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문화관, 가시화로 한 걸음(박경리 97)

 

    한국토지개발공사(또는 공사’)는 작가가 생전에는토지4부와 5부 집필의 산실로 이름났던 원주 단구동 집에 남아 계속 이용거주할 것을 제안했다. 남달리 결벽증이 강한 박경리는 생각이 달랐다. 보상금을 받은 이상 가급적 집을 빨리 비울 참이고, 이 나라의 문화적 활력을 불어 넣으려는 취지에서 원주 일우(一隅)에 작은 문화센터를 건립운영해 보겠다는 의욕을 다잡았다.

새 입지의 미덕

    그렇게 마련한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 땅은 그 사이 인연을 이어온 연세대 원주캠퍼스와 겨우 1.7 킬로 떨어진 지근(至近)의 입지(立地)였다. 땅을 구하자마자 일중독자인 작가의 의욕은 다시 나래를 펴기 시작했다. 구상은 원주의 지명(地名)이 한반도의 지리적 중심이란 뜻인 점에서 통일한국에 대한 기원(祈願)을 담을 겸, 원주 안에서 도시화 물결이 덜 미처 여전히 한적한 산촌(山村)으로 남은 회촌마을에 오래 전승되어왔던 사물놀이 매지리 풍물같은 문화전통도 이을 수 있겠다는 희망이 작가의 결심결행을 부추겼다.

    구체적으로 새로 마련한 터가 경관이 빼어난 곳인 까닭에 도시의 먼지에 찌든 문화예술인들에게 생기를 불어 넣기에 적합한 데다 연세대 원주캠퍼스가 도보거리에 있기 때문에 자신이 1991년부터 강의를 맡아온 그 대학 국문학과 문예창작반 학생들을 지도하기에 안성맞춤이라고 판단했다. 이 꿈을 실현하려고 공사로부터 받은 보상금 전액을 투자하기로 결심했고, 여기에 공사도 작가의 복안에 동참한다며 토지문화관신축을 약정했다. 마침 이 해는 정부가 폭넓은 후원을 약속한 예술문화, 그 가운데 마침 문학이 대상이라며 정한 문학의 해였다.

    이에 무관하지 않았을 터로 1996년 초부터 공사는 기관의 이름에서 개발이란 말을 뺐다. 토지의 개발에만 전적으로 매달리던 종래의 역할 방식이 시대의 변화에 적절치 않다고 여겨 토지의 보존에도 진지한 관심을 경주하겠다는 인식전환의 상징적 표출이었다.

    구체적 추진을 위해 작가는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함께 문화관 건립 및 운영을 위한 토지문화재단’(이하 재단)을 발족시켰다(문체부 승인, 1996627일자). 발족 즈음에 활동의 전위가 될 그 선봉이 문학가인 만큼 기관 이름자의 어미(語尾)문학관이 될 것이라고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하지만 박경리는 딱 잘라 문화관이 되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문학은 문화예술의 일익이고 그 노릇은 문화란 틀 속에서 구실을 다해야 한다는 믿음을 앞세웠다. 경향신문 등 여러 신문매체와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 점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이 문학관으로 오해하지만 이건 문화관이다. ‘사는 문제의 전반에 관련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공간이다. 정치, 경제 등 현안을 놓고 격렬한 토론이 이어지는 공간이었으면 한다.

    재단 임원진은 박경리 이사장에 김성우(한국일보 상임고문), 김병수(연세대 총장), 김병익(문학과 지성사 대표), 김영주(서강대 강사, 박경리 딸), 김종수(연세대 원주부총장), 김형국(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 박완서(소설가), 안병영(전 교육부장관), 이효계(한국토지공사 사장), 임양묵(솔출판 사장), 김윤기(한국토지공사 부사장), 윤덕진(연세대 국문과 부교수)이 이사로 진용이 짜여졌다.

