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대장정도 마침내 종점(박경리 87)

 

    긴 강의 유장함은 볼 때마다 경이롭다. 강 흐름의 막바지에 가까이 다가가면 어디서 드디어 끝나는지 그 끝자락이 어서 보고 싶다. 사람이면 누구나 갖는 보통의 마음 인지상정이 그러하다.

    월간지 연재 중에 게재 매체가 바뀌는 등의 진통과 지체가 있었던토지4부완 달리, 5부는 일간지 연재라서 그런지 순항(順航)이란 느낌을 주었다. 태평양전쟁(1941) 발발 직전이던 1940년경부터 시작됐던 5부 이야기는 그 끝이 일제의 패망까지라고 예고되었기에 연재를 따라 읽던 독자들은 날이 갈수록 소설의 대하(大河)의 끝자락이 차츰 하루하루 다가오고 있음은 예감할 수 있었다.

    5부 집필은 일제 식민통치의 폭압이 극악으로 치닫던 시기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래서 4부를 마친 작가는 그 예비공부 몸 풀기로 한동안 일본론을 적어나갔다. 몇 꼭지 적고나선 당신의 소론은 일본 식자들도 꼭 읽어줘야 한다며 아예 일본말로 적어보기도 했다며 그걸 주위에 흘리곤 했다. 나도 직접 들었다.

신문연재의 사연

    그때 일본론은, 30여 꼭지 정도로 기획했던 단행본 분량만큼은 적지 못했다. 하지만 당신 품에 대충 열 꼭지 정도 초()를 잡아 놓았고 그 정도로 생각의 체계는 어지간히 잡혔다고 판단했다. 일단 그걸 일간지 지면에 연재할 수 없을까 궁리하면서 문화일보 쪽에다 넌지시 타진했다. 소문에 신문사 쪽 접촉 창구는 김징자(金澄子, 1941- ) 논설위원이라 했다. 중앙일보 재직 때부터 작가의 언론계 친면인사 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오래 박경리와 교류하던 김 위원을 통해 문화일보 사령탑과 교신했다.

    박경리는 자신을 철두철미 반일(反日)작가라고 진작부터 공언해왔다. 작가의 이런 일본관이 델리키트한 한일 사이 숙제 풀기에 걸림돌이 되지나 않을까 염려했던 것은 신문사 쪽이었다. 대안으로 일제말기의 한반도 사정을 다룰 당신의 대하소설 5부의 신문연재를 제안했다. 일본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깔리든 그건 전적으로 작가의 것이기 때문에 신문사로서 부담감을 덜 느껴도 되겠다고 여겼기 때문이었다. 작가도 그렇다면 정공법으로 적는 일본론 대신에토지 5의 신문연재를 응낙했다. 199291일부터 문화일보에 5부 연재가 시작됐다.

    애독자들은 매회 2백자 원고지 11.5-12매 분량의 문화일보 연재를 열심히 따라 읽었다. 나도 그 한 사람이었다. 따라 읽기를 놓치는 경우도 있었다. 다행히도 대하소설 출간을 담당하던 출판사에서 연재한 글 꼭지가 책 한권 분량 정도로 모이면 그만큼 단행본을 따라 펴냈다. 그때마다 냉큼 사서 읽었다.

    그렇게 따라 읽어가던 내 정황을 말해줄 문건을 최근 하나 찾았다. 편지 주고받기를 애중(愛重)해 하는 이들은 자신이 적은 편지도 반드시 카피를 만들어둔다던데, 그 정도 까진 아닐지라도 간절히 교신하고 싶은 이에게 글을 적었을 경우, 나도 사본을 만들어 두곤 했다. 그렇게 미국 여행 중에 작가에게 띄웠던 그림엽서의 사본이었다(엽서의 인용 부분은 나남 출간 통권 20268).

서울에서 읽다가 17일간의 미국, 일본 여행 중에 지금 뉴욕의 새벽 호텔 방에서토지53권을 마저 읽고 있습니다. 엄청난 감동을 이기기 어렵습니다. “산천초목, 웨디 사람뿐이란가? 목심 붙어 있는 거는 다 애잔한 것인디 욕심부린들 어쩔 것이여? 지은 죄 덜어감시로 살아야제.” 이 구절을 밑줄을 그어가며 읽었습니다. 완간이 고대되고 고대됩니다. 축 건승, 199478일 새벽

    199291일부터 연재하기 시작한 제5부가 그 마지막 607회로 집필이 끝난 것은 1994815일 새벽이었다. 소설의 마지막 장면도 바로 1945815일 해방 그날의 감격에 대한 묘사였다. 토지의 성공적 완성에 매달리다 보니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오 주여라는 말이 나온다. 그리곤 스스로 하느님을 대신하여 딸아 참아라하면서 자신을 달랜다했다. 이 새벽까지 마라톤경기 결승 라인에 우승자가 도달하는 순간을 보여주듯 소설 완결의 카운트다운을 한 주간지가 현장 중계(?)했다(이문재, “그 점안식,”시사저널, 252, 1994825).

