지와라의 일본 수학자랑은 또 있다.

    “수학계에 있어서 20세기의 최대 사건은 페르마(Fermat) 예상(豫想)’의 증명이다. 문제가 제기된 이래 350년 만에 이러한 쾌거를 성취한 것은 앤드류 와일즈(Andrew Wiles)라는 영국인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그가 푼 것은 페르마 예상그 자체가 아니다. 다니야마 유타카(谷山豊)와 시무라 고로(志村五郞)라는 2명의 일본인 수학자가 세운 가설이었다. 양자 사이에는 밀접한 관계가 있어 다니야마-시무라 예상을 증명하면 페르마 예상도 증명된다는 것은 오래전부터 지적돼왔다.”

    다니야마는 도쿄대학 조수이던 1955년에 가설을 발표했다. 매우 기묘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그래 그런지 학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러다가 그가 죽은 후 친구인 시무라가 그것을 이어 받아 발전시켰다. 그것을 후지와라는 일본인의 미적 감수성과 독창성을 충분히 발휘한 아름답고 호쾌한 예상이었다고 표현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제는 와일즈 차례다. 그는 8년 동안 다락방에서 혼자서 페르마 예상과 씨름을 했다고 한다. 8년 동안 한 문제와 씨름을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그래 포기를 하려든 참에 하늘이 도왔던지 어쩌다 일본인 이와자와 겐키치(岩澤健吉)란 수학자의 이와자와 이론이 떠올랐다. 그 이론에 힘입어 와일즈는 페르마 예상을 풀었다고 한다. 다니야마, 시무라, 이와자와, 이 세 명의 수학자가 아니었다면 페르마 예상50년 후에나 풀렸을 것이라고 후지와라는 말하고 있다.

    50년 혹은 60년이 문제가 아니다. 일본은 원숭이 흉내를 내는 나라라고 흔히 독창성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으나 수학자의 입장에서는 절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수학에 몰두했을 적에 가장 중요한 것은 논리의 힘이 아니라 오히려 미적 감수성이다. 미적 감수성은 예술이나 자연과 접촉해 비로소 꽃을 피우게 되지만 그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문학이나 시가(詩歌) 등에 친숙해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래 읽고 쓰기 주판이란 글이 나오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일본을 가리켜 도국근성(島國根性)”이 있는 나라라고 폄하하고, 일본인을 쪽발이라고 부르던 적이 있었다. 섬나라 근성이 어떤 것인지? 영국도 섬나라이지만 한때 세계를 제패했었다. 아무런 실력이 없이 남을 비하하는 것이 한국인의 근성이 아니었으면 한다. (계속)

 

최명(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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