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족 미감에 대한 경의(박경리 76)

 

    원주 단구동 작가의 살림은 조선시대 농사를 지어야 입에 풀칠할 수 있었던 검박(儉朴)한 선비 집 형편 같았다. 잔디가 깔림직한 널따란 마당이 채마 밭으로 오히려 넉넉했고 한쪽의 슬라브 가옥은 대청을 중심으로 서재, 부엌, 안방 등이 내부를 구성하고 있었다.

    내객을 맞는 방이 사랑방인 셈인데 굳이 장식이라면 작은 벽면은 당신의 지극한 사랑인 손주 원보가 그린 <새장>과 재불 화가 방혜자(方惠子, 1937- )<추상화>, 그리고 널따란 벽면엔 아기포대기가 벽장식 카펫처럼 걸려 있었다. 정릉시절에 원보를 업고 찍혔던 사진이 보여주듯 포대기는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영아(嬰兒) 양육의 필수품으로 갓난애를 둘러맨 채로 여인들은 살림을 살았다.

    이제 이런 쓰임새마저 사라진 포대기이지만 벽장식으론 훌륭했다. 일명 처네인 통영 포대기는 여느 것과 달랐다. 통영 친지가 통영의 자랑 바느질 누비로 만들었단다. 검은 색 주조(主調) 베 귀퉁이에 붉고 푸른 색 포목 조각으로 잇댄 것이었다(도판 참조). 한눈에 아름답다는 인상이었고, 이 이상으로 필시 작가는 한국 사람의 타고난 색감을 증거 해줄 물증으로 삼고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비애 아닌 비상인 것을

    『토지집필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의 작가 머리 속은 식민시절에 당했던 굴욕, 수모를 수 없이 반추하면서 그 반박의 논리를 세우고, 펴고, 다지기에도 골몰했다. 백의민족 열등함의 주장 논거로 삼았던 흰옷 위주 복식을 깔보는 트집에 대한 반박도 그 하나였다. 식민 현학(衒學)들은 조선인이 물감 만들 능력이 없었던 데다 당파싸움으로 문란해진 정치에 시달린 나머지 노상 흰색 상복(喪服)으로 생활할 수밖에 없었다고 싸잡았다.

    6.25전쟁 때 월남해서 개성박물관장 고유섭의 권유로 정착했던 경주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마침내 최후의 신라인이란 애칭을 얻었던 고청 윤경렬(孤靑 尹京烈, 1916-99)도 작가와 한 가락이었다(신라의 아름다움, 동국출판사. 1985). 고래(古来)로 흰색 옷을 즐겼던 백의민족임을 장차 자랑하기를 아이들에게 즐겨 입히던 것이 색동저고리이고 색동의 갖가지 원색은 무지개 색에서 나왔는데, 이 무지개 색들을 한데 엮으면 흰색이 된다. 흰색이야말로 즐거움이 약동하는 밝은 색이라 했다.

    흰색이 결코 슬픔의 색이 아님은 개화 초기 이 땅을 다녀갔던 러시아인 철도기사의 통찰이기도 했다. 흰옷을 입고 농사짓던 한국인의 모습은 백조를 닮은 듯 품위와 격조가 엿보인다고 적었다(김학수 역,조선, 1898N.G. Garin의 조선풍물여행기, 단국대, 1981). 농사짓던 노예 곧 농노(農奴)만 보아왔던 눈엔 그렇게 보이고도 남았을 것이었다.

    비상의 멋에 대한 박경리의 소론은 한글학회사건으로 일제 때 감옥에도 갔던 국문학자 이희승(李熙昇, 1897-1989)과도 통해 있었다(“,”벙어리 냉가슴, 일조각, 1954, 90-92). 한국예술의 특징을 멋이라 전제하곤 멋의 예증(例證)으로 한복의 긴 고름이나, 버선코와 신코의 뾰족함, 저고리 회장(回裝: 저고리 등의 깃·끝동·겨드랑이 등에 다른 빛깔로 색을 맞춘 장식부분), 섶귀(두루마기나 저고리 따위의 옷섶의 끝)의 날카로움, 그리고 한국 가옥의 추녀 곡선을 들었다. 그는 멋이야 말로 사물의 실용성을 떠나, 통일을 깨고 균제(均齊)를 벗어나는 한국미의 특색이라고 보았다.

    박경리의 미학도 선의 아름다움에 대한 착안은 야냐기와 다르지 않았음은 앞서 말했다. 구체적으로 선의 아름다움을 특히 도자기에서 찾았다. 우리 조형미술사에서 불가사의한 대목은 사회적으로 천대받으면서도 청자나 백자 같은 놀라운 미술작품이 제작되었다는 사실이었다. 그런데 전래로 한민족의 정서가 기물(器物)은 아래에서 올려다보며 숭상했지만, 안타깝게도 그걸 만든 사람에 대해선 무심했다. 무심했던 정도가 아니라 천대했고, 그만큼 도자 제작이 고된 생업이었던 탓에 자제들이 제발 그 일을 계속하지 말았으면 하고 바랬던 것이 전통시대 우리 도공들이었다. 이에 조선조 중종 38(1543)에 도공 아들이 아버지 직업을 물려받을 것을 명하는 법률을 제정하기에 이르렀다.

    그렇게 봉건사회에서 도공은 세습이고 타고난 재능에 상관없이 업으로 종사해야 했던 천업(賤業)이었던지라 당연히 무식할 밖에 없었다. 그런데 어찌 그런 치졸한 사고력으로 격조 높은 자기를 어떻게 만들 수 있었을까.

