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97) 내가 넘은 38선 (8)

 

    후지와라 마사히코의 두 번째 글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읽고 쓰기 주판으로 밖에 인간을 만들 수 없다이다. ‘한자의 암기와 단순한 계산의 반복이 참을성을 기르고 독창적인 사고의 기초가 된다는 부제가 달렸다. 제목과 부제를 보면 무슨 이야기인지 대강 짐작이 간다.

    초등교육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개성의 존중이다. 이것을 깔아뭉개야 한다. ‘아이의 개성을 버리는 교육이 필요하다. 아이의 개성을 존중하는 교육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아이들은 예의범절을 모르고 자란다. ‘방임이란 미명아래 아이들을 내버려둔다면 결과는 뻔하다.

   “싫어하는 야채는 일체 먹지 않는다. 부모가 시키는 심부름은 하지 않는다. 하루 5시간이나 TV를 본다. 책에는 눈도 돌리지 않는다. 마음에 들지 않는 놈은 때린다. 수업 중에 동료와 떠든다. 숙제는 해오지 않는다. 원칙대로 한다면 아이들의 이러한 태도에 대해 부모나 선생은 단호하게 꾸짖어야 한다. 아이들이 3-4시간씩이나 TV 앞에 앉아 있으면 부모는 묵묵히 스위치를 끄고, ‘바깥 창문을 닫아라’ ‘심부름 갔다 오너라하고 명령을 해야 한다. 그러나 전후에 자란 부모나 선생은 그것을 못한다.” 후지와라의 개탄이다. 20년 전의 글이라 그렇지 그냥 내버려 두면 요즘 아이들은 TV대신 스마트 폰만 몇 시간씩 들여다보고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의 일본에는 교육칙어(敎育勅語)란 것이 있었다. 국체(國體)라는 말이 초고의 가치로 존중되고 ()’의 개념이 강조되었다. 전쟁이 끝나면서 전후의 교육기본법은 그 반동으로 개인의 존엄개인의 가치를 내세웠다. 작용이 있으면 반작용이 있게 마련이지만, 새로운 움직임은 과거의 판단기준을 완전히 마비시켰다. 아이들의 버릇없는 짓이 무슨 대단한 개성인 것으로 존중되었다. 그 결과 살인범의 인권에까지 과잉 배려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도착 상태에 빠진 세상이 돼버렸다는 것이다.

    여기에 힘을 가한 다른 중요한 요소도 있다. 그것은 풍요한 교육이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경제적 어려움이 점차 사라지고 생활이 풍요로워졌다. 특히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후 세대가 학령기의 아이들의 부모가 되고 또 교사가 되기 시작했다. “가치의 존중이라는 미사여구(美辭麗句)에 위화감을 가진 세대가 더 이상 교육 현장에는 존재하지 않게 됐다.”

    이러한 새로운 풍조를 어떻게 하면 역전시킬 것인가? 여기에 대한 후지와라의 대답은 개성의 존중이란 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려면 아동중심주의, 그리고 사회 전체에 만연하고 있는 아이들에 대한 아부성(阿附性) 근성을 불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개성의 존중이 아이들에 대한 아부를 낳았다. 아니 사회가 그런 방향으로 이전된 것이다. 많은 교육학자들은 개성의 존중이 현대의 기본정신이라고 말한다. 틀린 말은 아니다. 인권은 인류가 수 세기에 걸쳐 독재와 싸워 얻은 귀중한 자산이다. 그러나 개성의 존중과 아이들의 자유방임과는 다르다. 아이들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부모와 교사가 깨달아야 한다. 주먹을 휘두르는 자유는 남의 코앞에서는 멈춰야 한다.

