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문화대비론(박경리 75)

 

    일본의 국가적 부정직성을 말하고 나면 곧이어 일본문화 인식과 이해는 딜레마를 만난다. “일본사람은 (개인적으로) 정직하다는 게 일제 강점기를 체험한 식자 선배들의 한결같은 지적이었기 때문이었다(김동길, “민주주의 ABC,” 프리덤워치블로그, 2013. 11.18).

부끄럽지만 나는 일본이 우리보다 한 발 앞서가는 나라라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일본인을 대합니다. 그 까닭은 일본 사람이 한국 사람보다 훨씬 정직한 국민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일본인이 무엇으로 우리보다 앞섰습니까?

엄마들이 아이들에게 공부 잘해라” “1등 해야 한다라고 가르치기 전에, “거짓말 하는 안 된다라고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 사실 때문에 우리는 일본보다 뒤떨어진 나라가 된 것 아닙니까.

    일본인이 대체로 정직의 품성을 갖고 있다는 인식은 기실 박경리의 생각이기도 했다. 자신은 반일(反日)주의자라고 강하게 전제하고서도 ()일본인은 아닌, 단지 반일본국가주의자일 뿐임을 강조해왔음도 그 일환이었다. 연장으로 그들 일본인도 바로 그 국가체제의 희생자였다는 게 박경리의 확신이었다

괴기문화의 나라

    천황무류(天皇無謬) 곧 천황은 잘못이 있을 수 없다는 믿음의 횡행은 지금까지 알려진 일본국민들의 정직이 소승(小乘)적 정직일 뿐이란 말이 아닌가. 동북아 역사 가운데서 나의 일본읽기에서 만났던 특이점도 무엇보다 자신들을 태평양전쟁의 가해자가 아니라 오히려 피해자로 여기는 국가적 부정직이었다. 피폭의 참상을 재구성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기념관의 전시 구성에서 그들이 피해자인체 하는 몸짓이 깔려 있다는 느낌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에 영미(英美) 폭격기들이, 1945311일에 있었던 미군의 도쿄 대공습처럼, 1945213일부터 연 3일을 동부 독일 드레스덴을 맹폭했다. 그후 융단폭격이 가져다준 참상이 속속 드러나자, 한참 나중이지만, 나치추종 세력들이 그걸 항의하는 데모를 시도했다. 그때 독일 총리 슈뢰더(Gerhard Schrőder, 1944- )가 나서서 민간인 피해도 엄청났다고 해서 그게 당초의 가해 곧 전쟁도발의 원인행위를 정당화할 수는 없다고 일침 했던 경우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세계의 흐름 속에서 특히 동북아의 정세를 깊이 통찰했던 한 시대의 현인(賢人)도 경계의 말을 주저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이광요(李光耀, 1923-2015) 수상이 바로 그이. “일본이 전후에 주변국가에게 사과발언을 계속하면서도 야스쿠니신사를 계속 찾는 것을 보면 아직도 제국주의의 연장에 있다”(Lee Kuan Yew, One Man’s View of the World, Straits Times Press, 2013, 135).

    1997513, 서울에서 정주영 일대기의 중국어판 출판기념회에 참석해주었던 이들에 대한 뒤풀이 대접 자리에서 박경리는 일본역사 내력의 일단이라며 한 마디 했다. “일본사람이 한반도 땅에 진출하려는 기도는 필시 그들이 옛적에 한반도에서 건너간 반체제인사였기 때문일 것이다. 일본고사기에 그걸 암시하는 대목이 나온다. 장정 7백인에 여자 하나였다던데, 일본으로는 힘깨나 쓰는 장정이니 도망갈 수 있었을 것이고 그만큼 여자가 귀했다는 말이다. 일본문화가 그로테스크한 것은 그런 배경도 작용했을 것이라 했다.

    각론으로 일본문화가 에로그로넌센스의 극치라고 작가는 비판했다. 이 속성은 1930년대에 자본주의 사회가 부쩍 소비문화에 빠져 들면서 생겨났던 사회증후이긴 해도 일본이 유독 체질적으로 그러했단다. 에로(eroticism)는 말 그대로 색정(色情)에 대한 기호 내지 탐닉인데 심지어 백화점 여점원 뽑기에도 용모단정이 들어가는 식이었고, 그로(테스크, grotesque)는 괴기한 것에 대한 편향으로 이를테면 무사도의 실현 하나라며 셋푸쿠(切腹), 하라키리(腹切)라고도 하는 할복자살을 미화해 왔다. 그리고 넌센스(nonsense)는 '무의미하다'는 뜻인데 그냥 무의미가 아니라 엉터리가 되어서, 어처구니없어서, 그럴 리가 없어서 우습다는 것으로 우리 공영방송에서 개그프로의 선호도 그런 경우라 했다(소래섭,에로 그로 넌센스, 살림, 2005).

