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완간 말잔치(박경리 93)

 

    개회사의 말과 축하 떡 자르기에 이어 여러 하객들이 축사를 했다. 이구동성으로 이 잔치가 희한한 잔치라는 말이었다.

    작가 박완서 차례였다. 당신이토지완간 기념행사에 간다는 사실을 미리 알았던 이웃들이 함께 참석하고 싶어 했지만 잔치가 어떤 규모이고 진행인줄 몰라 함께 동행하지 못했는데 와서 보니 함께 올 걸 후회된다는 말로 말문을 열었다. 듣고 보니 행사 주관 한 사람임을 기화로 나는 아내는 물론 도도한 선필(善筆)소설이 아닌 삼국지(1993) 등도 펴냈던 서울대 정치학과 최명(崔明, 1940- ) 교수 내외도 청했던 것은 나름의 다행이었다.

    박완서의 말은 이어졌다. 주위에서 거품 같은 잔치를 많이 보아 왔지만 이 잔치야 말로 자리에 함께한 사람들이 진심으로 대작가의 큰 업적을 기리는 한마당이라 치하했다. 그렇다. 우리 주변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고도 제사 밥맛을 낸다는 헛제사밥처럼, 헛잔치가 많고 많다. 학계가 바로 그랬다는 것이 내 체험이었다. 학문적으로나 교육적으로나 내세울만한 공()도 명()도 없는 이들이 후학, 후배들을 끌어 모아서 하는 환갑기념이니 퇴직기념 운운의 문집 출간을 좀 많이 보아 왔던가.

잔치판의 의 모습

    이 잔치가 참 잔치일 수 있음은 작가의 치열한 작가정신과 심지가 깊고도 깊은 인품 때문이라 했다. 이런 말도 곁들였다. 원주잔치가 신문 같은데 미리 알려지자 문학 독자가 아닌 동네 부인들도 원주로 따라 가기를 청하더란 것이었다. 거추장스러울 것 같아 함께 오지 못했지만 작가의 인간적 그리고 문학적 성취가 맑고 그윽한 향기가 되어 문학판 바깥에 있는 사람에게도 위로를 베푸는 경지가 분명해서 새삼 감격했다는 것이 박완서의 인사말이었다.

    해학이 있는 말, 그리고 그런 어투는 무게 있는 내용도 부드럽게 들리게 만든다. 소설가 최일남의 축사가 특히 그랬다. 먼저 누가 뭐래도 소설은 곧 노동의 산물인 까닭에, 엉덩이가 가벼우면 볼장 다 본다.”는 말에 이어 박경리는 호흡이 긴 글쓰기를 통해 소설 쓰는 맛을 보여준 작가라 했다. “외로움이 장엄한 밑천이고 박경리 작가야 말로 깊은 외로움을 오래 견딜 수 있는 분이다. 작품의 성과가 몰고 오는 명리에 되도록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 자기 문학에 금비(金肥) 대신 퇴비(堆肥)를 주려고 애쓰는 일이 그렇게 쉽지는 않을 터인데 선생은 허망한 잡사에 빗장을 걸고 스스로를 고독으로 내모는 일을 해냈다는 치하였다.

    관계 쪽의 축사도 있었다. 문예진흥원부원장과 원주시장이 인사말을 했다. 참가 하객 중에는 작가의 집 주변으로 택지개발사업을 진행하고 있던 한국토지공사 전현직 고위간부도 왔다. 토공측은 작가집 보존문제에 대한 그 동안의 경과를 보고했다.

    마침내 이날의 초점인 작가가 답사할 차례가 왔다. “끝났다는 생각이 안 든다. 글은 내가 살아온 자취일 뿐이고 살아가듯이 글을 썼을 뿐인데 이처럼 축하받을 일인가 싶어, 당황스럽다. 그래서 잔치를 받고 나면 벌 받을 것 같다는 기분이 든다. 이 행사를 당초 반대한 처지에서 마땅히 청해야 할 사람도 챙기지 못했고 그래서 와야 할 분이 오지 못했다, 그분들이 노여워하지 않겠나, 두렵다. 이름도 없이 간단히 선생님 고맙습니다고만 엽서에 적어 부담을 주지 않으려던 애독자들에게 답장 한번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슬프다. 모두가 어쩐지 슬프다.”