실행주체를 세우다

    순서가 바뀐 꼴이지만 토지문화관의 성격과 역할은 1년 뒤 1997815일에 가졌던 기공식 자리의 기념사를 통해 박경리는 간명직절하게 천명했다. “토지문화관 기공식에 즈음하여제목으로 1997815일자로 작가가 직접 적고 서명했다.

    21세기는 한계와 전환을 선택해야 할 시대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살길을 찾아서 방향전환을 해야 할 것이며 한계에 부딛쳐 좌초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오늘날 능동적인 생명의 본성은 거대한 문명에 짓눌리어 피동적 존재로 변질되어 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우리는 미래를 꿈꿀 수가 없습니다. 왜냐 하면 피동적 존재는 반생명이며 물질적인 것이며 창조적 능력이 없고 종()의 소멸을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사고(思考)하는 것은 능동성의 근원이며 창조의 원천입니다. 그리고 능동성이야말로 생명의 본질인 것입니다. 하여 능동적인 생명을 생명으로 있게 하기 위하여 작은 불씨, 작은 씨앗 하나가 되고자 하는 것이 토지문화관설립의 뜻입니다.

구체적인 사업내용

(1) 숲 속의 맑은 공간에서 일과성이 아닌 지속되는 토론으로 문제를 다루려 합니다. 우리와 이웃 나라의 석학 예술인이 모여 환경을 위시하여 여러 방면의 현안 문제를 생각하고 고민하여 토의함으로써 우리들 삶을 추구하고 미래를 모색해 보는 것입니다.

(2) 전도유망한 학자 예술가의 창작과 저술을 위하여 한적한 숲 속의 공간을 제공할 계획입니다.

(3) 창조적이기 보다 기능적 능력에 치중해온 청소년들의 메마른 감성을 일깨워주고 자연과 삶의 이치를 깨닫게 하여 21세기에 대응하는 후진을 양성하려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한국토지공사에서 건물건축비를 부담하였고 작가가 받은 보상금(택지개발로 인한 가옥 대지에 대한 것)을 기금으로 하여 토지문화관을 건립하게 되었으며 연세대학교가 동참해 주었습니다. 건물의 설계는 동우건축에서 담당하고 시공은 현대건설에서 맡아주었습니다. 여기에 이르기까지 한국토지공사의 깊은 배려가 절대적인 것이었고 이사 여러분의 일치된 열의, 김형국 교수가 동분서주했으며 이밖에도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는데 일일이 열거할 수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이상)

    당면 현안은 무엇보다 토지문화관 건물 건립이었다. 재단은 공사 산하 한국토지신탁회사에 그 건립 실무를 맡도록 결의하고, 이 실무를 지휘할 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건립위원회는 3개 건축사무소에 지명공모를 위촉한바. 이들이 제출한 계획안을 검토한 끝에 그 하나인 동우건축사무소에 설계를 위촉했다.

    설계건축가 임근배(林根培, 1957- )19972, 연세대가 여행경비를 지원했던 국문학과 정현기(鄭顯琦, 1942- )김영민(金榮敏, 1955- ) 교수와 함께 문화관 운용의 선진 사례를 참고하려고 프랑스와 독일을 찾았다. 특히 프랑스에서는 파리 북쪽의 샹타이(Chantilly)센터 그리고 노르망디 스리지 라 살르(Cerisyla-Salle)의 문화센터(CCIC)를 찾았다. 1952년 출범인 후자는 스리지 회의(Cerisy Conferences)”란 이름으로 저명 학자를 초치해서 세미나를 개최하고 성과물을 발간해서 프랑스 지성사회에 기여하는 바 크다는 소문이었다.

    1997522, 재단이사회는 설계의 기초계획안(부지 1,547, 연건축면적 773, 지상 41개동)을 원칙적으로 수용했다. 문화관 중요시설은 회의실 및 세미나실(108.5), 숙박시설(집필실 포함, 204), 휴게실, 도서실 등 관리·지원시설(254)이 포함되었다. 시공은 현대건설과 수의계약하기로 의결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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