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센 팔자끼리(박경리 70)

 

    당대 독자들이 다 그런 생각이었지 싶은데 박경리와 박완서는 서로 닮은꼴이란 인상이 짙었다. 무엇보다 여류 문인이라는 꽃 장식 같은 별칭은 진작 훌쩍 뛰어 넘었던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베스트(양서) 작가, 곧 상업적으로 많이 읽혔음은 물론 문학적으로 크게 평가받았던 작가였던 점에서 둘은 닮았다. 성씨가 같다는 점도 일조했을지 모른다. 둘의 본관은 밀양(密陽)’, ‘반남(潘南)’으로 다르다.

    박완서가 문단에 데뷔한 것은 마흔 늦깎이로 1970여성동아의 장편소설 현상공모에 살아생전 절대가난에서 헤맸던 화가 박수근(朴壽根, 1914-65)이 모델인나목(裸木)이 당선된 것이 계기였다. 갓 출범한 서울 인사동 현대화랑의 개관기념전으로 박수근 소품전이 열렸던 것도 1970년이었으니, 인기 여류작가의 등장과 미술시장 활성화 신호탄의 절묘한 동행이었다.

전업주부에서 일약 베스트셀러 작가로

    돌아보면 우리 현대사에서 1970년은 여러모로 기년(紀年)이었다. 한국 경제성장의 도약대가 되어준 경부고속도로가 그해 77일 개통이었다.

    한 여성잡지는 모범 살림살이에 대한 글짓기 공모도 펼쳤는데 당선작 제목이 내 집 마련 3개년 계획이었다. 미래를 도모한다는 계획 또는 계획학이란 낱말은 처음 한동안 우리 사회에서 퍽 생소한 말이었지만, 나라가 1962년부터 추진했던 경제개발5개년계획의 성과가 가시화될 무렵 알게 모르게 사회적 인정이 널리 퍼져나갔다. 대기업은 물론 변화와는 담을 쌓아왔던 상아탑인 대학도 장기계획을 수립하기 시작했다. 이 상황에 때맞추어 세상 물정이 좀 어둡다는 주부들도 개안해서 계획 수립 대열에 참여하게 됐다는 말이었다.

    여성 사회참여의 중요 상징 하나인양 바로 이 해 1970년에 전업주부가 문단에 이름을 올렸음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었지 싶었다. 문명(文名)이 나기 시작하자 박완서에게 각종 지면에서 생활에세이 청탁이 줄을 이었다. 당연히 여성의 감성에 예기(銳氣)가 보태진 글이라 독자의 호응이 높았다. 이런 식 글이었다(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양출판, 1994).

자기 남편 얘기를 최고급의 존대 말을 써서 하는 여자는 싫다. “. 이거 우리 아빠가 미국 들어가 계실 때 부쳐주신 거란다. 원체 눈이 높으셔서 물건 고르시는 데는 뭐 있으시다구에 눈살을 찌푸렸다

결혼한 지 채 1년도 안 돼 보이는 애티 나는 새댁이 화면에 나와 아빠가 이러시고 저러시고 등등 최고급의 존댓말을 쓰는 걸 들으면 얼른 꺼버리고 싶어진다. 남존여비가 철저했을 적에도 아내가 남에게 남편을 말할 때는 남편을 자기와 동격으로 봐서 자기를 낮춰야 할 위사람 앞에선 남편도 낮추고, 아랫사람 앞에선 남편도 높여 말하는 게 우리의 어법이다.

    작품에 매료되어 마침내 소설 읽기 사전도 꾸며낸 이가 독자들의 사랑에 대한 총평을 내렸다. 박완서 소설의 재미는 다섯 아이를 두고 살림에 전념한 전업주부로 살아왔던 그가 중산층 주부들의 심리를 자신의 이야기처럼 사실적으로 그려내는 데에 있다. 작가가 개인의 체험을 사실적으로 재현하는 듯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작가가 내세우려는 일관된 주제의식을 보여주었다”(민충환 편저,박완서 소설어 사전, 2003).

    서울 아파트생활은 철문을 닫아걸고 나면 외부접촉은 전화가 고작인 지경에서 이웃사촌이란 옛말은 사라지고 말았다는 사회병리의 지적은 무척 예리했다. 도시계획을 공부했던 내가 적었던 학술형 수필에 현대도시사람들에겐 이웃사촌은 사라지고, 대신 전자사촌이 자리 잡았다고 적었던 것은 박완서에게서 얻었던 배움이었다. 내가 잡지 만들던 지인에게 적극 박완서의 글을 읽어보라고 권했더니만 그러지 말고 직접 만나 사람 이야기를 하나 적어 달라 해서 잠실역 근처 작가의 아파트 집으로 취재 갔던 적도 있었다.

사회비평 대 환경의식 고취

    박완서가 사회비평에 열을 올리는 사이, 박경리는 시심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환경의식을 고취하고 있었다. “(전략) 지금은 국토개발. 그린벨트 해제가/ 선거공약이 되는 시대// 산은 허물어지고/ 강은 썩어가고/ 땅은 메말라 죽어가는데/ 사람들 마음은 무쇠가 되어/ 개발 유치를 외치고 있다”(국토개발)거나 “(전략) 자본주의의 출구 없는 철옹성/ 온난화 현상이 일렁이며 다가온다/ 문명의 참상이 악몽같이 소용돌이친다/ 춥지 않은 회촌 골짜기의 올해 겨울”(회촌 골짜기의 올해 겨울)이 그런 보기다.