잔치 자리가 슬프다고

    잔치판 하객들은 한 결 같이 이처럼 기쁜 날이 없다고 하는데 작가는 슬프다 했다. 희비쌍곡이 이를 위한 말인지 모르겠으나, 기쁜 일을 놓고 슬프다 말하는 작가의 마음이야 말로 훗날의 비상을 위한 비축처럼 들렸다.

    잔치판은 노래판으로 이어졌다. 작가도 윤이상이 지었다는 통영지방의 동요를 한마디 불렀다. 이색 소리는 이색 경력의 판소리 명창이 불렀다. 서울대 외교학과를 졸업한 임진택(林賑澤, 1950- )이었다(각주 참조).

    축하잔치의 참석자들은 업종이 업종인 만큼 문단 쪽 인사 그리고 문학애호가들이 주류였다. 해서 박경리가 주인공인 행사에 참석한 길이면 모두들 사위 김지하는 어디 있는가 한번은 머리에 떠올렸을 것이었다. 이날 김지하는 철저하게 장모 박경리를 빛내게 하려는 몸 낮춤(low-key)으로 일관했다. 그런 점에서 시인의 임석(臨席)을 말해줄 상징은 이 소리꾼이 유일했다.

    그렇게 시인을 받들어 따르던 예술동지 임진택도 마이크 앞으로 나와 한 소리 내질렀다. 김지하 시인과 어울려 문화운동을 펴 왔던 이답게 시인의 풍자시비어를 저본(底本)으로 삼았던 창작 판소리소리내력(來歷)을 불렀다. 판소리는 생의 고단함을 토로한 것이 권력에 대한 비판으로 해석되어 억울한 재판을 받고 죽음에 이른 도시빈민 안도는 그 원한을 풀기 위해 원혼이 되어서도 감옥의 벽을 뚫고 나가기 위해 벽을 찧는데, 그 때 나는 쿵 소리에 권력자들이 두려움에 떨게 된다.”는 줄거리라 했다. 이 소리꾼의 창작판소리 CD음반에 바로오적소리내력이 실렸고, 자켓의 그림은 민중그림의 전위 한 사람 오윤(吳潤, 1946-86)이었다.

    참으로 희한한 잔치 한마당이었다. 맑은 가을 하늘아래서 훈기와 향기가 넘쳐 퍼지는 오후였다.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토지의 마지막 문장 말고는 더 보탤 말이 없는 그런 오후였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각주:

임진택은 1970년대 초 서울대 문리대 연극회에서 오적필화사건으로 혹독한 고통을 겪은 김지하 시인을 처음 만났다. 그리고 1974년 겨울, 민청학련 주모자 한 사람을 숨겨준 죄로 몇 달간 서대문 구치소에서 옥살이하면서 처음 소리꾼 행세를 했다. 소리라곤 배워본 적도, 불러본 적도 없는 그가 그저 손으로 무릎장단을 짚으며 김지하의 담시를 달달 외어 낭송하다 보니, 거기에 가락이 찾아들었고 그 안에서 신명이 울려 나왔다. 나중에 소리를 본격적으로 배우려고 판소리 명창 정권진(鄭權鎭, 1927-86)을 찾았다. 그의 대표 소리임진택 창작판소리(CD 음반)에는오적다섯 대목(오적의 사회적 배경 도둑 시합하는 대목 포도대장이 꾀수를 닦달하는 대목, ④ ⑤ 오적의 호화스런 작태대목, 그리고 소리내력일곱 대목(소리에 대한 의구심 대목 ⑦⦁⑧ 서울에서 안도의 고생 대목(안돼타령) 밥벌이하러 싸돌아다니는 대목 유어비어 죄로 재판받는 대목 옥중의 안도가 통곡하는 대목 감옥 벽에 쿵 쿵부딪치는 대목)이 들어있다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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