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같은 회화, 회화 같은 사진

 

사진일까? 그림일까? 사진과 회화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교차시키는 작품들을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있다. 오래전부터 한미사진미술관을 여러 차례 찾아 전시 공간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전시장에 들어서면서부터 새롭게 변신한 전시공간에 놀란다.

 

어두운 전시장에 자그마한 창문이 보인다. 그림인줄 알았던 창문 밖으로 풀과 나무로 가득한 푸른 정원이 보인다. 창문이 궁금하여 밖으로 손을 내밀어보니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창밖에서 신선한 바람과 풀 향기가 들어오는 것 같다. 창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내다보니 창문 양옆으로 푸른 풀들로 가득한 정원이 끝도 없이 길다. 여러 번 창밖을 내다보고서야 양옆 거울에 반사된 사진으로 이루어진 정원임을 알게 된다.

 

빛바랜 사진을 캔버스에 옮겨 그린 사진 같은 회화와 설치미술, 퍼포먼스 등 다양한 장르로의 확장을 실험해 온 조덕현의 ‘mirrorscape'( 2021.12.11~2022. 2.1)<mirror walk>, <uchronia>, <painterly>연작 등 미술관의 공간을 활용한 6개의 대형 설치 작품과 5점의 대소형 회화, 그리고 30여점의 사진작업을 볼 수 있는 전시가 방이동 한미사진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그리고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200 여점의 사진들은 모니터를 통해 선보인다.

 

조덕현은 1990년대부터 주로 오래된 흑백사진 속 인물을 연필과 흑탄을 사용하여 캔버스에 정교하게 옮겨 그림으로써 사진 속 과거의 인물을 재조명하는 사진 같은회화 작업을 지속해왔다. 오래된 사진 이미지를 극사실적으로 캔버스에 담아내는 조덕현의 작업 과정은 사진 속 과거의 시간과 현재의 시간, 실상과 허상을 중첩하면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이번 전시에서 거울은 핵심장치이자 작업 전반을 아우르는 키워드다. 작가는 풍경 사진을 거울로 채워진 공간에 배치하거나, 캔버스 아래에 거울을 설치해 거울 반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이중 이미지를 연출하는 방식으로 회화와 사진을 새롭게 보이게 한다. 또한 전시장 내 작품들은 데칼코마니 같은 형태로 거울에 비친 반사 이미지를 직접적으로 드러내거나, ‘흑백과 컬러’, ‘사진 같은 회화회화 같은 사진이 서로 마주 보는 형태로 긴밀하게 연결된다.

 

사진회화와 한국 근대사진가에 대한 오마주를 담은 설치작업도 선보인다. 오마주 작품은 크게 두 가지 형태로 과거 인물을 소재로 한 장지에 그린 사진 같은 회화와 가로, 세로, 높이 약 2m 크기의 정방형 컨테이너 안에 캔버스를 두고 바닥에 거울을 배치한 설치작업이다. 이 작업은 한국 근현대사진 선각자들에 대한 존경을, 형식적으로는 작품과 거울이 서로 맞닿아 있는 형태로 설치하여 오마주가 내포하고 있는 바라보다는 의미를 시각화한다.

 

사진 연작 ‘mirror walk’는 사라져 가는 우리나라 곳곳의 마을을 찾아 사진을 남기는 가칭 마을 프로젝트의 산물이다. 조덕현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경기도의 작업실 인근과 유년을 보낸 강원도 일대를 포함해 경상도, 충청도, 전라도의 작고 오래된 마을 사진을 찍어왔다. 점차 소멸해가는 장소들의 눈에 포착된 장면들은 이후 디지털 작업에 의해 독특한 색감과 질감으로 이행하면서 사진인 듯 그림인 듯, 현실인 듯 가상인 듯 오묘한 공간으로 변한다.

 

전시관람 내내 어디가 실상이고 허상인지, 어느 게 사진이고 그림인지 구분해보려 애쓴다. 그러나 어느새 그 구분을 잊어버리고 작가가 창조한 새로운 공간에 빠져든 나 자신을 발견한다.

 

이 성 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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