    그러던 두 사람이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가까워질 수 있는 고비가 돌발했다. 박경리의 그 봉변에 또 박완서도 그 참척 수렁에 빠지고 말았던 것. 병으로 남편을 떠나보냈던 1988년 그해, 3개월 뒤 대학병원에서 인턴으로 일하던, 4녀 끝에 얻은 외동아들이 갑자기 과로사했다.

    천주교에 입교한 지 4년째였다. 큰 슬픔에 빠져 그만 묵주를 집어던졌다는 소문이었다. 도대체 밥이 넘어갈 리 없었다. 보다 못해 큰딸이 자기 집으로 모셨던가 하면 시인으로 이름 높은 이해인(李海仁. 1945- ) 수녀가 수녀원에 와서 정양(靜養)해보길 권했다. 그렇게 수녀원에 들었던 박완서는 "주님과 한번 맞붙어보려고 이곳에 이끌렸다. 당신은 과연 계신지, 계신다면 내 아들은 왜 죽어야 했는지, 내가 이렇게 고통 받아야 하는 건 도대체 무슨 영문인지,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 말씀 해보라고 애걸하리라마음먹었다(박완서,앞의 책, 1994, 284). 그래저래 자신을 되찾아가던 도정을 박완서는 속 깊은 섬세 감성으로 절절하게 그렸다.

마음이 시리고 헛헛할 때, 남의 눈이 아니라 내 눈에 내가 불쌍해 보일 때 부산 베네딕도 수녀원의 언덕방, 나는 그때 나만 당하는 고통이 억울해서도 미칠 것 같았지만 남들이 나를 동정하고 잘 해주려고 애쓰는 것도 견딜 수 없었다. 남들은 물론 자식들까지 나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신경 쓰며 위해만 주는 게 내가 마치 고약한 부스럼딱지도 된 것처럼 비참했다. 그렇다고 안 위해주고 평상시처럼 대해 주었더라도 야속했을 것이다. 요컨대 나는 무슨 벼슬이라도 한 것처럼 내 불행으로 횡포를 부리고 있었다.

    그럴 즈음 두 박 씨가 결정적으로 가까워질 자리가 마련 되었다. “횡포를 부리는심리의 탈출구 하나로 여겼음이었던가, 한국일보의 간판 글쟁이 장명수가 원주 단구동으로 길을 놓았다(박완서, “치악산과 면장갑,”수정의 메아리, 1995, 19-24). 결과, 당대의 소설가 박완서도 단구동에서 마음 상처에서 치유되는 효험을 크게 보았던 것(장명수, “박완서, 거목 옆의 거목,” 한국일보, 2011217).

198826세의 외아들을 잃으셨을 때 그 누구도 만나지 않던 선생님(박완서)원주로 모시고 가겠다는 나의 한마디에 밖으로 나오셨다. 초등학생 아들을 잃은 적이 있는 박경리 선생님은 같은 아픔을 겪고 있는 후배를 위해 밤새 곰국을 고아 놓고 기다리셨다. 두 분은 서로를 껴안고 우셨다. ”써야 돼. 써야 돼. 글로 써야만 이겨낼 수 있어라고 박경리 선생님은 후배의 등을 두드리며 절규하셨다. 박완서 선생님은 곰국을 안주 삼아 맥주를 조금씩 마시며 겨우 겨우 한마디 하셨다. 선생님은 글쓰기의 힘으로 다시 일어섰다.

    드디어 말했다. “쓰는 일은 자폐의 유혹으로부터 나를 구하고 세상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지속시켜 주었다.”(박완서, “앞의 글”)

내가 차마 견디어내기 힘든 비통 중에 있을 때도 원주에 가는 차편이 생겼을 때는 떨치고 일어나 따라 나섰다. 그때 거기서 싱싱한 배추속대를 안주삼아 술을 억병으로 마시면서 절절히 맛본 서러움과 그분 인품의 인자함과 넉넉함으로 어찌 잊을까.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No.

Title

Name

Date

Hit

3054

‘사전가(絲田家) 직물관’ 개관하다

이성순

2021.09.28

791

3053

이 생각 저 생각 (75) 우도 28

최 명

2021.09.27

1527

3052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60)

정우철

2021.09.26

592

3051

501. 유튜브 13억 뷰 기록!!! 노르웨이 그룹 ‘A-ha’와 히트곡

인승일

2021.09.25

445

3050

종교적 산책 74 (사람만의 특색은 무엇인가)

김동길

2021.09.24

1168

3049

한민족 미감에 대한 경의(박경리 76)

김형국

2021.09.23

1610

3048

‘공예, 시간과 경계를 넘다’

이성순

2021.09.21

784

3047

이 생각 저 생각 (74) 우도 27

최 명

2021.09.20

1529

3046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59)

정우철

2021.09.19

597

3045

종교적 산책 73 (발전의 기본적 동력)

김동길

2021.09.17

1447

3044

한일 문화대비론(박경리 75)

김형국

2021.09.16

1611

3043

자가류 명상법 서설

여상환

2021.09.15

496

[이전] 6[7][8][9][10]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