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91) 내가 넘은 38선 (2)

 

    책은 3부로 구성된다. 1부는 눈물의 언덕,” 2부는 예배당 있는 풍경,” 3부는 마왕(魔王)의 소리. 눈물의 언덕을 넘어, 교회가 있는 풍경을 보고, 마왕의 소리를 듣는다.

    194589일 밤 열 시. 장소는 만주의 장춘(長春), 당시 이름은 신경(新京). 이야기의 주인공은 후지와라 데이, 스물아홉인가 하는 세 아이의 어머니다. 위로 둘은 사내로 큰아이는 마사히로 여섯 살, 둘째는 마사히코 세 살, 막내는 태어난 지 한 달도 채 안 된 사키코다. 남편은 관상대의 직원이다. 그날따라 일찍 취침. 다섯 식구가 고요히 한여름 밤의 꿈을 꾸고 있었다. 갑자기 누가 와서 현관문을 두드렸다.

후지와라 씨! 후지와라 씨! 관상대에서 왔습니다.” 남편과 같이 문을 열었다. 목총을 멘 두 청년이 서 있었다.

후지와라 씨시죠. 곧 관상대로 나와 주세요.”

대체 무슨 일입니까?” 남편이 물었다.

모릅니다. 전원 비상소집이라 합니다. 그러면 그렇게 알고 갑니다.”

    두 청년은 바쁜 듯이 다음 집으로 가 버렸다. 현관문을 닫자 데이는 현기증을 느꼈다. 밤중에 남편 혼자 나가는 것이 불안했다.

    태평양전쟁의 말기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는지 모르나, 일본의 패망이 다가온다는 느낌은 있었을 것이다. 최근 2-3일 동안 남편의 얼굴에는 무언지 모르는 불안의 빛이 돌고 있었다. 게다가 한밤중에 호출이라니 아닌 밤중에 홍두깨도 유분수다. 나갈 준비를 하는 남편이 말했다.

필시, 올 때가 온 모양이오.” 데이는 좁은 복도에 주저앉으면서 남편의 앞 옷자락을 잡고 떨었다.

왜 이리 변변치 못해. 빨리 챙겨. 당장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아니, 여길 떠난다구요? 그래 어디로 간단 말이예요.”

그야 모르지. 떠날지 안 떠날지도 낸들 아나? 다만 그렇게 할 준비가 필요하단 얘기요.” 옷을 다 챙겨 입은 남편은 급히 나갔다.

  시작은 그러했다. 그러나 혼자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편이 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시간 남짓 기다렸을까? 남편이 돌아왔다. 창백한 얼굴에 극도의 긴장감이 돌아서인지 남편 같지 않았다.

한 시 반까지 신경역에 모인다오.”

? 신경역요?”

거기서 도망질 친단 말야.”

뭐라구요?”

    남편의 설명은 이러했다. 관동군(關東軍)의 가족들은 이미 이동하기 시작했다. 군 가족이 아니라도 정부 가족은 그에 따라 이동하라는 것이 상부의 명령이다. 신경이 전쟁에 휘말릴 것이 예상되어 갑작스레 철퇴(撤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곧 떠나야 한다는 것이었다.

기차 타는 것도 배정이 되었다니, 30분 안에 떠나야 해. 서둘러요.” 남편은 명령조였다.

물론 당신도 같이 가는 거죠.”

더 이상 남편과 말을 주고받을 여유가 없다. 그러나 순간 남편과 같이 간다면 무슨 도리가 있겠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정거장까지 바래다 주고 난 다시 와야 해.” 무슨 일이 남은 모양이다. 그러나 데이는 그 말을 듣는 순간 분노와 슬픔이 동시에 치밀었다. 격한 말이 그저 입에서 나왔다. 그게 바로 울음으로 변했다. 흐느껴 우는 데이의 어깨에 어느 틈에 남편의 손이 닿았다.

, 어서. 어린 것들을 생각해야지!”

    남편의 이 말에 데이는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머니의 책임이 있다. 아이들을 위해 떠나야 한다. 울고만 있을 수 없다. 아이들 말고 무슨 짐을 싸야 되나? 설레는 마음으로 비상용 트렁크를 열어 엉겁결에 짐을 쌌다. 아이들 겨울옷만으로도 한 보따리다. 옷도 옷이지만 먹어야 한다. 설탕, 건빵, 통조림 등속도 넣었다. 마당에 열린 토마토도 몇 알 땄다. 이제 4 킬로미터나 되는 신경역으로 가야 한다. 데이는 마사히코를 업고, 남편은 룩작(Rucksack)위에 사키코를 올라 앉히고, 마사히로는 걸렸다. 데이는 1 킬로미터도 채 못가서 녹초가 되었다. 사키코를 낳은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은 그가 무거운 마시히코를 업고 가는 것은 처음부터 무리였다. 그래도 가야 한다. 본격적인 고생은 그렇게 시작했다.

    그렇게 시작한 고생이 1년 넘게 계속되었다. 그녀가 일본에 상륙한 것은 1946912일이었다. 그렇다고 고생이 끝났을까? 사람 사는 것을 흔히 고해(苦海)라고 한다. 그래도 세 아이를 데리고 무사히(?) 고향으로 왔고, 북만주 연길에서 1년 넘게 포로 생활을 하던 남편도 데이가 일본에 도착한 후 석 달 후에 돌아왔다. 가족이 모인 것이다.

 

최명 (서울대학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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