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상 대신 문화관을(박경리 96)

 

    작가가 나에게 전한 문건은 3건이었다문학상 제정은 반대라는 문건에 더해 문화원 건립을 위한 취지그리고 그 실행을 위한 구체적 제의를 말한 두 문건이었다.

문화원 건립에 대한 취지

본인은 단구문학상 제정의 계획을 철회하는 대신 연세대 매지 캠퍼스 부근에 부지를 매입하여 문화원 건립을 계획하고 있습니다대로에서 8백 미터 가량의 거리인데도 풍광이 수려하고 인적이 없어 한적하며 사방이 푸른 산으로 둘러싸여져 있습니다이러한 환경은 첫째 학자와 예술가들이 도시의 먼지를 털고 쉬어가는 데는 더할 나위 없는 적지로서모여 토론하고 의견을 나누며 미래를 위해 고민하고 모색하는 것은 1년에 수상자 한 명을 내는 일보다 파급효과가 있고 개인의 영광보다 우리 문화의 보존이나 발전을 위해 그 기여도가 큰 것으로 생각합니다둘째는 재능 있는 청소년들(연대원주분교의 문과학생이 주대상)을 개도하고 발굴하는 일입니다문학계에도 상업주의가 깊이 침투하여 창의력은 저하되고 문화 부재의 현상이 만연하는 현실에서 진정한 한 사람의 시인 작가를 길러낸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겠습니다셋째는 비록 그 규모가 작다 하더라도 외국의 학자 문인들과의 교류입니다도시치중의 번잡스러움 보다 한적한 우리 자연 속에서 우리 문화의 깊은 부분을 느끼게 하며사실 수 천 년 경험의 축적인 우리의 문화에는 인류의 존속과 발전에 이바지할 사상이 분명 있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설령 그 성과가 모래알만큼 작은 것이라 할지라도 우리의 능동성을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국가적 차원에서도 그와 같은 일은 추진해야 할 것이지만 행사중심 도식적인 것을 지양하는 뜻에서도 자연 속에서 자연스럽게 대화하는 것은 유익합니다세계의 어느 곳에서든 진정한 지성들에게는 반드시 공통점과 합일점이 있는 법입니다.

문화원 건립에 관한 제의

① 토공에서의 상 제정 제의를 빌미삼아 본인은 문화원 건립에 대하여 제의하고자 합니다본인이 받는 보상금 7억 원과 앞서 말한 바 있는 부지 중 1천 평을 토공에 기증하겠으며 토공이 독자적으로 문화원을 건립하며 그 재산의 귀속은 물론 토공 자의에 의해 결정될 일이지만 문화원의 운영권 또는 사용권에 대해서, 50년이 불가하다면 30년간을 연대원주분교의 국문과또 문리대그리고 솔출판사김형국 교수 이외 양심적이며 열정적인 사회저명인사 몇 분을 주축으로그쪽에다 운영권을 맡겨 주었으면 하는 제의입니다.

② 토공에서 불응할 경우 같은 조건으로 다른 문화재단과 교섭할 수도 있습니다.

③ 그 어느 곳에서도 성사되지 않을 때 본인은 7억의 자금과 천 평의 부지그 한도 내에서 일을 추진하겠습니다.

1996.1.22 박경리 백

    1996년 1월 23원주에서 작가를 만난 다음 날인 1월 24한국토지공사 김윤기 부사장에게 편지를 적었다작가가 나에게 보낸 편지의 사본도 당연히 첨부했다.

김윤기 부사장님:

추운 날씨에도 건승하리라 믿습니다.

일전에 전화로 연락주신 건으로 박경리 선생과 전화도 나누었고 어제는 직접 원주를 다녀왔습니다선생의 거처를 빼고는 주위가 모두 철거된 상태였습니다하지만 부사장님의 고심 덕분에 그렇게 현장이 남을 수 있었다 생각하니 감개가 무량했습니다우리 문화를 위해서 그리고 토지공사의 앞날을 위해 좋은 선례가 만들어진 것이라 여겨 더욱 그러했습니다.

