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96) 내가 넘은 38선 (7)

 

    후지와라 마사히코는 국어공부가 정서(情緖)를 배양한다고 말한다. 세 번째 중요성이다. 우리 사회에는 국어교육이 잘못되어 그런지 정서가 메마른지 오래다. 아예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전에만 있을 뿐이다. 정말 사전에는 있는지 찾아본다. 내가 자주 보는 이희승 편의 국어대사전(민중서관, 1976)이다.

(1) 사물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온갖 감정.

(2) 관념을 따라 일어나는 복잡한 감정.

(3) <심리학> [emotion] 감정경험(感情經驗)의 한 가지. 또는 그 때의 정신상태. 희로애락(喜怒哀樂)과 같이 갑자기 일시적으로 급격하게 일어나 본능적이며 신체적 표출(表出)이 따르는 감정.

    신기철 𐄁 신용철 편저의 새 우리말 큰 사전(삼성이데아, 1989)을 본다.

(1) 어떤 사물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감정. [: 이국(異國)정서.]

(2) <심리학> 일시적으로 급격하게 일어나는 감정의 나타남. 기쁨, 두려움, 슬픔, 근심, 노염 따위. 표정이나 태도 등에 나타나거나 나타냄. 감각 감정.

    두 사전의 설명이 비슷하다. 하기야 동일 어휘에 대한 설명이니 크게 다를 수가 없을 것이다. 정서는 감정의 일종이나, 뉘앙스나 쓰임새가 다르다. 위에서 예시한 것처럼, ‘이국정서는 대체로 다른 나라에 가서 느끼는 감정이기는 하나, ‘이국감정과 다르다. ‘이국감정이란 말은 이국정서에 비하여 잘 쓰이지 않는 것은 아닌지? 이국감정은 낯설다는 뉘앙스를 주로 풍기고, 이국정서는 낯설지만 왠지 애착을 느낀다는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닌지?

    정서란 그런 것이라고 하고, 후지와라의 말을 들어보자. 수학과는 달리 현실세계의 논리는 믿을 것이 못된다. 출발점이 되는 전제가 보편성이 없다. 따라서 타당성 있는 지점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데 출발점의 선택은 통상적으로 정서를 따른다. “그 인간이 어떤 부모에게서 자랐는가, 어떤 선생이나 친구들을 만났는가, 어떤 책을 읽었고, 어떤 연애나 실연이나 짝사랑을 경험했으며, 어떤 슬픈 이별을 겪었던가, 그런 체험을 통해 배양된 정서에 따라, 출발점을 순간적으로 선택하게 된다는 것이다.

    출발점이 선택되면 떠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길은 회색이다. 흑과 백 사이에 어딘가 위치한다. 어느 점을 찍어 출발하느냐는 판단은 위에서 말한 바와 같이 정서에 의하여 좌우된다. ‘논리란 것도 정서가 충분해야 유효해진다. 여기서의 정서는 희로애락과 같은 원초적인 것이 아니라 좀 더 차원이 높은 것이다. 원초적인 정서는 동물에게도 있다. 그러한 정서와는 그야말로 차원이 다른 정서다.

    “가령 자신의 슬픔을 슬퍼하는 것은 원초적인 것이지만, 다른 사람의 슬픔을 슬퍼하는 것은 높은 차원의 정서이다. 또 고향을 생각하면서 망향의 노래를 부른다면 그것도 차원이 높은 정서이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하고 그에 대해 감동하는 마음도 높은 차원의 정서인 것이다. 그러한 정서는 독서를 통하여 길러지고 연마된다. 독서는 물론 국어에 의지한다. 어렵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독서를 많이 하면 감정이 풍부해진다고 하면 될 것을 정서가 어쩌고저쩌고 떠든 것이다. 후지와라는 수학은 잘 하는지 몰라도, 국어는 잘 하지 못하는 것인가?

    정서를 배양하려면 아름다운 것에 감동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려면 자연이나 예술을 가까이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아름다운 시가(詩歌), 한시(漢詩), 자연을 노래하는 문학을 접하라고 한다. 예컨대, 두보(杜甫)春望(춘망)이란 시를 가능하면 큰 소리로 암송(暗誦)하라는 것이다. 우리도 여기서 그 시를 한번 읽고 가자.

