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감’ 덕담, 듣고도 못 들은 척(박경리 88)

 

   해방 반세기를 맞은 1995, 국내 한 유력 신문이 문학가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다. 결과는 박경리의 토지를 그 50년의 최대 문학적 성취로 꼽았다. 이게 기점이었지 싶은데 박경리는 마땅히 노벨문학상을 받고도 남는다는 것이 시정의 예삿말이 되고 있었다.

    한국인의 세계화의식과정에서 노벨문학상에 대한 선망은 무척 높았다. 과학기술분야와는 달리, 문학상은 특출한 개인적 창작력을 가진 작가라면 개발도상국 출신도 받곤 했던 점에서, 그리고 가까운 일본도 이미 수상자가 둘(1968년에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 1994년에 오에 겐자부로大江健三郎)이나 나왔다는 점에서 우리도 차례가 될 만 하다는 기대감도 작용했다. 박경리의 5부작토지를 특히 미국 여류로 처음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펄 벅(Pearl Buck, 1892-1973)3부작대지(The Good Earth)에 대비유감되면서도 박경리의 노벨상 기대감이 높아졌다.

    당연히 당신 혈족도 기대감 대열이었다. 단구동 집을 보존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당국의 기류를, 철거위기를 내게 말해주었던 김지하 시인에게 먼저 전화로 귀띔했다. 다음날인 1994526일 아침, 박경리에게도 겸사 겸사로 안부 전화를 했다. 전날, 김 시인이 했던 말도 전했다. “건강을 회복하고 지난 몇 년 간 이처럼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장모님 덕이다. 자신은 턱없고, 장모님은 노벨문학상을 받아 마땅하다!” 이에 아주 유쾌한 목소리의 반응이 수화기 위로 들렸다. “오래 살다보니 좋은 소리도 듣게 되었네!” 그리고 토지5부 막바지 부분은 예정대로 집필중이라고 근황도 알려주었다.

갑자기 침묵 모드로

    1994년 여름, 드디어 탈고였다. 이후 문화계 안팎에서 토지또는 박경리라는 낱말이 공사 간에 화제가 될 때마다 노벨상감이란 말이 빠지질 않았다. 이 해 늦가을이었던가 그 즈음이었다. 프랑스 문화계 초청으로 한국 작가 여럿이 그곳으로 갔다(방혜자, “하늘의 토지,”현대문학, 20086, 286-7). 박경리는 강연용 책자(“한민족의 정서와 사상 Le Sentiment et la Pensée du peuple coréen”)도 마련했다. 그 얼마 전에 프랑스 벨퐁출판사에서토지1부가 프랑스어로 출판했음(Pak Kyong-ni, La Terre, Paris: Belfond, 1994)을 근거로 그쪽 문화계 접촉의 고리가 생겼다며 대하소설을 펴냈던 출판 주인도 따라간다 했다.

    그해 여행에서 돌아온 작가를 단구동에서 만났다. 여행 기념이라며 나에게 고급 프랑스제 넥타이포켓스카프 일습을 선물로 주었다. 나는 무심결에 토지1부를 번역 출판한 곳이 노벨상 수상자 배출에도 한몫했던 곳이었던가, 먼저 물었다. 그런데 거기에 아무런 대답도, 기척도 없이 작가는 다른 화제로 넘어가버렸다.

    이게 기점이었지 싶었다. 이후 당신 입에 노벨상이란 말은 일절 담지 않았다. 나도 끼였던 작가 주변 사람들 모임에서도 자주 목격했던 바였다. 누군가 그 덕담을 입에 올릴 적이면 당신 안색이나 기색은 청약불문(聽若不聞)’ 사자성어 그대로였다. “들어도 못 들은 척!”

    짚이는 데가 있었다. 바로 그 즈음 한국문단에서 노벨상 수상감은 소설 박경리에 더해서 시는 고은(高銀, 1933- )이란 식으로 신문지면에 슬슬 오르내리기 시작했던 것. 이 소문을 박경리가 듣지 않을 리 없었다, 시인에 대한 옛 불신감이 되살아날 지경이었다. 주변에서 들려온 이야기로 김지하가 격분했고 그게 박경리 기억창에도 쌓였음이 분명했다. 사건인즉 김지하가 민청학련사건으로 감옥 갔을 때 고은이 좌장으로 있던 진보 계열 문인들의 모임이었던 '민족문학작가회의'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전해 들었던 것(박해현, “김지하 시인이 욕을 하는 까닭은,” 조선일보, 2009107).

그들은 당시 독방에 있던 나보고 자꾸 반정부 성명서를 발표해 정부의 탄압을 유발하라는 거야. 내가 옥사하기를 바란 것이지. 7년 동안 독방에 처박힌 내가 왜 그들을 위해 순교를 해야 해? 내 그 말을 듣지 않으니까, 그들은 아내를 납치해서 살해하려고까지 했어. 어떤 놈은 장모(소설가 박경리)가 내 석방을 요구하는 1인 시위를 안 한다고 입에 담지 못할 욕설을 퍼부었어.

