핏줄 걱정, 『토지』집필 몰입으로 버텨(박경리 69)

 

    시인 사위는 소설가 장모를 수정의 메아리라 높여 불렀다. 어떤 말보다토지완간 직후 주변 인사들이 한마디씩 적었던 덕담 모음집 제목이 될 만했다(박완서 외, “서문”, 수정의 메아리, 박경리의 삶과 문학, 1995, 15-6).

맑고 견고하며, 도도한 고독의 이미지를 지닌 수정(水晶), 그 수정이 은은하게 사방팔방으로 노래하며 자아내는 메아리! 이 수정의 메아리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선생의 고독과 거대한 모성을 함께 느낀다. 그리고 세파에 찌든 자신의 삶을 위무 받고, 삶의 가치와 소중함을 자각한다.

    그렇게 원주 단구동이 마음이 가난했던 지인들에겐 정신건강의 충전소가 되어주던 사이로 당신 혈연에 대한 마음 긴장의 끈은 한시도 놓지 못했다. 무엇보다 남편 옥바라지의 긴긴 세월에 지칠 대로 지쳤던 당신 딸의 심기 회복, 더불어 사위 김지하의 영육(靈肉) 정상 복원에 대한 염원이 간절했다. 마찬가지로 자라나는 외손주들의 교육도 차츰 작가의 중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었다.

    시인 가족에 대한 소설가의 보살핌 본능은 진작 섬세한 감각의 눈엔 훤히 비치고 있었다. 소설가 이문구의 눈에 특히 그랬다. 애당초부터 사위가 식객이었다는 말이었다.

선생의토지야 말로... 우리나라 소설 문학의 대장정 길에 저 멀리 우둑 선 새로운 이정표가 아니었던가. 선생의토지가 새로운 이정표로 서기까지는 퍽 많은 세월이 불측(不測: 미루어 헤아릴 수 없음)하였다. 선생의 그 불측한 세월은 사위를 맞이할 때 따라온 후행(後行, 뒷감당)이었다. 후행은 내친 김에 식객(食客)으로 눌러 앉았다. 식객은 무엇이나 있는 대로 축내기만 하였다(이문구, “저 멀리 우둑한 이정표,” 수정의 메아리, 1995).

사위 가족의 해남살이

    사위 김지하 일가가 원주 학성동 본가를 떠나 해남으로 이사했을 땐 작가가 따라갈 일은 아니었다. 다만 고통스런 그리움만 해남을 향했다.

언젠가 선생은 해남에 전화를 했더니 밤늦도록 딸 내외가 집에 들어오지 않아 한밤에 택시를 불러 타고 해남까지 갔었다. 가는 동안 불안으로 터질 것 같았다.” 선생은 사위가 또 어디론가 잡혀 갔으며, 원보가 어린 동생을 데리고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시달리며 천릿길을 달려가셨다“(장명수, ”내 꿈속의 원조, 박경리 선생님,“ 수정의 메아리, 1995).

    “한반도 중심이란 이름의 원주에서 그 끝자락 땅끝마을도 품은 전남 해남까지라니 그 거리가 도대체 얼만가. 그 천리 길을 택시를 타고가면서 마음 조렸을 작가의 심중을 내 혼자 한 번 그려볼 적에, 서울 시내의 어느 시종점(始終点) 사이를 화급(火急)한 일로 택시를 타고 달려갈 제 신호등 바뀌는 시간도 어찌 그리 길었든가, 등이 대입(代入)되면서 내 가슴도 터질 듯 했다. 어림짐작에 적게 잡아도 최소 여섯 시간 이상을 택시 뒷자리에 웅크리고 앉았을 정황이었다 싶었으니, 문득 작가에 대한 측은지심이 가눌 길 없었다.

    피붙이 안위가 걱정되어 먼 거리를 택시를 타고 달렸음은 그 한번이 아니었다. 겉으론 글 농사와 밭농사를 오가는 차분하게 짜여진 일상을 살면서도 여차하면 물불가리지 않고 뛰쳐나가야만 직성이 풀리던 뇌관을 안고 살았다는 말이었다. 되돌아가 정릉 시절 이야기였다(강인숙, “박경리와 가족,”여류문학, 유럽문학 산고, 2020, 82-3).

