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하소설 대장정 ‘준공식’(박경리 92)

 

    “시작은 끝을 예감한다.” 대하소설토지이야기의 시작은 19세기말 경상도 땅 하동 평사리에서 벌어졌던 추석잔치 풍경이었다. 흥겨움과 넉넉함 그래서 유정다감(有情多感)함이 넘쳤던 한마당이 그려졌었다.

    1994108일은 소설의 시작 때처럼 밝고 맑은 가을날이었다. 작가 박경리의 원주 단구동 집에서 참으로 희한한잔치가 벌어질 참이었다.

    한국의 문화시장에서 가장 외진 곳 가운데 하나인 원주에서 밭농사 텃밭 토지 그리고 소설토지를 일구어온 집념의 작가에게 깊은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 정오경부터 몰려들기 시작했다. 5백 평 남짓 채마 밭에 잔치상이 가득 차려졌다. 많은 하객의 참여를 예상해서 작가가 배추를 키우던 밭은 물론 웅덩이가 있던 곳도 평토(平土)작업을 마친 공간이었다. 멀리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에서도 이장 조선호(曺先浩, 1944- )를 포함해서 여럿이 하객으로 왔다.

잔치판의 이색 손님

    문인들과 애독자들이 모인 잔치판에 나타난 이색 손님은 단연 현대그룹의 정주영 명예회장이었다. 대선 때(1992) 보여준 건강은 아니었으나 잔치판에 걸어 들어오면서 남의 부축을 거절할 정도의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다. 모처럼 짬을 내어 원주까지 걸음한데는토지5부를 현대그룹 산하의 문화일보가 연재한 인연이 작용했지 싶었다. 아니, 무엇보다 당신이 박경리 문학에 대한 사랑이 남달랐기 때문이었다. 문학 사랑이 대를 잇고 있음을 말해주듯, 정몽준(鄭夢準, 1951- ) 의원은 해외출장을 마치고 비행장에 닿자마자 한걸음에 달려왔다 했고, 서울 압구정동 현대고등학교에 관계한다던 정 회장의 제수(弟嫂)도 참석했다.

    잔치판은 상에 그득 놓인 음식과 함께 시작되었고 이윽고 행사의 막이 올랐다. 주어진 역할대로 내가 먼저 개회사를 했다. 고심해서 미리 적어 두었던 것을 읽었다. 연사가 청중과 눈을 맞추지 않고 적은 것을 읽는 것은, 열심히 한다고 교안을 갖고 교단에 섰을 때보다 좌중의 시선과 마주치며 자유롭게 강의했을 때 수강생들이 졸지 않았다고 한 유명 교수의 경험이 말해주었듯, 그만큼 서로가 교감할 수 있는 분위기에 김을 뺄 불충(不忠)이 없지 않지만 즉흥을 선호하다가는 좌표 없는 발걸음처럼 허둥댈 염려가 미리 걱정됐다. 결국 항상 노트한 것을 갖고 공개 발언을 했던 방식 그대로 소심 인사 나는 그렇게 적은 것을 읽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외람되게 제가 인사말을 하게 된 것은 다름이 아닙니다. 작가 박경리 선생이 제 말을 가장 잘 알아들을 수 있다 해서 정해진 것입니다. 제가 박경리 선생과 거의 비슷한 억양, 비슷한 발성법으로 우리말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이 자리는 저에겐 지금까지 서 본 어떤 자리보다 영광스러운 자리이며 그래서 스스로 감격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어젯밤 저가 잠을 이루지 못했던 것도 그 때문이었습니다.

여러분도 알고 계시다시피, 엊그제 서울에서토지를 문학적으로 살펴보는 세미나를 가진 바 있습니다. 대충 대하소설이 독자들로부터 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이 지난 26년여 우리 사회를 휩쓸었던 부동산 붐과 토지투기붐과는 전혀 무관하다는 점은 명백히 밝혀 주었습니다.

