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람쥐 산고(散藁)

 

서울에서 남쪽으로 45km 지점에 곤지암이 있다. 지금은 쇠머리 국밥집으로 널리 알려져 있으나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야산으로 둘러싸인 분지형태의 지역으로 이렇다 할 특징은 없었다. 다만 ‘밤골’로 알려졌고 도토리, 상수리나무가 우거지고 밤나무가 숲을 이루는 비산비야(非山非野)였다. 마침 이곳에 밤나무 숲을 소유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가끔 놀러 간 적이 있었다. 주인에게 묻는다.

 

“꽤 넓은 산간 임야인데 이 많은 밤나무와 도토리나무를 어떻게 적은 인원으로 다 가꾸어 나가시는가?”

 

“특별한 것은 없고 간혹 간벌이나 해주고 병충해가 있을 때 조금 손봐주는 것 이외에는 가만 내버려 두면 저절로 잘 자란다. 다람쥐에게 감사할 뿐이다.”

 

“다람쥐에게 감사라니, 이 무슨 소린가?”

 

“어느 곳이던지 밤나무나 도토리나무가 착근하게 되면 일일이 매년 씨앗을 뿌리고 모종을 하지 않더라도 저절로 잘 자라게 된다.”

 

그 이유는 겨울을 나는 다람쥐, 청설모의 겨우살이 식량이 도토리, 밤이다. 열심히 주워 모아서 굴속에 저장한다. 다람쥐가 도토리나 밤을 주워 나르는 것을 보면 흥미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양 볼이 뀌어 지도록 물고 들어가서 열심히 드나들고는 또 나온다. 그리고는 아마도 굴 속에 다 저장했는지 이번에는 그 인근 지역 10미터 이내 근처에 바람 좋고 햇빛 잘 드는 곳을 찾아서 입에 잔뜩 문 밤이나 도토리를 앞발로 땅을 판다. 열심히 파고 그것을 꼭꼭 묻고 발로 다지고 뒤로 돌아서서 탐스러운 꼬리로 휘휘 저어 땅을 고르고 위장을 하느라 나뭇잎이나 풀을 물어와 가리고 덮어놓는다. 이런 행동을 여기저기에 수도 없이 한다. 아마도 다람쥐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올겨울에도 추울 테니, 작년에도 고생했으니 밤, 도토리를 잔뜩 저장하자. 밖에도 여기저기 묻어놓자.’ 하지 않았을까? 그런데 다람쥐가 그렇게 기억이 명석한 동물은 아닌 것 같다. 대개는 어디에 묻은 줄 모르고 뱅뱅 돌다가 한겨울을 나게 된다. 그래서 도토리나 밤나무는 몇 해가 지나게 되면 점차 밤나무골, 상수리 나무골이 성장, 확산되어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다람쥐 입장에서는 열심히 생존을 위해서 바둥거리고 최선을 다 한 것이지만 그 결과는 밤나무 숲이 우거지게 되고 산림(山林)이 푸르게 되는데 일조한 것이 된다. 청설모는 사람이 도토리나 밤을 주워가면 몇십 미터까지 따라오며 꽥꽥 소리 지른다. 아마도 ‘왜 먹이를 훔쳐가요!’라고 항의를 하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묘한 원리를 생각하게 된다. 다람쥐 입장에서는 생존을 위한 투쟁으로 죽기 살기로 저축하느라 땅에 묻고 했는데 결과적으론 어디에 묻었는지 찾질 못하니 이것이 살림을 푸르게 하고 과실이 풍성하게 자랄 수 있는 손길이 된다. 이것을 보이지 않는 손, 섭리의 눈으로 본다면 다람쥐의 작은 손, 발을 빌려서까지도 살림이 울창하고 땅 끝까지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결과가 아닐까. 원리의 눈으로 본다면 보이지 않는 손길에 따라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이런 시각에서 본다면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포도를 개발하여 맛있게 먹게 되는데, 먹는 것은 편하고 좋으나 이런 원리의 눈으로 본다면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우리가 어릴 때 기억으로도 수박을 한쪽씩 동무들끼리 나눠먹으면 한쪽씩 들고 개울가 근처로 가서 과육은 먹고 씨앗은 한 움큼 입에 물고 퉤 뱉으며 누가 멀리 가나 자랑하고 제일 멀리 보낸 아이가 우승자가 돼서 수박 한쪽을 더 먹었던 놀이를 기억한다. 수박 먹고 내기하는 장난에 불과하지만 원리의 눈으로 본다면 맛있는 과육은 먹되 씨앗은 널리 뿌려서 생육 발전하도록 하게 하라는 그런 섭리가 곁들여진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생육 발전시키는 씨를 멀리 퍼트리는 노력도 없이 애당초부터 씨 없는 수박, 씨 없는 포도를 개량하여 좋다고 하는 것은 섭리의 눈으로 본다면 대단한 반역이요, 생육 발전을 해하는 잘못된 조치는 아닐까 생각을 해본다.

