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가류 명상법 서설

 

누구나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사물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마음이 명경지수(明鏡止水)가 되어야 한다고 일컬어지고 있다. 자의적인 뜻은 맑은 거울과 같이, 또 고여 있는 잔잔한 물과 같이 고요하고 맑은 마음을 비유한 말이다.

공자의 제자인 상계(相季)가 형벌로 다리가 잘린 왕태(王駘)에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까닭을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사람들은 흐르는 물에는 자기의 얼굴을 비춰 볼 수 없고 고요한 물에만 비춰 본다. 오직 멈추어 있는 고요한 물만이 (제 모습을 비춰 보려는 사람들을) 멈추게 할 수 있으니, 모두가 멈춘다.(仲尼曰, 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 能止, 衆止.)”」

왕태의 인품이 고여 있는 물과 같이 잔잔하고 맑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라고 한다.

즉, 마음이 명경지수와 같아야 비로소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있다. 이를 위한 방법으로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온 것이「명상」이다. 수도승들이 하는 일차적인 행동이 명상으로부터 비롯되고 또 수도원에서 오랜 기간 동안 수도생활을 하는 관계자들도 모두 기도를 통한 명상을 통해 사리판단을 하게 되고 사고의 수준을 높일 수 있게 된다.

또 불교에서는 동안거(冬安居)와 하안거(夏安居)를 통해 용맹 정진하면서 일차적으로 들끓어 오르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탐진치(貪瞋痴)로부터 이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명경지수의 마음을 얻기 위해 명상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다 훌륭하고 감동스러운 일들이고 속인들로서는 범접할 수 없는 경지로 느껴진다. 그러나 실생활을 통해서 그러한 높은 경지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차분한 마음, 흔들리지 않는 마음, 고요한 물과 같이 생각의 티끌을 가라앉힐 수 있는 실천적인 수단이 있다면 일반 속인들로써는 더할 수 없이 좋을 텐데 그 방법을 가르쳐주는 곳이 별로 없다. 그렇다고 입산수도할 형편도 아니고, 가부좌를 틀고 화두를 붙잡으며 시간을 보낼 형편도 안 되는 범속한 보통사람들로써는 답답한 마음을 금할 수 없다. 높은 경지의 명경지수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 상당한 수준의 명경지수의 경지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론이 있어서 그 사례를 인용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일천 년 이상 내려온 축원문(祝願文)에 해당하는 반야심경(般若心經)이 바로 그것이다. 한 시절 인연이 있어서 반야경을 조금 공부하게 되고 그 끝에 필경을 하는 것이 서예 훈련으로도 도움이 될 듯 하여 반야심경 270자를 사경하기 시작했다. 글씨체를 다루는 데 있어서 통상 얘기되는 것으로 왕희지체, 추사체, 석봉체 등 여러 가지가 있으나 그런 예(藝)의 경지에 들어가는 필력을 추구하는 것은 전문가들이 하도록 하고 우리 생활인들로써는 오히려 안중근의 글씨체나 박정희 대통령의 글씨체가 담백하면서도 글에 힘이 있어서 배우는 초심자로서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아침마다 일어나 세수하고, 서재가 있으면 더욱 좋고 서재가 없더라도 독립된 한 코너에 식탁을 놓으면 그것이 자기의 점유 공간이 될 수 있으니 그렇게 준비하고, 커피 한잔을 준비하여, 만약 술을 즐겨한다면 술 한두 방울을 넣으면 알코올 운치도 겹치게 되고 훨씬 아침이 새롭다. 한 잔 마시면서 생각을 가다듬고 화선지에 써 내려가면 좋을 듯하나 값이 비싸니 화선지까진 아니더라도 요즘 프린터 용지가 아주 고급지다. 일면만 쓰고 폐기하게 되는데 아깝기 짝이 없다. 지질도 아주 좋고 먹물이 번지지도 않는다. 서도의 훈련이 된 사람들은 일부러 먹을 갈아서 생각을 가다듬으면 더욱 좋겠으나 시간이 없다. 요즘 먹물도 아주 고급 먹물이 얼마든지 준비될 수 있어서 먹을 갈 필요 없이 찍어서 바로 사경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런 시간적인 여유가 없고 아직 훈련이 덜 되었으면 모나미 붓펜이 대단히 좋다. 마하반야 바라밀다 심경(摩訶般若波羅蜜多心經) 270자, 그것을 약칭할 때 반야심경 264자다. 심호흡을 하고 단정히 앉아서 모나미 붓펜으로 이 뜻을 헤아리면서 써 내려간다. 대략 한 시간 삼십 분 걸리고 붓으로 필경할 때는 두 시간 또는 두 시간 이십 분 정도가 걸린다. 그건 시간 날 때 하도록 하고 모나미 붓펜 필경으로 족하다. 써 내려가서 270자를 쓰면 정신이 집중되고 1년이면 365일 중 60일은 빠진다고 보고 300일만 잡더라도 6만 자 쓰기는 어렵지 않다. 그렇게 힘든 일도 아니다. 2년이면 12만 자를 쓸 수 있다. 실제로 해 보면 10만 자가 넘어가면 그 자체로 각이 서고 글자 획에 힘이 들고 하나의 틀이 형성된다.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니 함께 실천해 보길 추천해 마지않는다.