영주씨가 연세대에 출강하고 있어서. 원주에서 하루 전에 와서 정릉집에서 자고 강의하러 가곤 하던 무렵이었다. 그런데 그 주에는 아무 연락도 없이 따님이 안 나타났다는 것이다. 기다리다 기다리다가 통행금지 시간이 다가오자 박 선생은 불길한 생각에 몸이 오그라들기 시작했다. 사고로 아들을 잃은 일이 있는 예술가의 과민한 더듬이에 불길한 영상이 확대되어 나타나며 팽창해 간 것이다. 상상 속의 불행은 점차 부풀어가서, 통행금지 사이렌이 울리고 어둠 속에 갇히게 되자 불안은 절정에 달했다. 꼭 딸이 어딘가에 죽어 있을 것 같은 생각이 어머니를 미치게 만든 것이다. 새벽 두 시가 지나자 선생은 벽을 안고 울기 시작했다고 하셨다. 오밤중에 외딸의 안위가 걱정되어 벽을 안고 울고 있는 홀어머니의 영상은 너무 처절하다. 통행금지가 풀리자 말자 선생은 택시를 잡아타고 원주로 달려갔다는 것이다. 어른을 모시고 사는 시댁에 꼭두새벽에 사돈마님이 들이닥쳤으니, 김 씨네 어른들이 얼마나 놀랐을지 짐작이 간다. 엄마가 사색이 되어 2백리 길을 택시로 달려왔으니 딸은 또 얼마나 놀라고 죄송스러웠겠는가? 기가 막힌 것은 그날 딸네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데 있다. 밤에 남편의 술손님들이 늦도록 돌아가지 않아서 못 떠난 것뿐이기 때문이다(밑줄은 필자의 것).

그래도 병이 깊어만 갔다

    김지하 일가가 해남으로 옮겨간 것은 1985년이었다. 파란만장 전력의 시인이 해남에 살게 된 것은 금방 소문이 났다. 가까운 지인들이 시인이 펼쳐 나갈 생활상이 궁금하기도 하고 또 기대되기도 하다며 줄줄이 천리 길을 멀다 않고 찾아들었다.

집은 남동 끝자락 옛 천석군 천씨내 고가였다. 남동집아내의 집이었다. 이 집에서 보낸 몇 달간이 아내에겐 아마도 일생에서 가장 애틋하고 행복하고 아리따운 시절이었다. 아내 얼굴에서 기미와 주근깨가 희미해지고 밝은 흰빛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머리털이 새로 돋기 시작했다. 그간 손님들이 다녀갔다. 장모님, 김옥길 총장, 지학순 주교 등이었다.

술손님이 훨씬 많았다. “맞이하는 내 쪽에서 보면 매일 매일이 장 서는 것과 같았으니 내 입에서 술이 떨어질 날이 없었고 아내는 반찬과 안주 장만하느라 쉴 틈이 없었다. 아아. 그 매일 매일이 기쁨이고 행복이었으나 아내에겐 더없는 고역이었고 나에겐 병의, 새로운 큰 병의 시작이었다.” 병명은 알코올 중독에 의한 정신 황폐증”, 19864월 즈음이었다.

! 내가 아팠던 지난 십 년 동안 이 아이가 겪었을 우울을 어떻게 갚아줘야 한단 말인가?” 나는 나의 감옥에서부터 시작된 불행이 두 아이와 아내의 슬픔을 만들어준 가장 큰 원인이었다는 점에서 할 말을 잃는다. “감기 들린 작은놈 콜록 소리/ 내 가슴에 천둥치는 소리/ 손에 끼었던 담배/ 저절로 떨어지고/ 춥다/ 그리고 덥다.”

전라도 해남에서 강원도 원주까지 일정 간격으로 원주기독병원에 통원치료하기가 못내 불편했다. 원주에 가긴 가되 학성동과는 떨어진 딴 집 살림을 조건으로 원주로 돌아갔다. 그리고 아이들 장래와 나의 병 치료 때문에 그리고 원주 연세대에서 강의하게 된 아내 때문에도 서울로 옮길 것을 결정했으니, 1991년 내가 목동에 자리 잡게 된 내력이다. 이어 일산으로 이사했다(김지하 회고록: 흰 그늘의 길, 3, 2003, 133쪽 이하 발췌).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매지리 문화관 사무실에서 이사장 김영주와 마주쳤다. 당신 집안의 포한은 두 아들이 대학예비고사를 못 볼 정도로 정신질환을 앓았던 점이라 목소리를 높였다. 그 경위는 시인이 진작 적었다(김지하, “백두산 이야기,” 장병두 구술감수, 박광수 편,맘놓고 병 좀 고치게 해주세요, 2009, 18-9).

나의 작은 아들은 내가 해남 시골집에서 처음 발광했을 때 놀라 내내 발을 구르며 울다 울다 끝내는 뇌신경 반이 온통 마비되어 다 자라도록 낮에는 자고 밤에 깨어 있던 아이다. 큰 아들은 함께 나의 발광을 보고나서 극도의 우울증에 사로 잡혀 세상과 공부에 완전히 취미를 잃어버렸다. 둘 다 대학 진학도 못했고 수많은 장애를 경험해왔다.

    사람에 대해 까다롭다던 박경리에게 소설가 최일남은 드물게 허물없던 언론인이었다. 대담은 진솔하면서도 정겨웠다(“박경리최일남 문학대담,”신동아. 199410, 484).

최일남: 선생님을 그동안 지탱해온 힘은 무엇이었습니까?

박경리: 그건 핏줄이지요. 딸과 손자. 그들이 고통 받는다는 사실이  나를 버티게 했습니다.

최일남: 그러면 사위는요?

박경리: 사위는 핏줄이 아니잖아요(웃음).

 

김형국, 서울대 명예교수(무단전재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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