    國破山河在(국파산하재) 나라는 파괴되어도 산과 강은 그대로고

    城春草木深(성춘초목심) 거리에 봄이 오니 초목만 무성하네

    感時花濺淚(감시화천루) 혼란한 때가 느껴지니 꽃을 보아도 눈물이 나고

    恨別鳥驚心(한별조경심) 가족과 이별이 한스러워 새소리에도 놀란다네

    烽火連三月(봉화연삼월) 봉화가 여러 달째 타고 있으니

    家書抵萬金(가서저만금) 집 소식은 만금을 어도 듣지 못하는구나

    白頭搔更短(백두소갱단) 허옇게 센 머리털은 긁어 더욱 짧아져

    渾欲不勝簪(혼욕불승잠) 가지런히 하려해도 비녀를 꽂을 수 없구나

    안록산(安祿山)의 난으로 수도 장안(長安)은 폐허가 되었다. 그래도 봄이 되니 감회가 많다. 나라도 걱정이고 가족의 안부도 궁금하다. 그러면서 늙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개탄하고 있다. 늙은 모습이라 하나 당시 두보는 46(AD 757)였다. 이런 시를 읽으면 여러 가지 감흥이 떠오른다. 그것이 바로 정서와 연결되기 때문에 후지와라는 시를 읽으라고 한 것이다.

    그러면서 후지와라는 또 자신이 초등학교 4학년인가 5학년 때 읽은 아미치스(Edmondo De Amicis, 1846-1908)쿠오레(Cuore)를 이야기 한다. 아미치스는 이탈리아의 아동 문학가이고, Cuore는 이탈리아 말로 심장 또는 마음이란 뜻이고, 책은 초등학교 4학년생인 엔리코(Enrico)의 여러 가지 일화를 담고 있다. 이러한 책은 빨리 안 읽으면 어른이 되고 말기 때문에일찍 읽어야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무슨 효과냐? “용기, 성실, 정의감, 자애(慈愛), 인내, 예절, 측은(惻隱), 명예, 부끄러움, 혹은 비겁을 미워하는 마음 등의 정서가 배양되는 효과이다. 스케일이 큰 사람이 된다는 것이다.

    후지와라는 마지막으로 조국(祖國)이란 국어(國語)”라고 외친다. 유대민족은 2천년 넘게 유랑하면서도 히브라이어를 잃어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20세기에 와서 나라를 다시 세울 수 있었다. “조국이 국어라는 것은 국어 속에 조국을 조국이게 하는 문화, 전통, 정서 등의 대부분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국어교육의 강화가 절실히 요구된다. 국어력의 저하(低下)는 지적(知的) 활동능력의 저하, 논리적 사고력의 저하, 정서의 저하, 조국애의 저하를 가져온다. 경제 불황이 몇 십 년 계속되어도 나라가 망하지는 않지만, 국어력의 저하는 나라를 망친다는 것이다.

    후지와라의 걱정은 물론 일본의 이야기다. 국어교육의 양적인 확대와 질적인 개선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어의 중요성은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국어교육은 어떤지? 세 살부터 한글을 제쳐두고 영어를 가르치는 것이 바람직한지? 모국어를 잘 해야 외국어도 잘 할 수 있는 바탕이 생기는 것이다. 우리도 국어교육을 심각하게 생각할 일이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추기: 지난 회에 우리나라의 상용한자의 수를 언급하였기 때문에 여기서 일본의 상용한자에 관하여 간단히 살핀다. 일본에서는 처음 그것을 당용한자(当用漢字)라 하였다. 연합군 최고사령부(GHQ)의 일본점령기였던 194611월 일본내각에서 발표한 한자이다. 1,850자이다. 1981년에 상용한자라 하면서 2자가 추가되었고, 2010년에 27자가 추가되었다. 합치면 1,879자이다. 이외에 상용한자에는 들지 않으나, 가나로 대체한 글자가 23자이다. 가나를 혼용하기도 하여 다소 복잡하다.

상용한자의 하위분류로 상용한자 가운데 초등학교 6년 과정에서 이수(履修)하도록 정한 한자를 교육한자(敎育漢字)라 한다. <초등학교 학습지도요령><학년별 한자배당표>2017년에 개정되어 202041일부터 시행되었다. 1,026자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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