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관 착공에 즈음해서(박경리 99)

 

   현대건설이 맡기로 한 토지문화관’ 건물 착공식이 1997년 8월 15일 오후 2시에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570번지에서 열렸다교정에서 한두 번 마주쳤던 대학건물 착공식의 순서와 다를 바 없었다이사장이 문화관의 취지문을 식사(式辭)로 읽었다건축회사가 건물 조감도를 갖고 공사개요를 설명했고이어 내빈들이 의식용으로 미리 쌓아둔 모래흙더미로 다가가서 한번 삽질의 개토(開土)로 행사는 끝났다.

    식이 열리기 직전 시공회사 직원들이 현장을 정돈했고 건축위원장인 나는 한쪽 구석에서 그걸 지켜보는 모양새였다어느 순간에 작은 소동(?)이 났다현장요원이 나에게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 물어왔다전직 대학총장 신부를 따라왔던 수행원이 자기 보스는 맨 앞줄에 앉아야 한다며 윽박지른다는 것이었다더운 여름날 흰 천막 아래에 세 줄로 스물 남짓 의자들이 마련됐는데 그 첫째 줄이 아니라는 항의였다.

    연단이 바로 앞에 빤히 보이는 자리인데도 단지 둘째 줄이라는 사실이 불편아니 불쾌했던 모양이었다대학교직자였던 내가 보기로 둘째 줄에 앉았다고 그 사람을신문에도 종종 보도되었던 지난 행적으로 미루어 좋게 봐줄지 아니면 엉뚱하다고 봐줄지는 모르겠지만아무도 만만히 보지도 않을 터인데 영화에서 본 야쿠자'조직원을 연상시키는 몸짓의 비서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 비서를 데리고 다닐 정도의 그 전직(前職행세가 좀 우습게 보였다하기야 도처에 자리며 발언 순서의 의전을 놓고 특히 관청주변에서 국회의원은 물론 시구의원들에 대한 의전에 잔신경을 써야 하는 공직은 무척이나 많다고 들었고가끔 마주치기도 했다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 모르겠으나 지방도시에서 열렸던 세계적 화가의 작품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던 적이 있었다거기서 이런저런 연유로 자리에 나온 시의원 모두에게 한마디씩 말시키는 것이 행사담당 관리의 과제였다모두들 그림의 자도 모르면서도 빠짐없이 한마디 연설은 사양하지 않았다.

대학부설 계획의 무산

    착공식은 보여주기 형식 또는 행사에 덜도 더도 아니지만 막상 중요한 문제는 건축 공사의 견실 시공이고그리고 건물 완공에 앞서 문화관 운영방식이란 내실을 챙기는 것이 현안이었다.

    토지문화관은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지근거리다그 사이 작가는 거기로 출강해서 문학 지망생을 가르치는 등의 유대를 쌓아왔다문화관 운영에도 그 대학이 적극 참여할 개연성에 대한 기대로 연세대 본교 총장도 이사진에 포함시켰다과연 총장의 의욕수는 높았다토지문화관 운영에 행재정적으로 참여해서 그렇게 대학 부설기관 하나로 발전시키고 싶어 했다.

    그 방향으로 추진될 가능성을 찾아야 한다며 총장은 나로 하여금 연세대 재단의 사무총장을 만나게 했다재단 사무국은 서울 본교 연세대의 발상지라는 언더우드 창립자 동상 부근의 고풍스런 건물이었다내가 일했던 서울대와는 달리 연세대는 재단 사무국의 입김이 강하다는 소문은 진작 들었다.

    박경리 이사장이 말해준 조건 곧 대학부설로 삼아 행재정적 지원을 받아 살아생전은 직접 운영을 하고 싶다했고문화관의 재산권 등 각종 권리는 당신 타계 직후에 넘겼으면 좋겠다는 뜻을 전했다대학아니 대학재단의 입장은 달랐다소유권 등 재산권이 당장 대학 소유가 되지 못하면 기술적으로 행재정 지원이 불가하다는 반응이었다이 한 마디로 연세대 부설로 삼고 싶었던 총장의 치적 쌓기 바람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문화관 건축 공사와 함께 부지 바로 이웃에 작가의 사저 공사는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었다사저 건물은 국회의사당 설계를 위시해서 3공 시절의 계관(桂冠)건축가’ 같았던 김수근(金壽根, 1931-86) 창업의 건축사무소 공간의 파트너 한 사람 류춘수(柳春樹, 1946- )였다서울 상암동의 월드컵 경기장의 설계자라고 신문에 오르내렸고내가 몸담았던 대학원의 조경학과 졸업생이란 사실을 나중에 들은 것 말고는 과문했던 건축가였다어떤 인연으로 설계를 맡겼는지도 나는 따로 묻지 않았다. 작가가 타계한 뒤 통영에 지어진 박경리기념관’(2010)도 그의 설계였다.