그 세미나에서 나온 많은 심도 있는 평가도 두루 정당하지만,토지를 일컬어 나는 거대한 중화학공장 몇 백 개보다 토지에 더 큰 가치를 둔다. 세금으로도 생산해낼 수 없는 것이 예술작품이다. 토지가 올려준 것은 우리 정신의 GNP이다는 작가 조해일의 한마디보다 더 적절한 평가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이 말은 오늘 우리들이 갖는 장치에도 꼭 맞춤한 말입니다. 중화학공장을 만들면 준공식이란 걸 갖습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서 벌이는 한마당은 문학적 성취를 기념하는 준공식입니다. 예술적 완성을 놓고 이런 준공식을 갖는 것은 국내외적으로 거의 없었다고 알고 있고, 앞으로도 여간 있을 같지 않는, 참으로 희귀한 행사입니다. 작품의 무게도 무게이지만 작가의 인간적 치열성이 오늘 이처럼 유례없는 잔치를 마련할 수 있게 해준 것입니다.

오늘 이 마당에서 대하소설 토지의 막이 오르는 19세기말의 평사리 추석날의 흥겨움을 재현했으면 합니다. 그리고토지가 막을 내리는 시점인 해방의 기쁨도 함께 되살렸으면 합니다. 우리 모두 오랜 고난의 세월을 이겨낸 평사리 식구들처럼 마음 터놓고 온갖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자리는 70평생, 생일이나 회갑 같은, 여느 사람들이 치루는 잔치를 한 번도 제대로 치른 적이 없는 선생께 바치는 일대 축연입니다. 다른 지방은 어떤지 몰라도 작가의 고향인 경상도 땅에선 큰일을 앞두고 있으면 그 일이 완결 또는 완성될 때까지 매사를 삼가는 것이 풍습입니다. 잔치는 물론 생각도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 잔치는 그동안 미루어온 모든 생일을 한꺼번에 축하하는 큰 잔치라는 뜻을 갖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 서니 무엇보다 큰일을 이룬 선생이 자랑스럽고, 그런 선생과 같은 하늘아래서 숨 쉬면서 살아온 우리 스스로가 자랑스럽습니다. 고맙습니다.

    희귀한 행사를 앞두고 목욕재계하는 기분으로 전날 나는 이발을 했다. 새 옷을 맞추어 입진 않았지만 지난여름 외국여행 중에 산 넥타이를 이날을 위해 예비해 두었다. 그러고 잠자리에 들었는데 이상하게도 잠이 들지 않아 뒤척거렸다. “잠 하나는 끝내주게 잔다.”는 말을 가족들로부터 줄곧 들어왔던 처지에서 잠이 들지 않는 것이 나 스스로도 이상했지만 곧 그 까닭을 알아 차렸다. 내일 행사가 어린 시절의 소풍처럼 잠 못 이루게 했던 것.

    개회사에 이어 행사 축하의 뜻을 담아 잔치 떡 자르기 순서가 있었다. 칼을 잡은 이는 주인공 작가, 소설가 박완서, 정 회장, 거기에 나도 들어간 4인이었다. 여기저기서 플래시가 터졌다.

    이 장면사진은 나중에 정 회장 측에서 특히 사랑하는 사진 하나가 되었다. 그를 기리는 공간에 가면 빠짐없이 전시되어 왔다. 서울 아산병원은 몰론, 울산의 현대중공업 홍보관에도 빠지지 않았다. 경제인 정 회장이 우리 문학에도 관심이 많았음을 극화하는데 그만한 사진이 없다고 보았다는 말이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각주:

1970년대 인기를 끈 대중소설겨울 여자로 이름을 얻었던 소설가 조해일(趙海一, 1941-2020)의 인용은 하응백(“비극적 삶의 초극과 완성”, 정현기 편, 한과 삶, 1995, 317) 참조

사진 1:

많은 언론매체에 실렸던 사진과는 달리, 나는 반신상(半身像)만, 아니 얼굴만 나왔다(출처: 아산정주영10주기추모위원회, 아산 정주영(사진 일대기), 2011, 114).

 


 

사진 2: 작가와 평사리 이장(출처: 월간 신동아 김동욱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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