    이후 노벨상이란 낱말조차 박경리 일신의 가청권(可聽圈)에서 멀어졌다는 것이 내 짐작이었다. 문단에 파다했던 고은의 치정극 소문도 흘려 들었을 박경리였. 오랜 된 일이라 구체적 근거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면서도, 문학잡지 편집장 경력의 내 친구가 말해준 귀띔은 무엇보다 시인이 당신 책 출간에 박경리의 이름을 무단 도용했던 적이 있었다(도판 참조). 

도용된 이름

    사실이 그랬다면 그 사람에 그 일이라는 우리 전래 사람 재단(裁斷)방식대로 박경리는 고은이란 인격에 대한 불신이 그의 시문학에까지 비화하고도 남았을 소지였다. 이 전비(前非)라면 당신의 소설세계와 함께 고은의 시세계 또한 노벨상감이란 소문은 당신에게 더 할 수 없는 모욕으로 차라리 내가 죽지!”그런 심경이었을 것이었다.

    한편으로 박경리의 고은에 대한 경원이 부정적인 소문과는 달랐다는 대목도 엿보였다. 이를테면 1957년 어느 날의 사진에는, 박경리가 정릉시절 이웃이던 서양화가 박고석 집 뜰에서 화백 부부와 승복차림의 고은과 더불어 환담 중이었다(박고석과 산, 마로니에북스, 2017, 204-5). 그러나 이때는 고은이 등단하기도, 환속하기도 전이었으니 박경리는 그를 잘 몰랐을 것이었다.

    또 있었다. “어느 날 그(고은)는 황동규, 김현 등과 함께 초저녁부터 술을 마시다 소설가 박경리의 모친상 소식을 들었다. 문상을 간 그는 목탁 대신 바가지를 젓가락으로 두드리면서 불경을 외는 파격을 연출했는데, 초저녁부터 마신 술로 어지간히 취했을 텐데도 자세는 흐트러짐이 없었고 목소리는 청아했다”(매일경제, 2005.2.16). 초상이 난 집 상청(喪廳)으로 직접 문상했을 정도의 사이로 읽혔다.

    전직 승려 시인과 직접 마주쳤던 내 인상으로 말한다면 사람들이 금방 혹할 만한 쇼맨십의 주인공이었다. 말을 이어감이 음악용어 아파시오나토(appassionato: 열정적으로)’로 비유할만한, 목이 약간 쉴 지경의, 온몸이 실린 격정 말투였다. 한국미래학회 발표회에 나왔을 때 내가 받았던 인상이 바로 그랬다(“풍류정신으로서의 멋,” 최정호 편,멋과 한국인의 삶, 1997). 멋에 대한 우리말은 멋있다는 직설 표현에 더해 그 이상으로 멋 떨어진다는 표현이 있다며 그처럼 우리 감성은 초월적이기도 하다는 지적이 인상 깊었다.

    그 일련의 월례회 하나에서 박경리를 연사로 모시는 섭외는 내가 맡았다. “길목을 지키던 그에게 덜미가 잡혔다던 작가의 말이 맞는 것이 서울 출입 등 출타가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극구 사양해 왔던 터에 아주 어쩌다 호암상 수상날(1996322)을 맞춘 발걸음이었다(박경리, “멋에 대하여,”생명의 아픔, 2004, 42-52). 월례회에 전직 승려 시인도 발표자로 따로 나왔음을 알았다면 길목이고 뭐고 절대 불응했을 것이었다.

    당신도 스스로 말해왔듯, 발표는 할 말은 많아도 다 못한다는 식으로 마음이 급했다. 월례회의 취지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한 채 마이크를 잡아 미안하다는 말에 이어 한국의 멋이자 아름다움의 선례로삼국유사에 나오는 수로(水路)부인의 일화를 들었다. 그 미묘한 멋의 경지는 듣고 읽는 사람이 느낄 바라며 강연을 끝냈다(박경리, “생명과 영혼의 율동으로서의 멋,” 최정호 편,앞의 책, 43-6). 학회회원들은 거두절미 대작가의 학회 현신(現身)에 방점을 두고 있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화가 방혜자의 화집 출간을 기뻐하는 하사(賀詞)에 “어떤 사람이 자작 추천사에 내 이름을 도용한 일이 한번 있었"다고 적었던 2001년 11월 1일자 박경리의 원고 일부


 

 No.

Title

Name

Date

Hit

3206

‘노실의 천사’ _권진규 탄생100주년기념

이성순

2022.04.12

782

3205

이 생각 저 생각 (104) 내가 넘은 38선 (14)

최명

2022.04.11

1527

3204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88)

정우철

2022.04.10

406

3203

“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 하더니(박경리 104)

김형국

2022.04.07

1906

3202

어떻게 살아야하나, New start의 재해석-1

여상환

2022.04.06

446

3201

국내 NFT최고가 김환기 ‘우주’

이성순

2022.04.05

670

3200

이 생각 저 생각 (102) 내가 넘은 38선 (13)

최명

2022.04.04

1554

3199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87)

정우철

2022.04.03

529

3198

‘미인과(美人科)’ 인물이었다(박경리 103)

김형국

2022.03.31

1859

3197

운명(運命)이란 명(命)을 운반하는 것-2

여상환

2022.03.30

473

3196

‘구찌’의 대형멀티전시와 메타버스전시

이성순

2022.03.29

740

3195

이 생각 저 생각 (101) 내가 넘은 38선 (12)

최명

2022.03.28

1554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