 

간혹 시간이 날 때면 채널 170번 다큐 프로그램 내셔널 지오그래픽을 보곤 한다. 이 중에서 세렝게티 그림이 인상적이다. 세렝게티(Serengeti)는 탄자니아 서부에서 케냐 남서부에 걸쳐 있는 3만 km²가 넘는 땅으로, 30여 종의 초식동물과 500종이 넘는 조류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계적인 공원이다. 남쪽의 탁 트인 초원, 중심부의 사바나, 그리고 북쪽과 서쪽의 수목이 우거진 목초지 등으로 작은 강과 호수, 늪지들도 곳곳에 산재해 있다. 건기가 찾아오면 식물의 성장이 둔화되므로 이 많은 초식동물들은 풀과 물을 찾아 이동한다. 야생동물의 대이동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규모로 진행되며, 최대 200만 마리에 이르는 초식동물들이 남부의 평원에서 세렝게티를 거쳐 그루메티 강과 마라 강을 건너 물이 있는 북쪽의 구릉지대까지 장대한 행렬을 이루게 된다.

 

여기서 가끔 희한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사자의 밥 중의 밥이 되는 노루, 사슴들이 사자 곁에서 겁 없이 풀을 뜯고 물먹는 모습을 보게 되는데 이때는 틀림없이 사자가 모두 누워서 배를 하늘로 내놓고 뒹굴뒹굴 구르며 낮잠 자고 쉬고 있는 환경을 볼 수 있다. 이는 사자가 한 번에 양, 소, 들소, 사슴 등을 잡아먹게 되면 평균 한 마리당 20Kg을 먹는데 이를 소화시키기 위해 2~3일간은 뒹굴뒹굴 쉬면서 다른 먹이는 거들떠보지도 않게 된다. 그러면 그 기미를 알고 사자 근처까지 사슴, 들소들이 와서 풀을 뜯고 생존을 도모하게 된다. 문득 주기도문의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가 연상된다. 그렇다. ‘일용할 양식’에 감사하는 것이지 ‘곳간에 쌓아 논 양식’에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족하다. 그리고는 일견 사자가 사슴을 사냥하는 것이 양육강식의 세계로 보이나 사슴, 들소의 무리 중에서도 체격이 작고 약한 개체는 잡아먹히고 강한 종자를 남겨 땅 끝까지 생육 발전하라는 하늘의 섭리에 동참 작용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먹이 피라미드는 생태계에서 생물의 수가 저절로 조절되면서 항상 일정하게 유지되는 생태계의 평형상태인데 인간의 무분별한 야생동물의 포획으로 상위 먹이사슬인 호랑이, 늑대, 표범이 멸종되다시피 하여 생태계의 먹이사슬이 파괴돼 멧돼지의 개체수가 늘어나 민가까지 내려와 사람을 공격하고 채소밭이 쑥대밭이 되는 현 상황은 섭리를 거스른 결과라고 생각된다. 동물에게도 이러하거늘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이런 원리를 적용한다면 어떻게 보아야 할까? 하늘이, 섭리가, 자연 질서가 우리나라의 장래를 바람직하게 그린다면 어떤 모습이 될까? 이것은 이미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일지를 통해서「나의 소원」 제하의 우리나라의 갖추어야 할 모습을 그린 바가 있다. 그 내용이 지금까지도 절절하게 울림을 갖고 있어서 모두 아는 얘기이겠으나 다시 한 번 간추려 본다.

 

 

내가 원하는 우리나라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 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 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의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한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지구상의 인구가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인류의 이 정신을 배양하는 것은 오직 문화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서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홍익인간(弘益人間)이라는 우리 국조(國祖) 단군(檀君)의 이상이 이것이라고 믿는다.

우리 민족의 재주와 정신과 과거의 단련이 이 사명을 달성하기에 넉넉하고 우리 국토의 위치와 기타 지리적 조건이 그러하며, 1차, 2차의 세계 대전을 치른 인류의 요구가 그러하며, 이러한 시대에 우리나라를 고쳐 세우는 우리가 서 있는 시기가 그러하다고 믿는다. 우리 민족이 주연 배우로 세계무대에 등장할 날이 눈앞에 보이지 아니하는가?

이 일을 하기 위하여 우리가 할 일은 사상의 자유를 확보하는 정치 양식의 건립과 국민 교육의 완비다. 내가 위에서 자유와 나라를 강조하고 교육의 중요성을 말한 것은 이 때문이다.