    이들 개념을 동원한 작가의 일본비판은 간명직절했다. 35만 명 중국인의 살해, 8만 명 이상 여성의 강간이 자행되었던 남경(南京)학살, 백주의 난행은 일본군의 전략이지만 뒤집어보면 그로테스크와 에로티시즘의 여실한 참극, 절망 없이 그 짓을 했을까.”하고 비판했다. 이 같은 일본 문화역사성에 주목해서 일본인과 한국인 또는 칼과 붓이란 제목으로 펴낸 일본통 한국 수학자문명학자가 우리 식자들의 주의를 크게 환기시킨 적도 있었다(김용운, 일본인과 한국인칼과 붓, 뿌리깊은나무, 1981).

죽음의 문화가 말이 되나

    연장으로 결론 같은 박경리 작가의 일본체제비판은 평명(平明)했다. “평이하면서 명백했다는 뜻이었다.

과연 칼의 문화가 있을 수 있느냐는 문제입니다. 죽음의 미화에 대해서도 그렇습니다. 배를 가르고 죽은 그야말로 몬도카네식의 처참한 셋푸쿠(切腹)가 진정 아름다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자살에도 여러 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필이면 생선 배 가르듯 내장이 드러나는 그 같은 것을 미화하고 의식화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문화는 삶을 위한 틀이며 본이지 결코 죽음이나 칼을 위한 것은 아닙니다. 분명히 본질적으로 칼의 문화, 죽음을 미화하는 문화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믿고 있는지 아니면 방편상 강변하고 있는지,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아마 중일전쟁이 시작되었을 무렵이지 싶은데.... 소위 육군 팸플릿에 실린 글의 첫머리가 전쟁은 창조의 아버지요 문화의 어머니라는 문구였습니다(박경리,일본산고, 2013, 89-109).

    여기에 견주어 우리 문화예술의 특장은 무어라 말할 수 있을까도 박경리의 오랜 관심이었다. 문화예술방식에 대한 궁구를 미학이라 한다면 우리 역사에서 미학이란 말을 따로 특별히 내세워서 주장했던 바는 없었다. 이 틈새에서 한반도가 일제 치하에 들 즈음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 1889-1961)가 말한 바는 망국을 안타까워했던 우리 식자들로 부터 큰 호응을 받았음을 모르지 않았다. “한국미술이 중국미술의 사대주의적 모방이라 했던 식민치하 관()학자들의 입장과도 달랐던 데다 우선 말하기 어려운 미학의 정체를 한중일 비교론으로 따졌기 때문이었다”(재인용: 조요한,한국미의 조명, 열화당, 1999, 35-36).

대륙의 산물인 중국의 예술은 의지(意志)의 예술이고, 섬나라의 산물인 일본의 예술은 정취(情趣)의 예술이며, 반도의 산물인 한국의 예술은 비애(悲哀)의 예술이라 규정했다. 중국예술은 장대한 형()으로 나타났고, 일본예술은 아름다운 색()으로 나타났고, 한국의 예술은 가느다란 선()으로 표현되었다.

    야나기의 소론에 대해 박경리는 반신반의였다. 비록 한국의 미술이 선에 장함이 있다는 입장은 공감해도 한국미술을 통째로 슬픔이요 비애의 아름다움이란 개념 정의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죽음을 미화하는 문화발상법의 연장이 아닌가, 의심했던 것인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 점에서 박경리의 미학이론 정립은 한편에서 비비(非非, falsification)’ 그른 것은 그른 것임을 밝히는 인식도 개입했을 것이었다.

    한마디로 우리의 아름다움을 비애라는 말은 천부당만부당하다 했다. 정반대로 비상(飛翔)의 의욕수가 넘친다는 취지로 특히토지 4에다 길게 적었다(토지 41, 통권 13, 2002, 198-204쪽 발췌).

건물의 형태도 그런 것 같습니다. 일본의 성은 석축을 높이 쌓아올려 그 위에다 앉히거든요. 사원 같은 것도 지붕에서 약간의 곡선을 볼 수 있는데 대단히 둔중한 느낌이며 일반건물에 있어서 지붕의 구배(勾配)는 모두 직선입니다. 촌락의 농가의 갈대지붕도 역시 구배는 직선이지요.

조선의 건축, 지붕의 경우를 보면 하늘을 향하여 치올라간 처마나 용의 허리 같은 용마름, 그 곡선은 참으로 완벽하게 공간에 존재하지요. 시골의 초가는 반대로 굽습니다. 땅을 향해 오무려져 있지요. 기와집 지붕에서 비상하려는 새를 혹은 비룡을 연상한다면 초가는 땅에 뿌리를 박은 식물을 연상하게 되지요,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 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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