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위의 스승 또는 사숙(박경리 81)

 

   거듭 말하지만 소설가 박경리는 나에게 길 위의 스승이었다. “사라지는 말로 하자면 작가를 사숙(私淑)’의 대상으로 삼았음이었다(유종호, “사라지는 말들 15말과 사회사--,”현대문학, 2021년 3, 152-4), 사전에 이르길 사숙이란 존경하는 사람에게 직접 가르침을 받을 수는 없으나 사람의 도나 학문을 본으로 삼고 배움이라 했다.

토지작가도 그렇게 만난 이였다만남 인연의 고리는 당신 소설에 대한 독후감을 지성을 다해 적어 보여드렸음이 계기였다내가 1979년 가을에 처음 읽었던 박경리의 작품은 그때 3부까지 나왔던 대하소설토지였다소설을 잡자마자 재미와 감동으로 세 번 연거푸 읽었다는 이야기는 진작 말했다이어서김약국의 딸들을 만났다.

큰 사람의 후광효과

    이후 대체로 봄가을로 원주 나들이를 했고치과를 찾는 등의 볼 일로 서울에 머물 적엔 당신이 주로 묵던 소공동 롯테호텔 인근에서 여러 차례 어울렸다그 시절서울 강남에 살았던 나는 압구정동의 소문난 초밥집으로 모셔서 점심 대접을 한 적이 한번 있었다나중에 초밥집 주인이 나에게 당신 외동딸 결혼식 주례를 청해왔다그간의 안면을 봐서라도 내가 마다 할 리 없었던 경사 참례(參禮)인데이 경우도 말하자면 길 위의 주례였다따로 묻진 않았지만짐작컨대 서울대 교수였던 점이 프리미엄으로 작용했겠고통영 출신 대작가에게 감칠맛 나는 생선 요리를 대접하려했던 마음 씀씀이를 아마도 내 사람됨의 인증(認證)으로 보지 않았을까.

    정작 작가와 왕래한다는 사실을 눈여겨본 이는 이전에 따로 있었다. 박경리 소설전집 출간을 진행해오던 지식산업사가 작가의 산문집원주통신(1985)도 펴냈을 적이었다인문학 쪽특히 한국사 관련 책 출간에 관심이 많았던 출판사는 작가가 신문 지면에 원주생활에 대해 적었던 단신(短信)들을 모았다산문은 소설 집필에 전력투구하는 사이로 신상을 직설어법으로 말한 것이어서 애독자들의 호응이 높았다이를 고비로 작가의 산문집 출간은 “Q씨에게” 시리즈에 더해 원주통신” 계열이 가세하게 되었다.

    사족이지만 책 표지도 상당히 볼만했다. ‘통신이란 낱말이 들어간 책 제목에 어울리게 꾸몄다옛 선비들이 그랬듯 종서(縱書)하기 좋도록 세로로 일정하게 괘선이 그어진 괘지(罫紙모양의 바탕에 저자 이름과 책 제목을 박아 넣은 표지였다북디자인 1세대라 높임을 받던 정병규(鄭丙圭, 1946- )의 이력에 값할 만한 작품이었다(정병규 북디자인안그라픽스, 1996).

    여기에 고무되었음인지 대학에서 역사학을 공부했던 출판사 사장은 그런 유형의 산문집을 시리즈로 계속 펴낼 구상을 했고후보 필자 한 사람으로 나도 끼어주었다그 사이 조선일보의 외부기고가 칼럼인 아침논단에 몇 꼭지 내가 기고했던 것을 곁눈질은 했겠지만분명코 그 문하로 출입한다는 점에 착안한 작가 박경리에게서 입은 후광효과(halo effect)이기도 했다.

   내가 즐겨 적어왔던 글은 아카데믹 에세이라 말하는 학술형 수필이었다내 교학(敎學)인 도시이론을 우리 현실문제에 결부시키는 글을 적어왔던 것해도 내 필력 탓이겠는데 그런 글 모음집(하면 안된다 --도시문화를 보는 시선--, 1986)에 대한 독자들의 호응은 정말 별로였다초판 인쇄 겨우 1천부 정도였을까. 출판사에 미안한 마음에서 혹시 보통사람들을 위한 미술이해감상용 산문집은 다르지 않을까 싶어 미술가 가운데 드물게 맛깔나게 산문도 적어온 조각가 최종태(崔鍾泰, 1932- )를 소개했다(예술가와 역사의식, 1986).

    박경리와의 왕래가 비교적 정례화되고 있을 즈음 작가가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한 출판사가 명망 작가들의 단편선을 펴내는데 거기에 작가의 생활상에 대한 글도 필요하다했으니 그걸 한 꼭지 적어 달라했다그런 생광이 있을 수 없었다(김형국, “소설 농사와 밭농사가 합일하는 문화 현상,”우리 시대의 한국 문학계몽사, 1986, 70-73).

내 글도 한번 봐주십사

    그럴 즈음 1988년 9월 초순이었다타계한지 십 수 년이 지난 시점에서 우리 집안에서 선친을 기리는 비석을 당신이 직접 마련했던 묘소에 세우자고 뜻을 모았다한데 비문을 적을만한 명망 문장가는 어디서 찾을 것인가난감했다불연선친의 파란만장 삶은 가족만큼이나 잘 아는 경우가 없지 싶었고그렇다면 당신에게서 무거운 은혜를 입었던 자식들이 적는 게 도리라 싶었다역량 고하간에 글쓰기를 직업으로 삼아온 내가 적을 수밖에 없었다전전긍긍 겨우 초안을 만들었는데 아무래도 거기에 글 향기를 보태자면 글 잘 아는 선필(善筆)에게서 윤문(潤文)을 받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났다.

    되든 안 되든 원주로 부탁이나 한번 해보자 마음을 먹었다선친의 인생사는 재물이 깨어지고 사람들과도 깨어진다.”는 이른바 천파(天破)’ 운수가 첩첩이었던당사주(唐四柱팔자대로 비운의 연속 상영이었다소생 둘을 앞세웠음은 말할 것 없고 세 번이나 상처(喪妻)를 했던 가혹한 운명을 이겨내야 했다초취(初娶)는 신행 전에재취는 딸 둘삼취는 아들 둘 낳고 모두 20대를 넘기지 못했다. 4취인 내 생모가 겨우 아버지의 만년까지를 지켰지만소생은 전부 대학교육을 시켜냈던 이승의 당신 가시밭길을 어찌 위로해야 좋단 말이었던가.

    천파 팔자라면 박경리도 더했으면 더 했지 못지않았다그 슬픔그 비극을 딛고 그걸 승화해서 문학의 높은 경지로 나아갔던 이가 또 다른 천파의 주인공을 위해 비문을 다듬어 준다면 망자에 대한 위로가 그만할 수가 없겠다 싶었다.

    반응이 한참 오지 않았다대하소설 집필 도중에 가장 어려움이 많았던 4부를 기어코 완성한다고 집필에 여념이 없었던 작가에게 공연한 부탁을 드렸다고 자괴감이 가득했던 어느 날 당신이 문구를 다듬은 비문이 문득 당도했다그 기쁨을 어찌 필설로 다할 것이었던가.

도판비문 초안에 가필한 박경리의 윤문(1988년 9월 9일)

 

 

 

 

 김형국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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