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천 복원의 대모(代母)(박경리 84)

 

    박경리가 세상을 떠난(2008) 뒤로 내가 생전의 거처를 다시 보게 된 것은 2020년 여름날이었다. 토지문화관을 지었던 한국토지공사의 후신 LH 공사가 건물 보수공사를 착수하겠다고 약정하던 자리였는데 이어 관계자들에 대한 접대로 작가의 개인 공간 공개가 있었던 것.

    문득 거처 한쪽에 놓인 벽난로 쪽에서 낯익은 고양이가 나타났다. 그 당장에 나는 당신 사랑의 작은 분신을 만났다는 느낌이 확 들었다. 외손주 김세희 토지문화관 관장 말로 그 사이 작가가 피붙이처럼 사랑했던 고양이의 핏줄이 줄곧 이어져 예대로 살고 있다했다.

    환경주의 가운데서도 생명중심주의(biocentrism)쪽인 박경리는 고양이 사랑이 유별났다. 전 통영시장 진의장(1945- )은 큰 누님이 작가의 진주고녀 직계 선배였던 인연도 보태져 자신을 육친의 정으로 대해줌을 기화로 이른바 고양이 시비는 작가를 즐겁게 해줄 화두라고 줄곧 믿어왔다(바다의 땅, 멈추지않는 나의 꿈, 2014, 155).

선생님, 고양이보다 개가 낫지요?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세요. 고양이는 어림도 없습니다.” 늘 하는 시비지만 내가 먼저 선제공격을 날린다. “고양이는 개보다 더 깊이가 있어요. 개처럼 표현은 안하지만 개보다 사람 알아보는 데는 더 깊이가 있어요.”

    개도 불성(佛性)이 있다던 당나라 조주(趙州) 선사의 설법도 좋아했을 생명중심주의였고, 큰 나무에도 치성을 드리던 샤마니즘이었다. 이만한 근본주의자가 청계천 복원에 앞장섰음은 목구멍이 포도청인 현실을 감안해서 후손들도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의 환경은 적어도 지켜줘야 한다는 환경경제조화주의, 다른 말로 지속가능발전(ESSD: Environmentally Sound and Sustained Development)을 현창하려던 몸짓이었다.

귀가 솔깃했다

    청계천 복원의 가능성에 대해 박경리가 들은 것은 1991년 가을 한국문학의 이해를 강의했던 인연으로 이후 연세대 (원주)매지캠퍼스를 간헐적이나마 출입했던 시기였다. 복개되어 도심 관통의 고가도로가 되고만 서울 청계천의 복원이 기술적으로 가능하다는 노수홍(1953- ) 연세대 환경공학부 교수의 말이 솔깃했다.

    이 말의 공론화에 박경리가 앞장섰다. 1997년 가을이었다. “뜻있는 사람들이 일을 하면서 나보고 도와 달라하니까 나선 거예요.” 이 말을 앞세우며 그가 설립한 토지문화재단이 원주캠퍼스 환경과학기술연구소와 함께 심포지움을 세 차례나 열었다.

    ‘청계천 되살리기이름의 1회 청계천 살리기 심포지엄’(토지문화관, 200091-2), 2회 심포지엄(연세대 신촌캠퍼스, 2001427), 3회 심포지움(토지문화관, 2002517-18)이었다. 이들 토론회에 노 교수에게 진작 아이디어를 던졌던 원주캠퍼스의 한국사 전공 이희덕(1930- ) 교수를 비롯한 관심 교수는 물론 2002년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한 후보(이명박)의 캠프 인사도 참석했다.

    제 3회 모임의 토론회에서 후자는 실행이 문제인데 그래서 시장 선거의 이슈가 되면 복원시기를 앞당길 수 있다.”는 발언도 했다. 복원이 실행되자면 적어도 10-20년 정도는 걸릴 일이라 추단(推斷)하던 박경리 주변의 살리기 모임에겐 폭탄 같던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청계천 복원문제가 서울시장선거에서 여야가 모두 내세우는 공약으로 부상했고, 언론도 여야 서울시장 후보들 복원잇단 공약, 구청장들도 덮개 뜯고 새 생명을이란 표제(表題) 기사(한겨레, 2002228)로 맞장구쳤다, 도시교통적으로 당초 남산1호 터널 개통과 함께 청계천 고가도로가 적잖이 서울 알짜배기 도심핵(都心核) 땅에 자리한 정부대기업 사무실산업에 대한 접근성을 높혔음이 그 정당성이었지만, 시대의 변화로 도시환경이 도시경제에 못지않게 중시되어야한다는 쪽으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고조되던 차였다.