    그렇게 이어져 오는 사이에 변종이 생겼다는 게 작가의 추론이었다. 천재라 할 수 있는 인자(因子)가 어느 부류에서든 소수는 있게 마련이기 때문이라 했다.

선이 완벽하다는 것은 살아 있다, 즉 생명이 있다는 얘깁니다. 청자나 백자 특히 백자 항아리는 빛깔과 선의 융합에서 생동하기도 하고 정밀(靜謐)을 느끼기도 하는데 어떤 경우든 살아있다는 것, 생명력 그것을 자로 재어보고 가루를 내어 분석하고 해보았자, 사람을 놓고도 해부해보아도 사람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결론과 마찬가지, 결국 생명은 무엇인지 모른다, 아무튼 그런 창조의 능력은 조물주에 접근하고자 하는 강한 의지로 보아야겠습니다.

구름을 보며 생각하며

    어떤 계기로 살아있는 선이 나왔을까는 미학자마다 궁금했다. 그들의 극일부가 천재였다는 점은 전제했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공부 끝이었나에 대한 추론은, “이조 사람들이 그들의 백자에다 하늘을 담아 배우듯이란 서정주(徐廷柱)의 서사시(종천순일파?」, 1972) 시구에서 유사 시사를 잠시 엿본 적이 있긴 했지만, 내가 읽은 바로 박경리가 전무후무하다 싶었다. 작가의 빼어난 상상력만이 펼 수 있는 가설형 추정이었다.

수요자도 적었겠지만 한가한 세월 속에 구름을 바라보며 기분에 따라 일을 했을 그 시절의 장인바치들, 치밀해지고 규격화되고 빨라진 공정에 미감을 잃어가고 있는 요즘에 살고 있는 예술가에 비해 하찮은 그 시절의 장이바치가 훨씬 행복한 로맨티스트였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그 물건들이 아름다우면서도 너그럽고 바보같이 보인다(“항아리,” Q씨에게, 1981, 229).

미의 비밀은 대상 속에 있는 것이기 때문에, 이들의 대상은 무엇이었을까. 자연이었을 거예요. , 자연 말입니다. 그들이야 말로 창조의 순수한 원형, 가장 하나님을 가까이 닮으려는 사람들이 아니었던가 싶네요. 이기(利己)와 교활과 합리화와 한계와 그리고 모호한 결론, 그런 속성을 지닌 지식에 오염되지 않았고, 인가(人家) 먼 분원(分院)에서 떠내려가는 구름 보며 산을 보며 자연의 이치를 생각하며 그래서 어느 순간 문득문득 마음에 잡히는 가장 완벽한 선이며 편안한 공간이며 그런 것을 흙으로 빚어보는 거지요. 네 이들은 하나님이 만든 자연 속에서 미의 비밀을 찾았을 거예요, 직감적인 선과 조형을 주저 없이 청량하게 이루어나갔을 거예요(일본산고, 마로니에북스, 2013, 116-7; 밑줄은 필자의 것; 각주 참조).

    박경리는 어디선가 소설가에게 글쓰기는 바다 물밑에서 왔다 갔다 하는, 고작 그림자 같은 물고기의 형상을 그리는 작업이라 적었다. 명품 도자의 선은 구름을 보면서 아름다운 선의 실마리인지 모티프인지를 찾았다는 그의 지적은 필시 당신도 구름에서 창작의 문장을 얻어냈다는 말이기도 했다(“항아리,”Q씨에게, 1981, 229).

   『토지의 장장 대하(大河)가 끝나는 마지막 문단의 끝 문장이 바로 그랬다. “푸른 하늘에는 실구름이 흐르고 있었다.”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각주:

영국을 중심으로 세계인이 참여하는 구름감상협회(Cloud Appreciation Society) 회원들은 하늘이 관심사다. “하루에 한 순간만이라도 머리를 구름 속에 두고 공상에 빠진다면 정신에도 좋고, 몸에도 좋고, 영혼에도 좋을 것이란 게 협회의 주장이었다. 작가 박경리가 대하소설의 맨 마지막에 적었던 실구름은 전문용어로 권운(卷雲 Cirrus)에 속한다. 권운엔 명주실구름, 갈퀴구름, 얽힌구름 등의 모양이 있다. “무언가를 닮은 구름들이 있다는 말이다. 고양이, , 돼지, 버팔로, , 코끼리, 순록이 있고, 사람을 닮은 구름이 있다. 공 던지기, 리본 체조 선수, 브레이크댄서 등도 가려낼 수 있다. 유명화가 가운데 구름을 그린 이로는 반 고흐, 르네 마가리트, 앙리 루소, 가쓰시카 호쿠사이 등이 있다(개빈 프레터파니,날마다 구름 한 점A Cloud A Day, 김정훈 옮김, 김영사, 2021).

 

도판: <통영 처네>, 길이 85 x 윗폭 133 x 아래폭 168cm.  

통영산 누비포대기는 처네라 불리며 전국적으로 쓰였다. 이른바 통영처네아기용품에는 거의 쓰지 않았던 검은 색을 이용한 것이 특징이라 했다. 뒤집어 사용할 수도 있다. 반대편은 검은 색이 아니라 붉은 색이다. 작가의 거처에 걸렸던 누비포대기는 도판의 것 그대로이고, 지금도 통영의 유명 누비집에서 제작판매히고 있다. 갓 결혼한 젊은 가정에 줄만한 마땅한 선물이 누비포대기였지만, 지금은 아기를 업어 키우는 방식이 사라져 버렸으니 벽장식이 고작인 처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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