전화 건에 관련하여 직접 상의도 드리겠지만 우선 선생의 문건에 잘 나타나 있어 이를 동봉합니다그분의 심경을 토대로 일을 발전시킬 수 없을까 고심하게 됩니다어쨌거나 이 문건을 근거로 부사장님이 전향적 아이디어를 만들 수 없을까 검토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박경리 선생이 새로 터전을 잡은 곳에 문화적 시설을 약간 곁들이고 싶은 희망은 원주가 지명그대로 한반도의 중심이란 사실에 깊이 착안하고 있다 했습니다.

올 문학의 해를 맞이하여 삼성문화재단이 내걸고 있는 최고상인 호암상 수상자로 박경리 선생이 지명되었다는 소식도 어제 직접 들었습니다세상이 모두 그분의 업적을 평가하고 있음이 반가웠습니다그럼 쉽게 뵙기를 고대하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이에 대해 1996년 2월 23토공에서 작가의 제안에 대해 적극적인 대답이 왔다. 그 다음날 오전에 토공 부사장이 토공의 결의서 사본을 보내왔다그리고 부사장이 작가를 예방해서 공사의 뜻을 직접 전하고 싶으니 만남을 주선해 달라했다.

    1996년 3월 8일 아침 일찍 나는 솔 출판 사장과 함께 원주로 갔고 오전 11시에 작가 댁에서 직접 그곳을 찾아온 김 부사장을 만났다당초 토지수용으로 마음이 무척 상했던 작가는 마지못해 응낙했던 자리였다,

    김 부사장은 이날 작심하고 작가에게 다가갔다대짜고짜 초성(初聲)으로 우리는 동업자입니다선생은 소설 토지를 팔아서 먹고 살고우리 공사는 조성한 택지부지를 팔아 생존해 나가는 업체입니다라 했다.

    연세대 철학과 인문교육을 받았던 이다운 말 한마디였다작가의 표정이 일순 표변했다. “말 한마디로 천량빚을 갚는다.”는 옛말대로 그 당장에 작가의 얼굴이 달라졌다. ‘동업자란 낱말 하나가 작가의 심금을 울렸던 것.

    이어 공사 시작 때 소음으로 불편했겠다고 부사장이 사과했다피부적인 문제에 대한 사과에 작가의 반응은 정신적인 성격이었다. “기계소리는 참을만했다그게 감정의 독이 오른 사람소리는 아니지 않는가?!” 함께 오봉산 아래로 갔고 그 자리에서 산세가 좋다고 자랑했다현장담당 김재성 소장도 물론 동행했다.

문화관에 대한 기대

    문학상 대신 문화관을 지으려는 작가의 의욕은 이러했다우리가 4대강국 사이에 끼여 있는 지극히 궁색한 형국이지만 거꾸로 우리가 문화로 일어설 수만 있다면 우리가 그들에게 적극적인 파급효과를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아무튼 토공의 문학문화적’ 개입은 박경리가 군사정권시절 체제로부터 팝박을 받았던 오랜 세월 끝에 만난 극적 반전(反轉)이었다그 이전의 삶이 어떠했는지는 어머니의 사는 법시에 비감하게 적은 적 있었다.

(전략박정희 군사정권 시대 사위는 서대문 형무소에 있었고 우리 식구는 기피 인물로 유배지 같은 정릉에 살았다천지간에 의지할 곳 없이 살았다수수께끼는 우리가 좌익과 우익의 압박을 동시에 받았다는 사실이다그리고 인간이 얼마만큼 추악해질 수 있는가를 뼈가 으스러지게 눈앞에서 보아야 했던 세월태평양전쟁 육이오를 겪었지만 그런 세상은 처음이었다악은 강렬했고 천하무적이었다(후략).

    그리고 배나무집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① 빠른 시간 내에 법인체를 만들 것② 단구동의 작가 거처는 법인체에서 산하에 둘 것③ 임원에 토공의 부사장과 강원지사장을 포함시킬 것 등을 잠정 합의했다.

 

김형국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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