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세 가지 인연[人生三緣]

 

예로부터 내려오는 말에 인생 삼연이라고 한다. 즉 맺을 결(結) 결연(結緣), 높일 존(尊) 존연(尊緣), 따를 수(隨) 수연(隨緣)이 그것이다. 출전을 더듬어보니 조선조 500년에 가장 걸출한 학자였으며 성리학의 대가였던 퇴계 이황 선생의 가르침이다. 오늘날까지도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고, 특히 퇴계 이황 선생의 가르침은 일본에 크게 영향을 미쳐 걸출한 총리대신으로 일컬어졌던 나카소네가 퇴임사에서 이를 언급하고 즐겨 쓰는 휘호가 결연(結緣), 존연(尊緣), 수연(隨緣)이다. 이를 족자로 만들어 지인들에게 전해주는 것을 낙으로 생각하는 분이다. 포항제철의 창업자인 청암 박태준 회장과도 친분관계가 두터워서 그분께도 이 족자를 선물했고, 응접실에서 이분 글씨를 본적이 있다.

우선 뜻을 헤아려보자. 결연(結緣). 인생사에서 중요한 것이 좋은 사람을 또는 좋은 주변관계를 잘 만나야한다. 썩은 생선토막을 붙들어 맺던 새끼줄은 아무리 빨아도 썩은 비린내가 나기 마련이이지만, 향탁을 쌌던 향주머니는 저 구석에 밀어두어도 은은하게 향내가 나기 마련이다. 따라서 사람은 성장하면서 누구를 만나게 되느냐, 어떤 스승을 만나게 되느냐, 어떤 배우자를 만나게 되느냐, 어떤 친구를 만나게 되느냐에 따라서 그 운명의 증폭이 크게 달라지게 됨을 우리는 쉽게 헤아릴 수가 있다. 어쩌면 이것은 숙명적인 것으로 우리 마음대로 되어 질 수는 없는 것이 아닌가도 싶다.

두 번째 존연(尊緣). 높을 존(尊) 인연 연(緣). 우리는 많은 사람과 만나고 헤어지게 된다. 잠시 만났던 사람 또는 오래 두고두고 만나게 되는 사람 또는 아쉬웠던 사람 등 여러 형태의 만남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때 존연(尊緣)이라고 하는 것은 이 한 번의 만남을 소홀하게 생각하고 흘려보내는 부류가 있는 반면에 한 번의 만남이라도 귀중하게 생각하고 내가 그에게 도움이 될 수 있지 않겠나. 무엇이 도움이 될까? 라고 깊이 생각하고 정성을 다해서 관계를 유지할 때는 그것이 또 다른 결과로 피드백이 되는 현상을 볼 수 있게 된다는 뜻이다.

쉽게 우리는 명함을 받고 잊어버리기 쉽다. 그러나 존연을 높이는 사람의 경우에는 이와 같은 명함철을 유형별로 정리해서 두고 가벼운 전화 한마디, 인사 한마디를 나눈다. 가벼운 편지 한 줄이 잊혀진 정을 일깨우게 되고 일 년에 몇 번만 연결을 하더라도 그 관계는 지속되고 인간적인 폭의 넓이는 넓고 깊어질 수가 있다. 특히 일가간의 관계에 있어서도 이런 존연의 노릇은 훨씬 의미가 강화될 수 있다.

나카소네 총리대신은 그의 회고록에서 자기가 평생 동안 강조하고 실천해 마지않았던 것이 이 바로 존연이라고 한다. 특히 정치가의 경우에는 만나는 사람의 높낮이에 차별을 둘 것이 아니고 언제고 한번 만난 사람이라도 반드시 기억하고 그것을 회상하고 연결고리를 잡으면 그것이 깊은 울림을 가지고 서로 연결될 수 있는 매체라고 했다. 쉽게 할 수 있음에도 우리가 잘 하지 못하게 되는 부문이다.

세 번째 사항은 따를 수(隨) 수연(隨緣)이다. 이는 흔치 않은 어휘다. 이것은 스승을 설정해서 잘 모시고 배우라는 뜻이다. 즉 인류 구원의 스승인 예수, 석가, 공자 같은 인격체는 저 높은 하늘에 빛나는 태양 또는 북극성 같아 구원의 길인 것은 사실이나 너무 멀어서 우리가 도달하기에는 너무 벅차고 또는 길을 찾기가 쉽질 않다. 이럴 경우에 중간 목표로서 가까이 접할 수 있는 분으로 스승을 정하고 그분의 인격을 닮고 그분을 흠모하고 그분의 삶을 더불어 실천할 수 있는 자세를 갖추어 나가면 저절로 자세가 반듯해지고 그 길이 분명해진다.

우리 역사상에 있었던 여러 인물, 신의의 화신이었던 성삼문 사육신의 절개, 또는 이순신 장군의 나라를 위하는 우국충절, 또는 국권회복을 위해 한 목숨을 바쳤던 안중근 의사의 기개, 모두가 우리의 스승이 될 수 있다. 그런 역사상의 인물이 아니더라도 우리 주변에서는 얼마든지 스승의 경지에 또는 반열에 오른 분을 살펴 볼 수가 있다.

나의 경우에 있어서는 한 기업에서 40년을 가까운 거리에서 모셨고 생활을 같이 했었던 분으로 청암 박태준 회장은 직장의 상사와 어른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분의 일생을 미루어 볼 때는 나에게는 스승이었으며 수연(隨緣)의 대상이었다. 그분의 국가관, 인생관, 삶의 궤적을 오롯이 몸에 습득하려고 노력을 해왔다고 회상이 된다. 세월이 영구함에 따라서 한층 더 그리운 정이 두터워지는구나. 무릇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기를 기원 드려 본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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