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신사리(眞身舍利)와 말씀 사리-2

 

두 번째는 문필로서 사상가로서 민족의 길을 늘 제시하고 질타해 마지않던 함석헌 선생이 마지막 우리에게 남겨준 말씀이라고 생각된다. 제목은「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그 글 전체를 인용한다.

만릿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맡기며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도

'저 맘이야' 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만은 제발 살아 다오' 할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어도 너의 세상 빛을 다하여 저만은 살려 두거라'

일러 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눈감을

그런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이것을 볼 때마다 내 살아온 팔십 평생을 되뇌게 된다. 이런 경우, 저런 경우, 많은 인간관계를 맺고 선후배를 갖고 한 세상을 열심히 또 자랑스럽게 살아왔노라고 외쳐마지 않았지만 과연 함석헌 선생이 지적하신 이런 사람이 내게 있었던가? 자신 있게 선뜻 “제게도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용기가 서질 않는다. 내게 그런 사람이 없었다면 그 사람에게도 내가 그런 사람이 될 입장과 자질이 안 된다는 얘기가 아닌가. 이런 경지를 어떻게 터득할 수 있겠는가. 이런 노력을 하고 한 세상을 살았을 땐 최소 이런 정도의 한 사람은 가져야 하지 않나 하는 반성을 깊이깊이 해보게 된다. 내게는 이런 사람이 과연 있었던가? 이런 사람을 얻기 위해서 나는 어떤 노력을 했던가, 또 상대방에게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는 품격과 향기를 품고 살아왔는가? 많은 되새김을 하면서 반성을 하게 되는 말씀이었다.

항시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울리게 하는 성경구절이 있다.

하늘을 새를 보라. 들에 핀 백합화를 보아라. 길쌈을 하지 않고 곳간에 거두지 않더라도 천부가 기르시거늘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그러므로(성경에서는 항시 중요한 사안을 말씀하실 때에는 ‘그러므로’를 말씀하신다) 너희는 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샘솟는 사회를 만들도록 하여라. 그러면 모든 것을 줄 것이다.

이때 모든 것이란 무엇인가? 돈, 명예, 권세. 이것이 생활에 필요한 것이라는 건 다 안다. 그러나 일에는 우선순위가 있다. ‘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샘솟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그다음에 돈, 명예, 권세이다. 차후에 그건 따라가게 된다. 능력 있는 사람, 탁월한 재능이 있는 사람, 이 사람들이 하늘의 뜻을 받들지 않고 돈, 명예, 권세만을 탐하다 못난 꼴이 되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것을 우리는 수도 없이 보아왔다. 물론 고학생들, 생업이 어려운 소시민들의 경우에는 열심히 살고 생계유지를 위해 바둥거리는 것이 우선순위에 앞설 수 있다. 그러나 일정 수준에서 여유를 갖게 되고 훈련된 사람들의 경우에는 하늘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샘솟는 사회를 추구해 마지않는 것이 기본이 된다는 이 말씀은 깊이깊이 새기고 내 가슴을 울려왔다.

동양에서도 대학에서는 물유본말(物有本末)하고 사유종시(事有終始)하니 지소선후(知所先後)가 즉근도의(則近道矣)라고 했다. 사물에는 근본과 말이 있고, 일에는 먼저와 나중이 있으니, 그 먼저와 나중, 근본을 아는 것이 도에 가깝다고 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림을 갖게 되는 것은 또 주기도문에서도 얘기했었다. ‘일용할 양식을 주옵심을 감사하고’이지 ‘곳간에 쌓아놓음을 감사하고’가 아니다. 일용할 양식으로 족하고 나머지는 나만 못한 이웃, 내가 속한 사회, 국가, 역사발전에 기여하고 돌 하나라도 얹어놓으려는 자세로 가다듬어 나가야 되질 않을까. 거듭거듭 생각을 해 본다. 시도 때도 없이 울림을 갖는 말씀 사리였길래 여기 인용해 본다.

결국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또 해야 할 것은 말씀 사리를 찾고 만들고 다듬어서 후배들에게 전할 때에는 된소리, 안 된소리가 아니고 갈고닦고 다듬고 또 생각해서 사리가 될 수 있도록 진정성이 있는 말씀의 전달이 되어야 하는 것이 나이 든 사람이 나머지 생애에 할 수 있는 길이 아니겠는가. 우리 모두가 말씀 사리를 다듬고 뱉어낼 수 있는 그런 역할은 할 수가 있는 것 아니겠나 하는 생각을 한 번 해본다. 법신 사리까진 모르더라도 말씀 사리를 할 수 있는 그런 노력과 응축된 지혜의 결정체가 뿜어져 나오는 그런 사회를 꿈꾸어 본다.

 

여상환 


 

 No.

Title

Name

Date

Hit

3029

‘여행과 삶이 예술’이었던 故정재철

이성순

2021.08.31

661

3028

이 생각 저 생각 (71) 우도 24

최 명

2021.08.30

1506

3027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56)

정우철

2021.08.29

504

3026

종교적 산책 70 (보람 있는 삶)

김동길

2021.08.27

1321

3025

미술사랑으로 말하면(박경리 72)

김형국

2021.08.26

1599

3024

79세에 첫 개인전_ 문화행정가 천호선

이성순

2021.08.24

852

3023

이 생각 저 생각(70) 우도 23

최 명

2021.08.23

1519

3022

하느님이 하시는 일은 무엇인가?(455)

정우철

2021.08.22

712

3021

499. 열대우림의 식민지에 사로잡혀버린 영혼!

인승일

2021.08.21

608

3020

종교적 산책 69 (인간으로서의 책임)

김동길

2021.08.20

1220

3019

현대문학의 여자 쌍벽(박경리 71)

김형국

2021.08.19

1575

3018

남한산성 무망루(無忘樓) 유감

여상환

2021.08.18

450

[이전] [1][2][3][4]5 [다음]