    긴 말을 줄이면 청계천복원사업은 짧은 시간에 실현되었다. 200371일 착공하여 완공에 23개월이 걸렸다. 복원 구간은 중구 태평로에서 동대문을 거쳐 성동구 신답철교까지 5.8km. 청계천이 우기 때에만 물이 흐르는 건천이므로, 친수 생태환경 조성을 위해 유지용수를 공급해서 평균 40cm정도의 수심으로 물이 흐르게 하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

    조선 전기 인공하천인 개천(開川)으로 꾸며진 이래 서울의 역사와 함께였던 청계천은 일제시기이래 생활하수구로 변모했고, 1960년대 위생문제·도로확충·도시기반시설 정비 차원에서 이를 복개하면서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졌다. 해서 청계천 복원은 단순한 하천복원 수준이 아니라, 역사와 문화의 복원이자 생명 복원 사업으로 치부되었다. 과연 복원사업이 성공하자 2005101일 개장 뒤 한 달간 무려 627만 명이 청계천을 다녀갈 정도였다. 뿐 아니라 청계천 복원이 선행지표가 되어 일파만파로 전국 도시 곳곳 하천이 복원되고 정비되게 만들었다.

청계천도 흐르고 사람 인연도 흐르고

    당신이 간구하던 환경복원의 성공에 더해 우연찮게 옛 인연의 사람과 마주친 것도 고마운 일이었다. 3회 심포지움에 와서 복원사업의 조기 실현가능을 말했던 이는 조광권(趙匡權, 1947- )으로 정말 오랜만의 만남이었다. 청계천 복원 사업 입안 단계부터 참여해 청계천복원 시민위원회 상임 부위원장으로 활동했고, 그 경험을 담아 책도 냈던 이였다(청계천에서 역사와 정치를 본다, 여성신문사, 2005), 구청장은 물론 본청에서 국장 자리도 지내는 사이, 세계적으로 평가받는 교통카드를 서울시민의 삶에 도입시킨 장본인이라 했다.

    재회(再會)란 당신 등단의 다리였던 월간현대문학초대 주간 조연현(趙演鉉, 1920-81) 문학평론가 아들과의 만남이란 말이었다. 조 씨 일가와 오간 개인적인 인연을 나에게 직접 말해준 바도 그랬지만, 청계천 복원 책 치사를 적었던 작가 마음씀씀이는 무척 따뜻했다. “적어보아도 발문은 퍽 흡족하게 됐다는 말도 덧붙였다.

조연현씨 아들이 서울시 구청장도 지낸 인물인데 조순 시장 시절에 일했다. 김영삼 정부 들어 휘두른 정치적 보복에 함께 휘말려 감옥에 갔다. 그 어머니가 찾아와서 탄원서를 적어 달라 해서 적어준 적이 있다. 이번에 청계천 책에 발문을 적게 된 것은 그런 개인적 인연 때문이다. 어머니는 진주고녀 선배인데 옛날부터 알았고, 조연현씨의 공로는 앞으로 재평가될 것이다. 김동리, 조연현은 우리 현대문학을 일군 어른들이 아닌가.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계산된 결과가 있고 계산과는 무관한 결과가 있다. (중략) 청계천 복원은 계산과 무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애초 청계천 살리기를 열망한 학자들이 토지문화관에 모여 세미나를 개최했을 때만 하더라도 실현에 대한 확신 같은 것은 없었다. 십 년 후에나 혹은 이십년 후에는 가능할지 모른다는 막연한 희망이 있었을 뿐, 그랬는데 뜻밖에 그 일의 실현을 보게 된 것이다. 이러한 과정에서 내가 다소 관련이 있었던 탓으로 처음 이 같은 추천사를 쓰게 되었지만 이유는 그것만이 아니다. 오십년 가까운 아득한 옛날의 얘기, 어느 봄날이던가, 소풍 철이었던 것 같다.

란도셀? 아니 륙색을 짊어진 아이가 정릉 우리 집에 찾아왔다. 못생긴 얼굴에, 유별나게 눈이 큰 소년이었다. 조연현 선생님의 아드님이었던 것이다. 그 무렵 사모님이 내 선배언니였기에 더러 그 댁을 방문하게 되었고 그 아이를 보기도 했으며 아버지 서재의 많은 책을 모조리 독파했다는 얘기도 들었다. 바보로 보일만큼 너무나 순수하여 나는 그 아이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만 같았다. 그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조광권이다.

참 많은 세월이 흘렀다. 청계천 복원에 관한 세 번째 세미나가 열렸을 때 못생기지도 않았고 아버지와는 달리 훤칠한 키의 오십을 훨씬 넘긴 조광권씨를 토지문화관 회의실에서 만났을 때 나는 조연현 선생님에 대한 깊은 존경심과 언니에 대한 친애의 정 때문에 가슴이 뭉클했다.

복원이냐 개발이냐, 갈등도 심했지만 우리 강토의 핏줄인 하천과 귀중한 문화유산인 수표교 광교가 땅속에 묻혀 신음하다가 햇빛을 보게 된 것은 너무나 반가운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비단 서울에만 활기를 불어넣는데 그치지 않고 우리 국토 전반에 걸쳐 신선한 강물과 숲과 새 생명을 찾는 신호탄이 되고 상징이 될 것이다.

오늘 자유체제인 하늘 아래서 청계천에 대한 영조(英祖)를 생각해본다. 청계천의 공사와 위민(爲民)이라는 두 잣대 중심에서 십년 넘게 영조는 고민을 했다 하는데 어떠한 체제이건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은 기고만장이 아닌 노심초사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스레 깊이깊이 생각해본다. 2005228일 박경리.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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