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지리 시대의 시작(박경리 95)

 

    1996123일 오전, 원주로 작가를 찾았다. 대하소설 완간행사 이후, 작가 주변에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 한번 느껴보려 함이었다.토지출판의 솔 출판사장과 함께였다. 주변 일대는 단구동 작가 집만 남기고 모두 헐려 나갔다. 일성(一聲)이 곧 떠날 단구동 집에 대한 아쉬움이었다.

단구동 땅은 해마다 닭똥을 백 부대씩 사서 부어 땅을 기름지게 만들었는데, 그 땅이 여간 아깝지 않다. 심정은 숨어 살고 싶다. 그러나 후배들이 우리 고유문화의 선양에 도움이 될듯해서 지금 문화원을 생각 중이다. 지금까지 정부가 그런 사려 깊은 일을 무얼 하나 해 놓았나.

    그 사이 구체적인 변화가 있었음은 작가에게서도 직접 들었다. 무엇보다 작가는 토지보상비로 대토(代土)를 마련했던 것. 원주시 흥업면 매지리(梅芝里) 회촌마을의 높다란 산 아래라 했다. 땅 물색에는 토공 단관지구 사업소장 김재성(金在成, 1960- )이 앞장 서주었다며, 거기까지 경과를 작가가 직접 말해주었다.

    우선 집을 어디로 옮기고 싶은가, 김 소장이 작가에게 물었다. “원주를 떠나고 싶지 않다, 산을 뒤로 하고 앞으로도 산을 바라볼 정도로 시계가 트인, 민가에서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면 한다. 농사를 지을 수 있고 문화관도 만들 수 있는 땅이면 좋겠다.”

    그 말에 소장이 서둘러 휴일을 접은 채로 땅을 보러 다녔다. 다섯 곳 정도 물색하고는 함께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 가운데 작가가 매지리 땅이 좋겠다 해서 거기로 결정됐다는 것. “그때는 길도 옳게 없었다. 그래서 길은 토공이 냈고, 창고 정도 지을 수 있는 건축허가를 받아냈다.”

한 야산이 오봉산으로

   이 땅을 바로 그날 123일 오후, 나는 작가와 함께 점심을 먹고 둘러보았다. 작가가 새로 이름 붙인 산의 기슭에 사놓은 땅으로 갔다. 연세대 원주분교에서 1.7킬로미터 거리였다. 나는 그 당장에 수안보 온천 건너편에 자리한 충북 괴산군 고사리마을 김옥길 총장의 별서 금란정(金蘭亭)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남향이라 좋게 보인다고 반응하자, 만면의 희색으로 인연이 없으면 구하지 못할 땅이라는 게 작가의 자랑이었다. 자랑과 함께 처음 갑질의 존재로 여겼던 현장소장과도 친밀감을 나누고 있었다. 과연 작가가 직접 담근 고추장아찌도 김 소장에게 나누어줄 정도로 사이가 발전했다

     뿐 아니었다. 땅을 구한 것을 기뻐하는 작가에게 소장 또한 딸이 갓 태어났다며 아이 작명을 부탁하기까지 했다먼저 1960년 전후로 서울 소공동에 문인들이 많이 드나들던 다방 가화(嘉禾)’ 이름을 기억했단다. 문단 인사들이 많이 몰리던 다방이었다조선총독부 등 역사소설로 이름났던 유주현(柳周鉉, 1921-82)이 주간으로 오래 일했던 출판사 신태양사가 바로 옆 건물에 있었던 덕분이기도 했을 것이었다. 지금 위치로 말하면 서울 시청 앞 플라자 호텔 후문 근방이었는데 나도 1960년대에 시내 쪽에서 사람을 만날 일이 있을 때 자주 찾던 곳이었다.

    가화와 함께 연상되는 가영(嘉永)’으로 이름을 지어주었다 했다. ‘가영이란 문자는 일본 황실의 연호에도 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가영은 작가 만년의 미완성작인 나비야 청산가자(현대문학, 20034-6월 분재)에 잠시 등장하는 주인공 이름이기도 했다(각주 1).

    기실, 내가 아는 한, 산 이름 오봉산(五峯山)은 작가의 작명이었다. 조선조 건국 초부터 임금이 임석하는 옥좌 뒤에 펼쳐졌던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곧 해와 달이 좌우 하늘 위에 떠있는 아래로 천지를 상징하는 산봉우리 다섯이 솟아있는 그림의 화의를 차용해서 새로 마련한 땅 뒤의 야산 또한 봉우리가 다섯임에 착안한 작명이었다. 개인적인 작명도 그럴 법도 한 것이 경북 봉화군의 명산 청량산은 이퇴계가 공부했을 때만해도 그냥 우리 집 산이라며 오가산(吾家山)이라 불렀다.