어느 날인가 평일처럼 아침에 반야심경을 써 내려갈 때에 색이 공과 다르지 않고(色不異空) 공이 색과 다르지 않으며(空不異色) 고로 색이 곧 공이요(色卽是空) 공이 곧 색이며(空卽是色) 인간의 실체인 오온(五蘊) 色受想行識이 그러하다는 구절을 써 내려갈 때 문득 눈의 어지러움을 느껴서 잠시 눈을 감고 있다가 다시 쓰려고 눈을 뜨니 희한하게도 270자 글자가 모두 지면에서 튀어나와 금빛 찬란하게 어우러지는데 자세히 보니 둥글게 원을 그리며 강강술래 춤의 형상이 이루어지고 있는 모양을 보게 되었다. 신기하고도 놀라서 자세히 보려는데 다시 어찔하고 어지러운 감이 있어서 눈을 감고 진정하여 일분여 경과 후 다시 눈을 뜨니 지면의 글자는 그대로 있고 주변 사위가 고요하기 이를 때 없다. 한참을 있다가 다시 써 내려갔으며 이러한 신비체험이 나 정도의 내공으로는 무슨 뜻인지 알 길이 없는 채로 세월이 흘렀다. 그러나 매일 아침 생각을 가다듬고 사경을 하는 습관은 조금도 변치 않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중요한 것은 반야심경을 써 내려갈 때에 <색불이공 공불이색(色不異空空不異色)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空卽是色) 수상행식 역부여시(受想行識亦復如是)> 구절에 들어갈 때쯤이면 자기도 모르게 마음이 더없이 가라앉고 명경지수의 심정이 되는 것을 체험할 수 있다. 신기한 것은 어려서부터 이 나이에 이르기까지 자질구레했던 일상사가 주로 후회되는 장면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아하. 그때는 이렇게 판단했어야 했을 것을 길을 잘못 선택했었구나’, ‘아하. 그때는 이런 생각을 가졌으면 차원을 높일 수 있었는데 생각과 판단과 길을 잘못 들었구나’ 하는 반성이 된다. 아직 내공이 약해서 전세(前世)의 기억까지는 헤아릴 수 없으나 현세(現世)의 살아온 행적들에서 시시콜콜 생각도 않던 것이 주마등처럼 피어오르고 말을 객관화시켜서 볼 수 있는 거울과 같은 역할이 된다. 감사하기 짝이 없다. 이것을 미루어보면서 여생을 어떻게 드라이브해 나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가다듬어 본다. 문득 깨면 어느덧 시간이 흐르고 나갈 시간이 돼서 서둘러 출근 준비를 하며 아침 일과를 마치게 된다. 어려운 과정도 아니니까 다른 좋은 방법이 있는 분의 권유와 소개도 들었으면 좋겠으나 내 실천적 경험으로는 반야심경 뜻을 헤아리며 270자를 모필로, 시간이 안되면 모나미 볼펜으로 아침마다 한 꼭지씩 쓰는 것을 권면해 마지않는다. 이것은 귀동냥이 아니라 실천적인 경험으로 말씀드리는 것이니 울림이 있길 바란다. 분명한 것은 정성을 들여서 쓰는 글씨가 10만 자를 넘어갈 때는 각이 서고 획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을 느끼고 깨닫게 된다. 추천해 마지않는다. 더 좋은 방법을 터득한 분들은 그 지혜를 나눠줬으면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명경지수의 뜻을 가진 많은 당로자들이 배출되길 기원드려본다.

 

여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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