    문부과학성의 기초기본(基礎基本)에 의하면 아이들에게 면밀한 지도(指導)를 한다는 조항이 있다. ‘면밀한 지도란 무엇인가? 사사건건 시시콜콜하게 모든 것을 관찰하여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인가? 그래 가지고는 아무 것도 되지 않는다. 면밀한 것도 중요하겠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엄한 지도인 것이다. 아이들에게 상처를 주는 교육이 되어야 한다. “상처를 받고 여기에 견디고 저항하며 이것에 익숙해지면서 자라야 한다.......편식으로 파를 먹지 않는 아이들에게는 억지로라도 매일 파를 먹여야 한다. 아이의 기분에 맞추다보면 예의범절은 싹트지 못하게 된다.” 편식을 하지 않고 고르게 영양을 섭취하여 건강하게 자라는 아이를 싫어할 부모가 있을까?

    개성의 존중이 가져온 다른 하나의 부작용은 참을성 혹은 인내심을 기르지 못한 것에서도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후지와라는 영국의 상원의원 친구와의 대화를 소개했다. 그 친구는 상원의 과학교육정책위원회의 의장직을 맡고 있어서인지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그는 영국의 아이들이 수리(數理)에 매우 어두워서 걱정이라고 했다. 여러 가지 원인 가운데 후지와라는 참을성이 모자라기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하자, 그는 동의한다는 기색으로 고개를 끄덕거리더라고 하였다.

    전에도 언젠가 이야기한 기억인데, 영국 속담에 “Reading, writing, and arithmetics are taught to the tune of hickory stick.”이란 것이 있다. (후지와라의 글 제목도 여기서 따왔는지 모른다.) “읽기 쓰기 산수는 히코리 회초리로 때리면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히코리 나무로 만든 회초리를 들고 다니면서 공부를 안 하면 때렸던 모양이다. “Spare the rod and spoil the child.”이란 속담도 있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뜻이다. “spank”라는 말도 있다. “아이의 궁둥이를 손바닥이나 슬리퍼 따위로 찰싹 때리는 것을 말한다.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라 잘 되라고 때리는 것이다. 그러한 교육이 언제부터인가 없어졌다. 그래 그런지 영국의 과학과 수리 교육이 쇠퇴의 길로 가고 있는 것을 후지와라의 친구가 개탄을 했다는 것이다. 영국뿐 아니다. 일본도 그렇고, 한국도 그렇다. “아이의 응석을 받아주고 아이들의 비위를 맞춰주면서 기른다. 이것이 가져다주는 최대 병폐는 아이의 참을성을 잃게 하는 것이라고 후지와라는 말한다. 그냥 잘 먹고 잘 사는데 참을성이고 인내고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참을성이 부족하면 어떤 현상이 발생하는가?

    참을성이 부족하면 아이들은 수리에 어두워진다. 이과(理科)문제나 수학문제는 소파에서 뒹굴면서는 풀지 못한다. “책상에 앉아 손에 연필을 쥐고 계산하거나 보조선을 긋거나 하면서 30, 1시간, 하루, 1주일 동안 긴장을 하지 않으면 수학 문제는 풀 수 없다. 5분 동안 생각하고 풀지 못 하겠다면서 팽개친다면 수학은 결코 익숙해질 수 없다. 지나쳐버려서는 안 될 또 하나의 병폐는 참을성이 없어 초래할 [책읽기를 포기하는] ‘독서외면이라고 할 수 있다. TV를 보거나 만화를 읽거나 하는 것과는 달리 활자를 하나하나 추적하면서 양과 질 면에서 충실하게 한 권의 책을 모두 읽는 데에는 그에 상응하는 참을성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자원이 부족한 일본이 살아나갈 길은 과학기술입국이다. 어린이들의 수리이탈(數理離脫)과 독서이탈은 과학기술의 낙후와 연결되고, 그것은 결국 경제 쇠퇴를 가져올 것이다. 방지책은 무엇인가? ‘참을성의 부족을 낳는 아동중심주의와 방임에 가까운 개성존중을 타파하는 길뿐이다. 후지와라의 이러한 외침은 우리도 심각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닌가한다. (계속)

 

최명(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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