최고 문화 건설의 사명을 달한 민족은 일언이폐지하면 모두 성인을 만드는 데 있다. 대한 사람이라면 간 데마다 신용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적이 우리를 누르고 있을 때에는 미워하고 분해하는 살벌, 투쟁의 정신을 길렀었거니와, 적은 이미 물러갔으니 우리는 증오의 투쟁을 버리고 화합의 건설을 일삼을 때다.

집안이 불화하면 망하고 나라 안이 갈려서 싸우면 망한다. 동포 간의 증오와 투쟁은 망조다. 우리의 용모에서는 화기가 빛나야 한다. 우리 국토 안에는 언제나 춘풍이 태탕하여야 한다. 이것은 우리 국민 각자가 한번 마음을 고쳐먹음으로 되고 그러한 정신의 교육으로 영속될 것이다.

 

최고 문화로 인류의 모범이 되기로 사명을 삼은 우리 민족의 각원(各員)은 이기적 개인주의자여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의 자유를 극도로 주장하되, 그것은 저 짐승들과 같이 저마다 제 배를 채우기에 쓰는 자유가 아니요, 제 가족을, 제 이웃을, 제 국민을 잘 살게 하기에 쓰이는 자유다. 공원의 꽃을 꺾는 자유가 아니라 공원에 꽃을 심는 자유다.

우리는 남의 것을 빼앗거나 남의 덕을 입으려는 사람이 아니라 가족에게, 이웃에게, 동포에게 주는 것으로 낙을 삼는 사람이다. 우리말에 이른바 선비요, 점잖은 사람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게으르지 아니하고 부지런하다. 사랑하는 처자를 가진 가장은 부지런할 수밖에 없다. 한없이 주기 위함이다. 힘 드는 일은 내가 앞서 하니 사랑하는 동포를 아낌이요, 즐거운 것은 남에게 권하니 사랑하는 자를 위하기 때문이다. 우리 조상네가 좋아하던 인후지덕(仁厚之德)이란 것이다.

이러함으로써 우리나라의 산에는 삼림이 무성하고 들에는 오곡백과가 풍성하며 촌락과 도시는 깨끗하고 풍성하고 화평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 동포, 즉 대한 사람은 남자나 여자나 얼굴에는 항상 화기가 있고 몸에서는 덕의 향기를 발할 것이다. 이러한 나라는 불행하려 하여도 불행할 수 없고 망하려 하여도 망할 수 없는 것이다.

민족의 행복은 결코 계급투쟁에서 오는 것도 아니요, 개인의 행복도 이기심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계급투쟁은 끝없는 계급투쟁을 낳아서 국토에 피가 마를 날이 없고, 내가 이기심으로 남을 해하면 천하가 이기심으로 나를 해할 것이니, 이것은 조금 얻고 많이 빼앗기는 법이다.

이상에서 말한 것은 내가 바라는 새 나라의 용모의 일단을 그린 것이거니와 동포 여러분! 이러한 나라가 될진대 얼마나 좋겠는가. 우리네 자손을 이러한 나라에 남기고 가면 얼마나 만족하겠는가. 공자께서도 우리 민족이 사는 데 오고 싶다고 하였으며 우리 민족을 인(仁)을 좋아하는 민족이라 하였으니, 옛날에도 그러하였거니와 앞으로도 세계 인류가 모두 우리 민족의 문화를 이렇게 사모하도록 하지 아니하려는가. 나는 우리의 힘으로, 특히 교육의 힘으로 반드시 이 일이 이루어질 것을 믿는다. 우리나라의 젊은 남녀가 다 이 마음을 가질진대 아니 이루어지고 어찌하랴.

 

 

중용에서도 강조하여 마지않은 것이 첫째, 天命之謂性(천명지위성) 하늘의 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인간의 性이고 각자의 특성과 개성이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되고, 率性之謂道(솔성지위도) 이것을 다듬고 갈고 이끌어나가는 것이 道고, 脩道之謂敎 (수도지위교) 이를 위해서 가르치고, 보듬고, 다듬어나가는 것이 敎다. 하여 백년지계는 교육에 있다고 하였다. 전교조에게 우리 학생들의 교육을 다 맡겨놓고 방치한 우리가 지금 죗값을 치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지금이라도 분발하여 지도층에 있는 분들은 모두 합심 노력하여 백범이 강조하고 섭리가 명하는 이 나라의 모습을 그려가면서 깊은 반성과 방향타를 재조정하는데 전심 노력해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다시 한 번 통절하게 생각해 본다. 많은 분들의 참여 노력을 촉구해 본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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