만세! 우리나라 만세! 아아 독립 만세! 사람들아! 만세다!” 외치고 외치며, 춤을 추고 두 팔을 번쩍번쩍 쳐들며, 눈물을 흘리다가는 소리 내어 웃고,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대하소설이 완성되자 정작 제일 바빴던 주인공은 그때 박경리 전집을 출간하던 출판이었다. 희대의 문학적 성취를 기릴 완간 기념행사를 갖겠다는 것이었다. 신간이 나오면 저자와 출판사가 공동 주관하기 마련인 통상의 출판기념식을 넘어, 그 이상으로 문단이나 문화계의 한정 행사가 아닌 범사회적 행사로 펼친다는 구상이었다.

    이 제안에 작가는 선뜻 응하지 않았다. 당신의 내성적, 아니 이보다 더 심한 내몰(內沒)적 성품 탓에 결국은 남에게 폐가 될지 모른다는 자기경계심의 발로였다. 사장은 물러서지 않았다. 기념비적 문학 성취가 이뤄지는데 문화일보가 그 문화적 발판이 되었다는 자부로 현대그룹도 홍보효과의 기대로 호응하고 나섰다는 말도 했다. 아주 시의적절한 판촉행사도 될 수 있다는 출판사측의 입장과 주장에 작가가 끝까지 반대하기 어려웠다.

완간기념 세미나

    완간기념행사에 앞서 문학행사의 일환이란 뜻으로 출판사는토지세미나를 열었다. “1회 토지 세미나105일 하루 종일 서울 신촌의 연세대학교 동문회관에서 열었다. 황현산(고려대 교수)토지1: 토지의 문학성”, 권오룡(한국 교원대 교수)토지의 인물론”, 정호웅(홍익대)토지의 주제: 한과 생명”, 그리고 박명규(서울대 교수)토지와 한국 근대사를 발제했다.

    그 세미나 개막 때 토지완간 기념행사 준비위원회위원장 자격으로 인사말을 했다. 내가 위원장 행세를 하게 된 것은 소설토지의 출간을 맡고 있던 출판사장의 추대가 있었고, 직접 확인한 바는 없었지만. 작가도 손을 들어 주었기 때문이었을 것이었다그런 행사의 대외적 모양 갖추기로 말하면 개인적 감투를 유념함이 우리네 정서임을 감안한 추대였을 것으로 그때 나는 서울대 환경대학원 원장으로 있었다. 보다 직접적으론 한국토지공사를 상대로 원주 단구동 일대에 진행 중이던 택지개발사업 대상에서 작가집의 보전책 끌어내기를 거중하는 선봉 일을 맡고 있었다.

    인사말에서 나는 세미나 논의가 두 가지 뜻이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애독자에겐 아는 것만큼 좋아 한다는 말대로 작품을 더욱 좋아할 수 있는 문학평론적 식견을 알려줌이었고, 또 하나는 작가를 향해 당신이 일구어낸 성취의 문학사적 의의를 반향(反響)해줌이라 하겠다.

    그렇게 세미나 발제는 평론의 유식자들이 여러 갈래 논리로 대하소설 토지의 문학적 위상을 지적해주었다. 이 지적들이 고맙긴 했겠지만 막상 작가는 세미나 내용은 건성인 채로 당신 심저(心底)는 소설에 적었던 한 감회를 되뇌고 있지 않나 싶었다. 대하소설 끄트머리에서 소목장 조병수가 작중 인물들과 주고받는 언사(토지5, 통권 17, 2002, 277)가 바로 대작 탈고의 작가 자신에게 들려주는 넋두리이지 싶었다.

일이 끝난 뒤 다 된 것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과연 내가 한 일일까? 의심이 들지요. 정말 저걸 내가 만들었는가. 일한 시간은 간 데 없고 흔적도 없는데 물건이 하나 내 눈 앞에 있다는 것이 여간 신기하지가 않소. 내 손은 연장에 불과한데 무엇이 나로 하여금 만들게 하는가. 생각이야 늘 하는 거지만 그것이 어떻게 물건으로 나타나 있는가.

 

작가에게 보낸 김형국의 독후감 엽서(199478일에 뉴욕에서 적었음)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No.

Title

Name

Date

Hit

3206

‘노실의 천사’ _권진규 탄생100주년기념

이성순

2022.04.12

782

3205

이 생각 저 생각 (104) 내가 넘은 38선 (14)

최명

2022.04.11

1527

3204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88)

정우철

2022.04.10

406

3203

“버리고 갈 것만 남았다” 하더니(박경리 104)

김형국

2022.04.07

1906

3202

어떻게 살아야하나, New start의 재해석-1

여상환

2022.04.06

446

3201

국내 NFT최고가 김환기 ‘우주’

이성순

2022.04.05

670

3200

이 생각 저 생각 (102) 내가 넘은 38선 (13)

최명

2022.04.04

1554

3199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87)

정우철

2022.04.03

529

3198

‘미인과(美人科)’ 인물이었다(박경리 103)

김형국

2022.03.31

1859

3197

운명(運命)이란 명(命)을 운반하는 것-2

여상환

2022.03.30

473

3196

‘구찌’의 대형멀티전시와 메타버스전시

이성순

2022.03.29

740

3195

이 생각 저 생각 (101) 내가 넘은 38선 (12)

최명

2022.03.28

1554

[이전] [1][2]3[4][5]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