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 저 생각 (73) 우도 26

 

    지난 회에서 <끝없는 이야기>가 길어져서 카네기 이야기를 다음으로 미루겠다고 약속을 했다. 약속을 했으니 지키는 것이 도리다. 그러다가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가 생각이 나서 그걸 먼저 적는다

    1959년 대학 2학년 때다. 2학년부터는 전공과목을 수강한다. 그래 형법총칙강의를 듣게 되었다. 강사는 노융희(盧隆熙, 1927-2017)씨였다. 30이 좀 넘은 젊은 강사였다. 젊은 강사라고 했으나, 그땐 내가 어렸기 때문인지 상당히 노숙해 보였다. 그런데 노 씨에게서는 한 학기 내내 배우지 않았다. 약 한 달쯤 강의를 들었다. 본래 황산덕(黃山德, 1917-1989)교수의 강의였는데, 무슨 사정으로 강의를 못하게 되어 노 씨가 대강을 했던 것이 아닌가 한다. 노 씨는 그 후 행정대학원교수가 되었고, 미국 피츠버그대학에 교환교수로 다녀온 후 환경학을 전공했다. 서울대학교 환경대학원 창립에 기여했고, 초대 원장을 지냈다. 그에게서 형법을 처음 배울 적에 들은 이야기다.

    단도 시게미쓰(團藤重光, 1913-2012)란 교토대학의 유명한 형법학교수가 있었다. 그는 1년에 몇 번 도쿄에 가곤 했다. 그에게 가까운 친구가 있어서 도쿄엘 가면 전보를 쳤다. 친구는 매번 역에 마중을 나왔고, 으레 담소를 나누면서 저녁을 같이 하고 헤어졌다고 한다. 한 번은 그 친구가 역에 마중을 나왔는데, 그날은 저녁을 같이 할 수가 없다고 하였다. 이유는 말하진 않았다. 묻지도 않았다. 그런 일이 없었는데 이상하다고만 생각하고 그냥 헤어졌다는 것이다. 그 다음이다. 단도 교수가 도쿄에 갔을 적에 그 친구가 마중을 나온 것은 물론이고, 저녁을 하면서 지난번에는 미안했다면서 그날 아침에 아들이 사고로 죽었기 때문에 저녁을 같이 못했다는 이야기를 하더란 것이다. 아들이 죽어 경황이 없었을 터인데도 마중은 나온 것이다. 노융희 씨는 단도 교수의 수필에서 읽었다고 했다.

    매번 그랬으니 습관으로 역에 나왔는지 모르나, 마음속으로 약속이라 생각하여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든다. 일본사람이 특별히 약속을 잘 지키는지는 알 수 없으나, 단도 교수도 그 친구의 일이 보통이 아닌 것으로 생각하여 수필로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개인 사이의 약속도 지켜야 한다. 공직에 출마하는 정치인의 공약(公約)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나 어찌된 영문인지 우리나라의 선거직출마자나 공직자들의 공약은 공약(空約)이 되는 경우가 많다. 많은 정도가 아니다. 슬픈 현상이다.

    우리의 본래 이야기로 돌아간다. 경쟁심을 자극하여 소기의 목표를 달성한 예를 들어본다. 찰스 슈왑(Charles M. Schwab, 1962-1939)은 미국의 강철왕 중의 한 사람이다. 담요제조업자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학교교육도 잘 받지 못했다. 식료품가게의 일을 하다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가 소유하는 에드가 톰슨 강철제작소(Edgar Thompson Steel Works)에 직공으로 취직했다. 여기서 그는 뛰어난 인간관리의 능력으로 카네기제국의 고위직으로 승승장구했다. 35세의 나이에 카네기강철회사(Carnegie Steel Corporation)의 사장이 되었고, 39세에 전미강철회사(United States Steel Corporation)의 사장이 되기도 했다. 그 후 그는 베들레헴강철회사(Bethlehem Steel Company)를 세우고 조선업을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데 이야기는 그게 아니다. 그가 톰슨 강철에 있을 적의 일이다.

    공장직공들이 할당된 양의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 생산의 차질이 생기곤 했다. 감독을 불러 말했다.

당신과 같은 유능한 사람이 어째 공장의 능률을 올리지 못합니까?”

직공들을 달래기도 하고, 욕도 해보고, 칭찬도 해보고, 쫒아내겠다고 협박도 하고, 별별 짓을 다 해보았는데 잘 안됩니다. 그냥 그 모양입니다.”

그때가 바로 낮 팀과 밤 팀의 직공이 교대할 시간 직전이었다. 스왑은 감독에게 분필을 하나 가져오라고 하고는 마침 퇴근하려는 낮 팀의 한 직공에게 물었다.

당신네 팀에서 오늘은 얼마나 하였소?”

여섯입니다.”

슈왑은 아무 말도 않고 마룻바닥에 ‘6’이란 숫자를 크게 써놓고 나갔다. 밤 팀의 직공들이 들어와서 ‘6’이란 숫자를 보고는 나가던 그 낮 팀의 직공에게 그게 무어냐고 물었다.

대장이 아까 여기 왔었는데, 낮에 얼마나 했느냐고 묻기에 여섯이라고 했더니 분필로 그렇게 써놓고 갔소.”

    다음날 아침이다. 슈왑이 다시 그 장소에 갔다. 밤 팀이 그랬는지 ‘6’은 지워지고 ‘7’이란 숫자가 적혀있었다. 일을 더 한 것이다. 낮 팀이 출근하여 ‘7’이란 숫자를 보고 약이 올랐다. 밤 팀보다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였는지 열심히 일했다. 그들이 퇴근하면서 적어놓은 숫자는 ‘8’이었다. 며칠 지나 그 숫자는 ‘10’이 되었다. 능률이 제일 없던 공장이 다른 어떤 공장보다 앞섰다. 슈왑은 나중에 이렇게 말했다.

능률향상의 방법은 경쟁심을 자극하는데 있다. 그냥 치사하게 돈 버는 경쟁이 아니라 이길 욕심의 경쟁을 자극하는 것이다.”

이기고 싶은 마음은 사람의 본능이다. 슈왑은 그 본능을 이용하여 성공했다.

 

최명(서울대학교 명예교수)

추기: 위에서 나는 단도 교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노융희 교수에게 들었다고 했다. 단도 교수의 이력을 확인하고 싶어 위의 글을 쓰고 난 후 인터넷검색을 하였다. 그랬더니 단도 교수는 교토대학과는 전혀 인연이 없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거기서 교수가 되어 정년까지 재직했다. 게이오대학에서 잠시 가르치다가, 최고재판소판사로 일했다. 그렇다면 그가 교토에서 도쿄에 올 일도 없었을 것인데, 어디서 그런 이야기가 나왔는지 알 수 없다. 노융희 교수가 소설을 지어낸 것인가? 그럴 리는 없다. 그러면 내가 교토대학의 다른 교수를 단도 교수로 착각하여 기억하고 있었던가? 도무지 상상하기 어려운 이상한 일이다.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다 보니, 알 수 없는 이상한 일도 생기는가?


 

 N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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