    문화관의 건축공사 진행에 내가 관여할만한 일은 별로 없었다건축위원장이란 타이틀은 한국토지공사와 오가는 접촉과정을 전담할 뿐으로 건축과정을 꼼꼼히 챙기는 감리는 한국토지공사가 자회사 토지신탁에 정식으로 맡겨놓은 상태였다그러나 틈틈이 공사는 잘 되어 가는가가 궁금도 했고 걱정도 되었던 형편에서 내가 고작 할 수 있는 노릇이라곤 현대그룹의 실세들 이를테면 정몽준(鄭夢準, 1951- )국회의원을 만난 자리라면 건축공사잘 부탁한다는 말을 건내는 정도였다그때 되돌아온 반응은 지붕에 물만 안새면 되겠지요!”가 고작이었다이 말이 참 진실이었구나는 그 뒤 직간접으로 통감는 했다멀쩡하게 지었다던 이름난 미술관이 지금도 우기만 되면 걱정이라 듣고 있고, 내가 지어서 20여년 살아온 단독주택도 누수를 막는다고 첫 10년 정도 고심했고또 고생했다.

    나는 그 사이 건물이 얼마나 올라갔나가 그냥 궁금해서 두어 차례 현장을 찾았을 뿐이었다어느 하루현장에서 이럴 수 있느냐!”는 작가의 분노와 마주쳤다공사 마무리 단계로 문화관 앞에 소나무를 몇 그루를 심고 있기에 얼마짜리냐고 현장 소장에게 물었더니, 20여년 생 정도를 110만원을 줬다고 말했다는 것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 당신 개인집 마당 모퉁이에도 꼭 그만한 소나무를그것도 90만원에 주고 심었다는 것이었다.

부실공사?

    요지는 건설회사가 돈을 빼먹기 위해 비용을 과다 책정하고 있었다는 뜻이었다그 말을 듣자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소장에게 다가가서 작가의 지적사항에 대해 해명해 달라했다소장은 금방 답은 않은 채 나를 물끄러미 한참 쳐다보았다얼굴에 답답하다는 기색이 완연했다겨우 던진 반응은 공사를 맡은 대기업은 납품을 받을 때는 정가에 10% 부가가치세를 물어야 한다개인이 살 때는 1백만 원에서 10% 정도 싸게 살 수는 있었겠다!”는 말이었다.

    생각해보니 물정모르기는 작가와 내가 꼭 같다는 타박이었다한참 나중에 만났던 당신의 단편(1966)을 진작 읽었어야 했다특히 1950년대 말에 정릉집 수리과정에서 만났던 건설 공사판에 대한 당신의 체험적 불신을 감지했더라면 문화관 건설을 두고 작가가 분개할만했던 대목에 대해 미리 적절히 반응할 수 있었겠다 싶었다하기야 재벌급 회사마다 건설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있음은 건설공사가 투입 대비 산출을 셈하기가 들쭉날쭉이라 비자금 조성에 그만한 온상이 없기 때문이란 뒷말인지 일설(一說)인지도 나도 나중에 들었다.

    그러는 사이 문화관 건설 공사의 완공이 임박해졌다준공이 임박했던 시점에서 이사회가 열렸고함께 공사 현장 답사가 있었다작가의 불신감을 부채질하듯 연세대 총장이 내가 총장으로 집을 많이 지어봐서 아는 데 온통 부실 공사다!”하면서 가설 벽채를 발길로 차면서 그 부실의 실체를 증명하려는 몸짓이었다무언가 의심스럽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선 그런 강경론이 정의롭게 보이는 듯 했다.

    부실을 그렇게 증명하는지는 몰라도 대학총장의 몸짓으론 좀 아니었다내 눈엔 대학 부설로 삼으려던 기도가 재단 관행상 어려워지자 그걸 면피하려던 오버액션이 그 아니었던가 싶었다.

 

김형국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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