    새로 잡은 터는 사위 김지하도 시를 읊어가며 찬탄하게 만들었다. 평지에서 산 자락으로 올라가는 고개, 곧 원주시 귀래면 동쪽에 위치한 고개로 그 지형이 말안장 모양이라 해서 양안치(兩岸峙)라 했단다. 그의 2016양안치의 노래인즉 나의/ 양안치// 예수쟁이의 백운산과/ 미륵불교의/ 미륵산 사이// 우리 장모님 박경리 선생// 토지/ 자리잡은// <원만圓滿>의 땅// 양안치// 어찌할 것인가?// 나의/ 양안치”.

    보상비로 새 터는 일단 잡혔다. 남은 보상비로 이를테면 젊은 문학인을 격려하는 단구문학상같은 것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가정도 세워 보았단다. 그럴 즈음 토공도 작가와 맺은 인연을 공사의 자산으로 여겨 '박경리문학상'(가칭) 제정 등도 구상하고 있다는 귀띔을 작가에게 직간접으로 전했다.

문학상 제정은 반대

    그 사이 작가는 문학상 제정을 여러모로 심각하게 생각했음이 분명했다. 이윽고 이에 대한 당신의 입장은 전날 122일 밤에 적었다던 편지 형식의 문건으로 보여주었다. 나를 수신자로 해서 심경을 밝힌 것이었다. 1996년이 문학의 해로 정해진 것을 계기로 박경리 이름의 문학상을 제정하는 것이 어떨까, 그런 구상을 토공이 나를 통해 작가에게 전달한 바 있었음에 대한 대답 형식이었다. 가칭 박경리 문학상은 SBS 방송에서 제안한 적도 있었다며, 그걸 사양하고 대안을 말하는 당신의 뜻을 세  건의 문서로 나누어 나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적었다. 요지는 작가이름을 딴 문학상의 제정하겠다는 제안은 반대라 했다(각주 2).

박경리문학상 제정에 관하여

토지개발공사에서 박경리 문학상 제정을 제의한 후의에 본인은 고마움을 금치 못하며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이유에 대하여 김형국 교수께서 깊이 사료있으시기를 바라오며 본인의 하찮은 업적을 높이 평가하고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김 교수께 오직 죄송할 뿐입니다.

본인이 생존해 있는 만큼 관례상으로도 그러하나 본인의 정서에도 합당하지 않으므로 상 제정은 사양함이 옳다는 생각입니다. 뿐만 아니라 본인 사망 후에도 본인의 이름이나 작품명으로 상이 제정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본시 단구동 가옥의 보상금으로 단구문학상을 계획한 바 있었으나 현실적으로 문학상이 남발된 점이 없지 않고 때문에 엄격하고 엄숙함이 결여, 경쟁과 파벌, 전략적 성격마저 띄게 되었고 그로 인하여 일부 문인들의 심성을 불순하게 했으며 허세적 기풍을 조장하는 세태의 일면을 야기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예술가가 그의 존엄을 잃는다면 자유를 잃는 것이며 자유를 잃는다면 창작의 능력도 잃게 됩니다. 해서 상의 권위에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판단 아래 단구문학상에 대한 계획을 철회했던 것입니다.

상 제정에 관해서 솔출판사에서도 수차 제의한 바 있었으나 본인은 앞서 말한 사유로 사양해 왔습니다.

각주 1:

유명 작가가 특별히 이름지어준 김가영은 어떻게 자랐을까? 궁금해서 아버지를 찾았다. 1998년에 토공에서 퇴직하곤 인도네시아로 건너가서 김(nori)과자 공장을 경영한다는 김재성과 2020년 봄, 연락이 닿았다. 김가영(1997년생)의 성장에 대해 물었더니 서울대 사범대학 국제관련 학과 대학원생이라 했다.

각주 2:

박경리 문학상(기창) 제정은 당시의 통영시장도 당면 과제로 삼고 있었다. “박경리 기념관과 박경리 문학상을 제정하고 싶은데 지금 추진해도 좋겠습니까?” “하지 마세요. 내 살아 있을 때는 하지 마세요. 죽고 나면 하세요. 그리고 기념관을 지으면 그 주위에 창작 교실을 만드세요. 돈 없는 신진 작가들이 편히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세요‘”(진의장, 바다의 땅, 멈추지 않는 나의 꿈, 채움, 2014, 160).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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